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ly Browsing: 안방 초대 문인

[4월의 칼럼] 어묵을 좋아해 | 황정은 |

   나는 어묵이 좋다.   이십여 년 간 꾸준히 먹어왔다.   자주 가는 어묵 가게 아주머니가 이렇게 매일 어묵을 먹으면 질리지 않느냐고 질렸다는 듯 내게 물은 적도 있으니 지켜보기에도 정말 질리도록 꾸준하게 먹고 있는 모양이다.   이 정도로 꾸준히 먹고 보니 남모르게 어묵 포인트로 여기고 있는 곳이 몇 군데 있다. 화곡동 남부시장에 한 군데, 종로...

[헌시 재수록] 한없이 낮은 | 최하연 |

선생님, 오른쪽으로 꺾으면 섬입니까모텔입니까까마귀의 궁리입니까이제 길의 끝은 다 물이어서당신의 눈망울을 닮은 안개는홀수 길과 짝수 길을 지우고고래, 사슴, 암소와 나선형의 소용돌이가‘이별의 순서’를 기다립니다선생님, 왼쪽으로 돌아가면바람에 뒹구는 부처의 얼굴입니까누구의 무덤입니까다 해진 관음의 뒤태입니까채울 수도 없고 채워지지도 않는술잔입니까아침의 끝은...

[헌시 재수록] 삼척 | 이준규 |

   — 이인성 선생께         그는 동호대교를 건넌다. 그는 버스를 타고 동호대교를 건넌다. 다리 아래로는 강이 흐른다. 강에는 추억이 많다. 강에는 다른 것도 많다. 강은 무한이다. 강 위로는 다리가 있고 그 다리 위로 차들이 달리거나 멈춰 있다. 그는 동호대교 위를 달리는 버스 안에 있다. 앉아 있다. 그는 왼쪽 창밖을 보다가 오른쪽 창밖을...

[봄맞이 신작시] 앵무조개 | 나희덕 |

  앵무조개, 앵무조개, 앵무조개, 앵무새처럼 며칠을 중얼거린다.   앵무새의 부리를 닮은 앵무조개. 새의 성정을 타고나 바닷물 속에서 살아가는 앵무조개. 한 번도 짠물을 벗어나지 못한 앵무조개. 그러나 모래에 처박혀서만은 살 수 없는 앵무조개. 날개도 빨판도 없이 물결에 둥둥 떠다니는 앵무조개. 구십 개의 촉수로 먹이를 찾고, 위험할 때는 어룽거리는...

[봄맞이 신작시] 집들이 | 윤병무 |

겨울, 집 팔고 전세로 이사했네버려도 버려도 가득한 짐들짐들의 꽃책상을 거실 가운데 자리 잡았네      첫 손님은 열 시에 찾아온 햇빛내 맨발 옆에 햇살이 앉네안녕하세요 차를 차려놓듯 공손히왼발을 햇볕에 내놓네홀로 혼혼한 우주를 건너온 다스한 손님발등의 강줄기 같은 푸른 혈관이 부푸네      일제히 하늘을 겨냥한 활대 같은세탁소용 옷걸이에 매달린...

[봄맞이 신작시] 익산 주먹 | 서효인 |

      눈을 뜨면 고향일 것 같아, 꿈은 대부분 이뤄지지 않고 기차는 진작부터 천천히 달렸다. 이리가 고향이라는 선배는 죽을 때까지 맞아본 적이 있느냐 물었다. 선배는 일제 때부터 있었던 곡물 창고에서 한가마니에 담긴 쌀 알갱이만큼 두들겨 맞았다. 눈을 뜨면 죽었을 것 같아 꼭 눈을 감고 있었지. 다시 눈을 감았다. 익산을 넘어가면 매 맞는...

[3월의 칼럼] 쿠바의 향 | 구광렬 |

   나라마다 고유한 것으로 치부되는 향이 있다. 보통 그것은 특산물이나 의식주 등 생활문화 아이템에서 비롯된다. 콜럼버스가 ‘지상의 낙원’이라 극찬했던 쿠바의 향은 어떨까.    쿠바의 향은 일차적이거나 독자적이질 못하다. 후각적이라기보다는 청각적이며 청각적이라기보다는 시각적, 촉각적이다. 다음을 상상해보라. 왼 손엔 시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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