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ly Browsing: 안방 초대 문인

[9월의 칼럼] 폐허 |김근|

외주제작사 PD로 일하던 M은 낮술에 취한 것 같았다. 그는 내게 전화해 김광석의 <나른한 오후>를 불러 달라고 했다. 휴가 나온 동생과 영화를 보고 막 나온 참이었다. 제대가 얼마 남지 않은 동생에게 면회 한번 가지 않았다. 그의 휴가 마지막 날 오후, 나는 동생을 불러 근무 시간에 종로에서 영화를 봤다. 황사가 심한 날이었다. 과장되게...

[8월의 칼럼] 매미는 뭘 먹고 사는가 |김승강|

등나무 밑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가쁜 호흡을 가라앉히며 앉았다. 장마 끝이라 날씨가 후덥지근해서 그런지 그다지 높지 않은 언덕인데도 힘들었다. 어제 과음을 한 탓도 있다: 어제 저녁에 이상한 사람을 만나 술을 마셨다; 그는 맥주와 소주를 섞어 마셨다. 술김에 담배도 여러 대 얻어 피웠다. 땀이 샘처럼 솟는다. 멀리서 매미소리가 들린다. 매미소리는 바람을...

[7월의 칼럼] 그리고 바지를 벗었다 |신영배|

물고기 한 마리를 가지고 있었다. 밤이었다. 입에서 나온 것을 두 손에 받아 들고 있었다. 물고기가 딸꾹질을 했다. 귀에 물고기를 가까이 댔다. 무어? 말소리가 들렸다. 무어? 무어? 딸꾹질을 계속했다. 말꼬리를 자르고 싶었다. 우선 물고기의 수염을 떼어냈다. 한 밤이 흘렀다. 수염 없이 거울을 보았다. 거울에는 수염이 없다. 밤이었다. 무어? 딸꾹질...

[6월의 칼럼] 떠난다는 것과 돌아온다는 것에 관한 의문 |김대산|

나는 정신분석학을 잘 모른다. 뒤늦게 입학한 대학에서 프로이트, 라캉, 융의 책들을 조금씩 읽기는 읽었다. 하지만 유년기와 청년기에 어느 정도는 이루어졌어야 할 지적 훈련이 결여된 채 시작한 독서는 울화와 자책을 동반한 안구운동으로 끝났다. 앎을 얻고자 시도한 독서는 무지 위에 무지를 덧칠했을 뿐이었다. 획득한 것은 정신분석학의 체계적 내용이 아니라...

[5월의 칼럼] 형용사 |송승환|

푸르다 붉다 푸르다 붉다 푸르다 붉다 푸르다 검다 푸르다 검다 푸르다 붉다 검다. 푸르다 붉다 푸르다 검다 푸르다 검다 푸르다 검다 붉다 검다 검다 검다. 푸르다 붉다 푸르다 붉다 푸르다 검다 검다 검다 희다 희다 희다 검다. 푸르다 검다 희다 푸르다 검다 희다 푸르다 붉다 희다 푸르다 붉다 희다 검다. 붉다 희다 붉다 희다 붉다 희다 붉다 희다 붉다...

[4월의 칼럼] 어떤 멸종 |최대환|

A: 볕 좋은 일요일인데, 오늘 어디 가? B: 응, 오랜만에 교외에 나가보려고. A: 우와, 괜찮은 계획인데. 누구랑, 가족들이랑? B: 아니, 우리 식구 중에 나만 교외 나가잖아. A: …? 비교적 절친해 보이는 두 사람 사이의 대화인데, 뭔가 소통이 잘 안되고 있다. 말을 할수록 서로가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짙어진다. 무엇이 문제일까....

[3월의 칼럼] 백야의 개연성 |김경주|

첫 번 째 담배 한 개 비 그러니까 몇 년 전엔 겨울에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설원을 달려본 기억이 있다. 기차는 끊임없이 창밖으로 자작나무를 보여주곤 했다. 자작나무는 땅에서 불쑥 솟은 창백한 손가락들처럼 서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일생에 한번 정도는 손가락을 입에 물고 창문을 바라보는 데에만 시간을 쓰게 마련이다. 그때 나는 입안에 내가 만나보지...
페이지 20 의 51« 처음...10...1819202122...304050...마지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