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이야기(하나): ‘컨셉트 앨범’의 등장

대중음악에서 ‘컨셉트 앨범(concept album)’이란 지칭은 그 개념 정의가 명확히 내려진 적이 없으나, 대략, 어떤 통일된 주제 의식을 구성적으로 표출하고 있는 음반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낱낱의 개별적인 노래들을 그냥 모아 놓은 것이 아니라, 함께 실린 노래들이 서로 유기적 관련을 맺으면서 부분들이 더 큰 전체로 수렴되어 가는 음반을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노래 작가에게 3-4분 짜리의 단편적 감각을 넘어서 한두 시간 정도를 음악적으로 구성하는 사상적·미학적 집중력을 요구한다.
서구의 대중음악사에서 ‘컨셉트 앨범’이라 부를만한 것들이 등장한 것은 60년대 후반이었다. Beatles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1967)는 그 명성 때문에 ‘컨셉트 앨범’의 효시로 자주 거론되고 있지만, 그 음악적 일관성에 비하면 내용적 연계성이 아직 너무 느슨하게 느껴진다. 그들이 마침내 컨셉트 개념의 모범을 창조해 내는 것은 <<White Album>>(1968)과 <<Abbey Road>>(1969)로 이어지는 작업을 통해서이다. 그래서, 가령 Smashing Pumpkins의 저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1995)란 뛰어난 음반도 <<White Album>>을 전범으로 삼지 않은 한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여겨질 정도다.
1968년 당시, 컨셉트 ‘의식’을 가장 먼저 뚜렷하게 보여준 것은 Beatles에 가려 그 변두리에서 음악적 실험을 몰고 나갔던 Pretty Things의 <<S. F. Sorrow>>(1968) 음반이었다. 소로우라는 한 ‘인간’을 주제로 응축된 이 전위적 음반은 곧 Who의 Pete Townshend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Tommy>>(1969)를 통해 록-오페라의 가능성을 제시하게 만든다. 그 후 본격적인 록-오페라 <<Jesus Christ Superstar>>(1970)가 만들어지는 것도 이런 기류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같은 1968년, Pink Floyd도 역시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1968)으로 컨셉트 ‘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1979년의 <<The Wall>>에 이르러 그 웅장한 규모를 드러낼 이들의 지속적 탐구는 앞의 경우와는 다른 방향으로 ‘프로그레시브 록’ ‘아트 록’의 어떤 길을 연다. 이로부터 록 음악에 클래식한 발상이 끼어 들고, 그래서 일종의 록-심포니를 지향하는 음악들이 탄생하는 것이다. King Crimson이나 Moody Blues 같은 밴드가 등장하고, 20-30분 짜리 대곡들이 만들어지는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다.
돌이켜 보면, 이 ‘컨셉트 앨범’의 산출은 록 음악을 고전 음악의 심포니나 오페라의 경지로 끌어올리려는 어떤 무의식적 욕망이 의식적 기획으로 분출된 현상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중에 이들 음악에 대한 비판도 그랬다. 록의 원초적 반항 정신을 무화시키고 정태적 고급문화에 종속시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펑크’니 ‘얼터너티브’니 하는 대안이 새롭게 제기되곤 했던 것이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문화가 움직여 가는 필연적 길이기도 하다. 모든 부정은 언제나 부정의 부정을 통해 새로운 긍정을 꿈꾸기 때문이다. 그것이 다시 부정된다 할지라도.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록-오페라가 되고 록-심포니가 되는 순간, 그 음반은 ‘컨셉트’의 범주를 벗어난다. 록-오페라는 록-오페라고 록-심포니는 록-심포니인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들은 완전히 다른 쟝르로 옮겨져 간 것들이 되는 셈이다. ‘컨셉트’ 개념은 그 이전과 이후의 어떤 아슬한 경계 위에서 곡예를 한다. 그리고 그 곡예를 끌고 나갈 때에만 그 이름에 값한다. 이 앨범 속의 노래들은 여전히 하나 하나를 단편으로 떼어내 개체로 즐길 수 있다. 그러면서도, 다른 노래들과 함께 들으면, 어떤 어울림을 빚어내며 더 큰 전체적 세계를 형성해 펼쳐 보여준다.
록-오페라나 록-심포니는 그 전체로서 일종의 서사 구조를 지닌다. 전자가 이야기의 구조를 갖춘다면, 후자는 소리의 선율 구조를 열어간다는 게 다를 뿐이다. 그렇게 볼 때, 문학에 비유하자면, 이것들은 우리가 전통적으로 소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닮았다. 반면 ‘컨셉트’로 묶인 노래들은 잘 짜여진 시집의 시들과 같다. 밀도 깊은 연작시들이 그 명확한 예일 텐데, 그것들은 뭔가 이야기로 얽힐 듯 하면서도 이야기를 감추고–또는 버리고– 어느 순간들을 피워 올리며, 그 순간과 순간의 사이를 꽉 찬 여백으로 잇는다. 부분은 부분대로 빛나면서 또한 커다란 빛의 원을 만들어, 듣는 이는 그 노래들을 시간적 순서와 관계없이 뜯고 짜며 자유롭게 부릴 수가 있다.
