Currently Browsing: 안방 초대 문인

[11월의 말] 배니싱 트윈 | 양윤의 |

―은희경, 『새의 선물』의 경우 1     임신 중 자궁 속에서 쌍둥이 가운데 하나가 사라지는 현상을 배니싱 트윈(vanishing twin)이라고 부른다. 다른 말로 쌍둥이 소실(쌍생아 소실), 태아 흡수(fetal resorption)라고도 한다. 통상적인 쌍둥이는 공시적(共時的)이다. 함께 태어나서 같은 시간대를 살면서...

[10월의 말] 기억의 간헐 작용 | 박민정 |

로시니, 모차르트 그리고 베버의 음악을 다 준다 해도 바꿀 수 없는 노래가 내게 있다. 그것은 낡았고, 느리고, 구슬프지만 내게는 내밀한 매력을 준다. 우연히 그 노래를 들으면 내 마음은 200년 젊어진다―루이 13세 통치 아래로. 보인다, 노란 석양이 비치는 굽이치는 푸른 언덕. 모서리가 벽돌로 된 성곽, 붉은 유리창들. 성곽의 넓은 정원. 성 아래를...

[9월의 말] 쓰지 마라. 써야 한다. | 한유주 |

   나는 오랫동안 쓰지 마라라는 환청에 시달렸다. 그래서 쓰지 마라라는 말을 괄호로 묶어버렸다.    (쓰지 마라.)    그리고 한동안 아무 것도 쓰지 않았다.    언젠가 서울의 서부간선도로를 타고 안산 방향으로 가던 중 심한 정체를 겪은...

[8월의 말] 키보드를 만지작거리다가 혹성 ‘이인성’에 불시착하다 | 서정학 |

    키보드를 만지작거리다 보니 나는 참 할 말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고 싶은 말이 없다. 뭐,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기 위해서 ‘하고 싶은 말’ 같은 것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또, 이런 의지가 없이 글을 써도 될까. 역시, 뭐, 안될게 뭐 있겠어요라고...

[7월의 말] 타이밍 | 이갑수 |

   여자 친구와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코엑스에 간다. 영화를 보기도 하고, 전시나 공연을 관람하기도 한다. 여자 친구는 아쿠아리움을 좋아한다. 그녀 덕분에 아쿠아리움에 열네 번이나 갔다. 여자친구는 바다거북을 좋아한다. 나는 흰 수염고래를 좋아하는데, 아쉽게도 아쿠아리움에는 흰 수염고래가 없다. 나는 해양생물을 보는 게...

[6월의 말] 테이크 온 미 | 오현종 |

   소설가가 되고 나서 영향 받은 작가나 작품에 대해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마다 나는 마가렛 애트우드, 재닛 윈터슨 등 몇몇 소설가의 이름을 번갈아 대곤 했다. 다들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만한 이름들이었다.     내가 호명한 작가들의 작품으로부터 영향 받은 바가 없지는 않을...

[5월의 말] 부끄러움의 자리 | 이향 |

어느 아침은, 너무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그 아침은 나에게는 없는 첫 순결의 한 송이 꽃이 처음으로 피어나서 파릇한 봄 하늘을 마구 흔들며, 자신의 가장 정결함을 강렬하게 뿜어올리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왜 저로 하여금 그토록 부끄러움을 느끼게 했을까요. 어쩌면 오랫동안 손에 쥐어 준 부끄러움을 언제 잃어버렸는지도 모른 채 어딘가 한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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