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ly Browsing: 안방 초대 문인

[봄맞이 신작시] 익산 주먹 | 서효인 |

      눈을 뜨면 고향일 것 같아, 꿈은 대부분 이뤄지지 않고 기차는 진작부터 천천히 달렸다. 이리가 고향이라는 선배는 죽을 때까지 맞아본 적이 있느냐 물었다. 선배는 일제 때부터 있었던 곡물 창고에서 한가마니에 담긴 쌀 알갱이만큼 두들겨 맞았다. 눈을 뜨면 죽었을 것 같아 꼭 눈을 감고 있었지. 다시 눈을 감았다. 익산을 넘어가면 매 맞는...

[3월의 칼럼] 쿠바의 향 | 구광렬 |

   나라마다 고유한 것으로 치부되는 향이 있다. 보통 그것은 특산물이나 의식주 등 생활문화 아이템에서 비롯된다. 콜럼버스가 ‘지상의 낙원’이라 극찬했던 쿠바의 향은 어떨까.    쿠바의 향은 일차적이거나 독자적이질 못하다. 후각적이라기보다는 청각적이며 청각적이라기보다는 시각적, 촉각적이다. 다음을 상상해보라. 왼 손엔 시가가,...

[2월의 칼럼] 언제나 첫 만남 | 조연정 |

  그리 길지 않은 글인데도 이 첫 문장을 쓰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매번 이렇다. 나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적지 않은 글을 써왔다고 생각하는데 언제나 이렇게 배워본 적 없는 일을 처음 하는 사람 마냥 막막해진다. 분명 쓰고 싶어서 쓰겠다고 한 글일 텐데 막상 써야 한다고 생각하면 상투적인 표현 그대로 머릿속이 하얗게 된다. 할 말이 있기는 한...

[1월의 칼럼] 잘린 시야 | 백민석 |

 —우리의 내면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에는 흥미로운 캐릭터가 하나 나온다. 등장인물의 창조에 늘 신경을 써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너무 독특해서 한번 보면 결코 잊지 못할 그런 캐릭터다. 제목에도 쓰인 바틀비라는 인물인데, 움직임이 매우 제한적이다.   허먼 멜빌은 바틀비를 사무실 칸막이...

[12월의 칼럼] 문학적 영감에 대응하는 방식 | 강영숙 |

목욕탕에서 한때 아주 유명했던 운동선수 B를 만났다. 커다란 회색 방주(方柱) 두 개가 서 있는 것 같았다. 만났다기보다는 몸을 닦고 있는 그녀 앞의 은색 거울로 그녀의 얼굴을 훔쳐본 게 전부였다. 맞는구나! 그녀는 대단한 선수였다. 지금도 그녀의 뒷모습은 로댕의 토르소처럼 강건해 보였다. 그녀는 국민에게 기쁨과 자긍심이라는 선물을 주었다. 남산 줄기에...

[11월의 칼럼] 길에서 마주친 것들 | 김나영 |

1.    차라리 폭염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장마기간은 아니었지만 며칠 연속으로 폭우가 내렸다. 더는 쏟아낼 것도 없다는 듯이 빗줄기가 시들시들해질 즈음에 집을 나섰다. 잦아드는 빗줄기를 보며 집을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꼼짝없이 갇혀 있는 것은 고역이었다. 그럴 때면 동물의 본능이랄까, 그런 것이 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정처 없이...

[10월의 칼럼] 시들지 않는 꽃을 보았다 | 허연 |

   “돈키호테가 기사 수업을 나갈 때 만들었던 투구를 수없이 만들어 위대한 당신에게 바치며…….”   화가 손상기가 1983년 동덕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팸플릿에 썼던 글이다.   손상기, 아니 상기 형은 그랬다. 돈키호테였다. 어렸을 적 구루병을 앓아 척추장애가 된 그는 자신의 악조건을 인정하지 않은 채 이상을 쫒아 풍차로 돌진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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