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을 넘어 몸으로

마치 인터넷 이외의 미래는 없다는 듯, 요즘 이 땅은 온통 디지털 냄비가 되어 끓어오르고 있다. 하기야 지금 이 글도 인터넷 상의 한 홈페이지를 위해 쓰고 있으니, 참 세상이 무섭게 변하긴 변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솔직히, 문자 매체하고만 오래 뒹굴어 온 나 같은 사람이 디지털 매체에 글을 쓰자면 조금은 마음이 찜찜한 것도 사실이다. 왠지 이때까지와는 뭔가 다른 말의 체계로 글을 써야만 할 것 같은 강박감이 느껴지는 탓이다.
가끔씩 인터넷 상의 이런저런 사이트나 홈페이지들을 찾아 떠돌다보면 그 새로움과 다채로움, 그리고 유용성에 홀리듯 빨려들면서도, 언어 사용만은 이질감을 느낄 때가 많다. 특히 젊은이들이 채팅할 때 쓰는 용어들을 보면 때로 완전한 이국어처럼 여겨지곤 하는데, 아마도 그건 인터넷 시스템이 그런 변형을 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령 채팅을 하며 거의 말하는 속도로 자판을 두드리려면 축약과 생략, 또한 새롭게 약속된 함축적인 부호 등이 요구될 수밖에 없으리라.
나는 인터넷 시스템 내부에서 그런 현상이 발생한다는 사실 자체를 비판할 의도는 없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니까. 하지만, 그 발명(?)이 적절한 것인가 하는 의문은 여전히 의문으로 제기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 변형의 기원이 되는 기존 언어와의 관계를 고려하여 무엇이 정말 바람직한 변형인지를 따지는 것은 중요하다. 더 나아가, 이 가상 세계과 현실 세계에 어떤 관계를 설정할 것이냐에 대한 깊은 성찰은, 우리가 어떤 질의 삶을 추구할 것이냐는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한 작업으로 보인다.
좀 극단적으로 상상해보자. 만약 이 가상 세계가 현실 세계를 완전히 대치한다면 우리 삶은 어떻게 될까? 그러면 아마도, 인간들은 모두 각자의 컴퓨터 앞에 고립된 채, 혼자 밥을 먹고 공부하고 일하고 놀고 섹스하고 자고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타인과의 관계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우스꽝스럽지만 심각한 예로, 아무리 그럴듯한 가상 섹스도 결국 수음이나 마찬가지일 텐데, 누가 아기를 낳아 기를 것인가? 인간 복제 기술로 낳아 로보트가 기를 것인가?…
물론 나는 인터넷이 새로운 문명의 이기임을 믿는다. 거의 무한한 정보를 효과적으로 조직화해 제공해 줄 수도 있고, 공간 이동에 요구되는 시간을 거의 완벽하게 생략시켜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가상 세계는 종착지가 아니라 과정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현실 세계로 가는 한 과정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현실 세계의 인간 관계야말로 바로 우리의 삶 그 자체이고 동시에 그 가치 척도인 까닭이다. 삶에서의 언어의 절대성도 궁극적으로는 거기에 근거한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때 중요한 점은, 진정한 관계란 몸과 몸의 대면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몸과 몸이 닿지 않는 세계에서는, ‘나’도 ‘너’도 ‘그’도 주체를 상실하고, 따라서 타자에 대한 배려감도 잃고, 분열하는 의식·무의식의 파편으로 흩어져 날아가버릴 위험성이 아주 높다. 요즘 인터넷 상의 이른바 ‘자유 게시판’이나 ‘채팅 방’ 같은 곳에서, 이 아이디 저 아이디로 이름을 멋대로 바꿔가며 말도 안되는 이 소리 저 소리에 욕설까지 마구 퍼질러 놓는, 가히 정신병자적인 작태들을 보라.
의식의 분열은 현실 세계에도 있다. 그럼에도, 몸과 몸이 만나는 곳에서는, 독립적 개체로서의 ‘몸’이 분열하는 의식을 다시금 하나의 주체 속에 모두어 ‘운동’ 에너지로 바꾸어주는 마지막 보루가 될 수 있다. 술에 취해 ‘헐크’같은 딴사람이 되어 ‘깽판’을 치면–이것도 분열이다–, 다른 몸들이 그짓을 말리거나 한 대 쥐어박거나 끌고가 재우고, 그러다 술이 깬 의식은 자기 몸을 추스르며 자기가 왜 그랬는지를 반추함으로써 다른 자기로 변하고자 한다. 그것은 몸으로 타자를 겪기에 가능한 정신의 운동인 것이다.
그러나 가상 세계에서는, 남(의 몸)이 보이지 않으므로 타인을 자기 환상에 따라 재단하고, 남에게 자신(의 몸)이 보이지 않으므로 또한 자기 주체로부터 도망치듯 일회용 가면을 즉흥적으로 썼다가 버리기가 아주 쉽다. 실존적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의미의 새디즘·매저키즘이 가상 세계와 마주한 뜻밖의 실존태에서 생생하게 구현되는 꼴이랄까. 더구나 주체 단련이 결여된 상태에서는, 자기 마음대로 조작되는 듯이 보이는 가상 세계에 마약 환자처럼 함몰될 위험도 매우 높다.
그런 의미에서, 예컨대 가상 학교가 현실 학교를 대신해 모든 걸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식의 단세포적 발상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우리가 지식을 얻기 위해서만 쓸데없이 한시간씩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녔던가? 아니다. 우리는 나를 가르치는 선생을 개인적으로 알고 눈빛을 주고받기 위하여, 같은 수업을 듣는 동료들이 어떻게 생겼고 그 중에 혹 맘에 드는 이성이 있는지 옅보기 위하여, 수업이 끝난 뒤 그들과 소주 한잔을 나누며 떠들기 위하여, 다시 말해 관계를 나누고 익히기 위하여 학교에 갔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권한다. ‘네티즌’들은 인터넷에서 구한 정보를 품고 가상 세계 문을 열고 나가, 그것이 현실과 어떻게 부딪치는지를 몸으로 활짝 겪으라고. 또, 인터넷에서 접속한 누군가가 있다면 얼굴을 맞대고 만나라고. 가능하면 상대의 손을 잡고, 모니터에 친 인터넷 언어와는 어떻게 다른 말을 하는지, 그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 직접 듣고 보라고. 그리고 관계의 눈으로 ‘나’를 곱씹으며 다시 인터넷 앞에 앉으라고. 그리하여 자기가 인터넷의 일부로 편입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이 자기의 일부가 되도록 만들어가라고.
……지금 나는, 인쇄술이라는 대량 복제 기술에서 출발한 문자 매체를 인간화시켜 책 문화–문학이 그 꽃이다–를 우리 몸의 일부처럼 만들었듯이, 디지털 매체의 인터넷 문화 또한 우리의 살로 육화시킨 세계를, 멀리 그린다.

* 이 단상은 문학과지성사 홈페이지의 ‘문지 칼럼’ 란과 함께 올려진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