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ly Browsing: 안방 초대 문인

[11월의 칼럼] 퍼즐 |최규승|

그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이 작업은 시작된다. 그러저러한 안부를 물은 뒤, 시간 날 때 술 한잔하자는, 상투적인 약속을 하고 막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느닷없이 그것들이 떠올랐다. 그것들은 어떤 사람의 서재에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서재에 그것들이 다 모여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들은 여러 사람들의 서재에 산재해 있지 않을까. 수집벽이...

[10월의 칼럼] 빛의 통로 |이영주|

누군가는 인도를 다녀왔고 누군가는 이태리를 거쳐 튀니지로, 누군가는 남아공 케이프타운으로 사라졌다. 나는 매일 매일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방, 옥탑방으로 갔다가 하늘에서 가장 먼 방, 내 안으로 들어온다. 전기가 깜박거리다 꺼진다. 오랜 시간을 항해하던 아버지가 들어와 내 안의 전기선을 통째로 갈아엎는다. 나는 아버지가 어디쯤을 항해하는지 모른다....

[9월의 칼럼] 폐허 |김근|

외주제작사 PD로 일하던 M은 낮술에 취한 것 같았다. 그는 내게 전화해 김광석의 <나른한 오후>를 불러 달라고 했다. 휴가 나온 동생과 영화를 보고 막 나온 참이었다. 제대가 얼마 남지 않은 동생에게 면회 한번 가지 않았다. 그의 휴가 마지막 날 오후, 나는 동생을 불러 근무 시간에 종로에서 영화를 봤다. 황사가 심한 날이었다. 과장되게...

[8월의 칼럼] 매미는 뭘 먹고 사는가 |김승강|

등나무 밑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가쁜 호흡을 가라앉히며 앉았다. 장마 끝이라 날씨가 후덥지근해서 그런지 그다지 높지 않은 언덕인데도 힘들었다. 어제 과음을 한 탓도 있다: 어제 저녁에 이상한 사람을 만나 술을 마셨다; 그는 맥주와 소주를 섞어 마셨다. 술김에 담배도 여러 대 얻어 피웠다. 땀이 샘처럼 솟는다. 멀리서 매미소리가 들린다. 매미소리는 바람을...

[7월의 칼럼] 그리고 바지를 벗었다 |신영배|

물고기 한 마리를 가지고 있었다. 밤이었다. 입에서 나온 것을 두 손에 받아 들고 있었다. 물고기가 딸꾹질을 했다. 귀에 물고기를 가까이 댔다. 무어? 말소리가 들렸다. 무어? 무어? 딸꾹질을 계속했다. 말꼬리를 자르고 싶었다. 우선 물고기의 수염을 떼어냈다. 한 밤이 흘렀다. 수염 없이 거울을 보았다. 거울에는 수염이 없다. 밤이었다. 무어? 딸꾹질...

[6월의 칼럼] 떠난다는 것과 돌아온다는 것에 관한 의문 |김대산|

나는 정신분석학을 잘 모른다. 뒤늦게 입학한 대학에서 프로이트, 라캉, 융의 책들을 조금씩 읽기는 읽었다. 하지만 유년기와 청년기에 어느 정도는 이루어졌어야 할 지적 훈련이 결여된 채 시작한 독서는 울화와 자책을 동반한 안구운동으로 끝났다. 앎을 얻고자 시도한 독서는 무지 위에 무지를 덧칠했을 뿐이었다. 획득한 것은 정신분석학의 체계적 내용이 아니라...

[5월의 칼럼] 형용사 |송승환|

푸르다 붉다 푸르다 붉다 푸르다 붉다 푸르다 검다 푸르다 검다 푸르다 붉다 검다. 푸르다 붉다 푸르다 검다 푸르다 검다 푸르다 검다 붉다 검다 검다 검다. 푸르다 붉다 푸르다 붉다 푸르다 검다 검다 검다 희다 희다 희다 검다. 푸르다 검다 희다 푸르다 검다 희다 푸르다 붉다 희다 푸르다 붉다 희다 검다. 붉다 희다 붉다 희다 붉다 희다 붉다 희다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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