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방에서 시 읽기(1): 그 후로도 못 버린 시

그 후로도 오랫동안 바람 불고 비 뿌리고
날빛이 소복소복…… 아팠다 아팠으므로
천지에 눈 내리고 바람 치고 이렇게 살아서
국 국물을 들이키거나 잡지를 사 읽거나 왈칵
아침이 찾아와…… 쓰라렸다 어떻게 정말
미쳐버린 것이 아닌지 이렇게 살아서

나 저녁 길섶에 그때의 기억들 불러모아
두런두런 말하며 저물려 하네
나무나 돌이나 바람이나 혹은 헤어져버린 사람이거나
오직 지금 말할 줄 모르는 것 하고만!

–김갑수, <그 후로도 오랫동안>
(<<동서문학>>, 2000년 봄호)

* * *
김갑수 시인의 시를 읽은 게 얼마만인가? <<세월의 거지>>(1989) 이후 처음이니까, 10년이 넘었다. 그런데 아직도 그에게서 시가 안(못) 떠나고 있었단 말인가? “그 후로도 오랫동안” 그는 혼잣속으로 시를 앓고 있었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는 “그 후”에 시를 못 쓸만큼 아팠었나보다. 시를 못 쓰게 된 시인이 밤새도록 소주를 마시며(“국 국물” 곁엔 필경 소주가 있었으리라) 남의 시만 읽다가(“잡지”에선 시가 가장 먼저 눈에 띠었으리라) 맞는 “아침”이 오죽 쓰라렸으랴…
그런데 이제 다시 “두런두런” 시를 쓸 만해진 모양이다. 아마도 청춘 너머를(“저녁 길섶에” “저물려 하네”)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10여년 전에,

나는 어디에도 닿을 수 없었고
닿을 수 없어서 바닥이 무너져내리도록
가슴께에 딸꾹딸꾹 절벽이 치밀고
지금 덜 미끄러지는 그림자의 나날
(<나는 어디에도 닿을 수 없었고>)

이라고 젊음의 절벽 끝에서 노래하던 시인은, 기어이 “한바탕 미끄러지고”(같은 시) 난 후, “그 후로도 오랫동안” 아프게 헤맨 후, 이제 “그때의 기억을 불러모아” 시를 다시 쓰려한다.
그러고 보니, 시는 너무 아파도 못 쓰고 아픔(의 기억)이 없어도 못 쓰는 ‘그 무엇’인 듯하다. 지금의 시인에게, ‘그 무엇’은 자연(나무, 돌, 바람)이나 “헤어져버린 사람”처럼 “지금 말할 줄 모르는 것 하고만” 대화하는 형태로 열리고 있다. 그것은 이를테면 ‘내면적 깊이’의 응시이다. 그가 앞으로 쓸 시의 모습이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