문학의 영역에서, 우리는 그런 표현에 걸맞는 시집들을 이미 꽤 오래 전부터 향유하고 있다. 아주 거슬러 올라가자면 한용운의 <<님의 침묵>>까지 거론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의식이 조직적으로 떠오른 것은 80년대를 통과하며 그 시대와 대결하는 과정에서였다. 가장 대표적인 이성복의 <<남해 금산>>을 비롯, 황지우·박남철·김정환 등이 그러한 개념의 작업을 통해 각각 독창적 성과를 얻었다. 그렇다면 우리 대중음악 판에서는? 대중음악의 역량이 일천했다 해도, 우리에게 ‘컨셉트 앨범’다운 ‘컨셉트 앨범’이 20세기를 건너기 직전에야 주어졌다는 것은 아무래도 너무 뒤늦었다는 느낌을 남긴다.
더구나 가슴 씁쓸한 점은, 그것이 그 중요성에 비해 아주 작은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작은 사건’이라 함은 대중적 호응뿐 아니라 비평적 호응도 거의 보이지 않았음을 뜻한다. 놀랍게도 그 첫 시도가 한국 록의 신화인 신중현에 의해 수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무튼 그의 <<김삿갓>>(1987)은 한국 최초의 ‘컨셉트 앨범’으로 불리게 되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두 장 짜리 CD를 김삿갓의 시로 가득 채운 이 앨범은 원숙의 경지에 들어선 한 노대가의 음악적 열정과 사유를 땀 흘려 형상화하고 있다. 아쉬움이 있다면, 전체적 구성이 너무 평면적이어서 갈수록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그런 <<김삿갓>>의 한계는, 이 앨범이 김삿갓이라는 한 시인에만 의존해 전적으로 그를 따라가고 있는 탓일 수 있다. 노래 작가가 ‘컨셉트’ 구성의 절대 주체가 되고 있지 못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보다 완벽한 ‘컨셉트 앨범’이 선보여진 것은, 바로 이듬해에 99라는 밴드명으로 성기완–이덕순이란 예명을 썼었다–이 내놓은 <<스케치 북>>(1998)을 통해서라 할 수 있다. 1996년의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의 소리 채취에서 1997년의 뉴욕 지하철의 소리 채취까지, 세 편의 <아흔아홉 구비>를 사이사이에 끼고, 시간과 의식의 중층 구조를 따라 물 흐르듯 흘러가는 이 음반은, 그의 실존적 고통과 방황을 뛰어나게 그려내고 있다.
그 작업의 연장선에서, 성기완은 21세기를 며칠 앞두고 ‘원 맨 밴드’식 기법으로 만들어낸 <<나무가 되는 법>>(1999)를 펴내, 그의 시도가 일회성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웅변한다. 같은 제목의 노래 1번에서 11번까지 이어지는 이 음반은, 앞 음반의 후반부에서 보여준 실험을 더욱 도저하게 몰고나가, 지극히 시적인 가사들과 함께 소리의 온갖 가능성을 전위적으로 얽어내고 있다. 물론 이 두 앨범도 신중현의 경우나 마찬가지로 아직은 작은 사건으로 간주되고 있다. 상업적 성공을 기대할 수가 없다기 보다 그런 기대를 애당초 포기하고 시작한 시도이기에, 이 노래들은 나중에 역사적 평가를 받겠다는 자존심마저 내보인다.
필경 그런 자존심이 그를 ‘인디 신’ 영역에서의 작업에 몰두하도록 만들었으리라. 돌이켜 보면, 우리 대중음악의 편향성과 빈곤성은 음악인들이 대부분 주류 음반업계가 행사하는 자본의 압력에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연유한다. 팔릴 음악을 위해 작가 정신이 마모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과 세계에 대한 넓고 깊은 성찰과 통찰 없이, 그것을 향한 집요한 추구와 구상화 없이 내일을 여는 진정 의미 있는 작품은 태어나기 힘들다. 성기완의 음악적 성과는 그가 또한 시인인 까닭에 문학판을 눈여겨 참조함으로써 얻어진 것일 수 있겠으되, 90년대 이후 한국문학이 겪고 있는 상황을 보자면 거꾸로 문학인들이 염두에 두어야할 대목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