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지드 50주기

–<교황청의 지하도> 공연에 부쳐
“이 책을 읽거든 지체없이 내던지고, 그리고 떠나라”는 <지상의 양식>의 정렬적 외침에 열광하고, <좁은 문>이나 <전원 교향악>의 애끓는 사랑에 제 가슴을 움켜잡던 한 세대가 이 땅에도 있었다. 사실 70년대 초에 대학을 다닌 세대까지만해도, 앙드레 지드(1869-1951)는 필독 작가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대략 70년대 후반부터 사회적·문화적 격랑의 시대를 거쳐오며, 그는 어느 틈에 잊혀진 또는 낡아버린 작가로 치부되고 있다. 아마도 그의 전체가 아니라, 어떤 특정 모습만으로 좁게 이해되었었기 때문일 것이다.
프랑스에서의 지드는, 비록 그 역시 모든 대가들처럼 죽음 뒤에 뒤따르게 마련인 ‘연옥’–죽음과 함께 일정 시기 동안 명성이 떨어지는 것–을 거치긴 했어도, 여전히 현재적 의미를 지닌 작가로 평가되고 있다. 사후 반세기가 지난 시점에서 그의 직접적인 영향을 확인하기는 힘들지만, 되새기면 되새길수록, “필터 종이를 빠져나가듯 그의 가르침이 우리 삶 속에 침투되어”(브와데프르) 있음을 실제 생활·정신 속에서나 문학 속에서나 두루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깨달음이 금년에 50주기를 맞은 그를 새롭게 조명하도록 만들고 있는 듯하다.
양차 세계대전과 그 사이의 심연·혼돈을 다 겪으면서도 끝내 문학을 삶의 중심축으로 삼았던 지드는 실로 다양한 얼굴을 지니고 있다. 소설가로서 그는 <배덕자>와 같이 ‘모랄리스트'(인간성 탐구자)의 면모를 드러냈다가 <교황청의 지하도>처럼 풍자 화가로 변하는가 하면, <전원 교향악> 류의 고전적이면서도 서정적인 심리분석적 ‘이야기’로부터, 현실과 인과 관계의 복합성을 소설 그 자체에 대한 성찰과 덧대어 실험적 구성과 문체로 형상화한 <위폐 제조자들>–그가 자신의 유일한 ‘소설’이라 불렀다–로 성큼 건너뛰기도 한다. 또한 <지상의 양식> <한 알의 밀이 죽지 않으면> 같은 시적 산문의 구사자면서, 한편으론 <콩고 기행> <소비에트 기행> 같은 현실참여적 글쓰기의 실천자였다. 게다가 <도스토예프스키> <오스카 와일드> 등을 쓴 비평가이자 유명한 <<누벨 르뷔 프랑세즈(N. R. F.)>>의 창간자·편집자였다. 진정한 지드는 당연히 그 전체성 속에 있다.
지금부터 한 세기 전인 20세기 초에 그는 먼저 해방의 예시자로 나타났었다. 언제나 시대를 10년쯤 앞서갔던 그는, 고일 만큼 고여 썩을 대로 썩은 부르조아 사회의 질식할 것 같은 가치 체계와 관습을 정면으로 부정하며 자유와 관능을 ‘선동’함으로써 동시대의 새로운 젊음을 이끈다. 그러나 그는 곧, 인간의 깊이에 대한 성찰로 자신의 작업을 심화시킨다. “각 개인은 자기 속에 더 큰 것을 지니고 있다–즉 ‘인간’이라는 것을”이라고 말할 때, 그는 인간의 심연을 파고드는 구도자의 모습을 내비치며 시대의 새로운 길을 연다. 더 나중에 제국주의와 공산주의 비판자로 등장하는 그는 앞서의 그런 성찰 위에서 떠오르는 것이리라.
어떻게 보면 지드는 모순의 열정에 빠진 작가로 비춰진다. 표면적으로만 관찰할 때, “선택한다는 것, 그것은 다른 모든 것을 영원히 포기하는 것이다”라고 쓰면서도 어떤 순간엔 결단을 서슴치 않는 등, 서로 다른 자아가 일관성 없이 맹목적 열정에 의해 솟아오르는 듯한 삶의 양태가 자주 엿보이는 탓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모습이야말로 그의 일관된 진면목일 수 있다. 자기 속에 들끓는 자아들을 편견과 억압 없이 드러내는 정직성 혹은 자발성, 그것을 터놓고 말하는 개방성 혹은 유연성, 그리고 그것이 모순이라도 모순을 끝까지 밀고나가는 성실성이야말로 지드 문학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간의 온갖 가능성을 소진하는” 온몸의 삶의 꼴이 아닐까?
지드에겐 그런 과정들 자체가 궁극적인 자기 자신을 찾는 길,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는 길이었다. “지드는 대체할 수 없는 하나의 본보기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진실이 되기를’ 택했으므로”라고 적는 사르트르는 지드의 한 진실을 꿰뚫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드는 다음 세대의 실존주의에까지 연결될 수 있겠으나, 그를 이끈 나침반은 철학이기보다 미학이었다. “도덕은 미학의 한 종속물”이라고 생각한 그에게, 아름다운 문학은 아름다운 삶에의 꿈인 셈이다. 이때 그것은 다시 행복한 미래에의 꿈으로 이어진다: “나는 미래의 인간의 행복을 위해 내 작품들을 썼다. 나는 살아온 것이다.”
……’예술의 전당’에서 지드의 <교황청의 지하도>를 기획 공연한다고 한다. 지드 자신이 ‘소티(풍자극)’라 부른 이 소설은 1914년에 발표된 초기 작품으로, 종교·관습·예술 등 여러 사회적 영역에서 보여지는 맹신과 허위·위선에 통렬한 풍자를 가하고 조소를 던 환호와 비난을 동시에 받으며 센세이션을 일으켰었다. 그의 부정과 자유의 정신이 잘 아로새겨겨 있는 이 작품은 1933년에 지드 자신의 손으로 극본화되는데, 노벨문학상(1947)을 받는 등 그가 영광의 절정에 이르는 말년의 삶을 장식하고 있다(연극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그는 카프카의 <소송>도 극본화했었다).
그러나 엄격한 의미로 말해, 이 작품의 무대화가 그의 영광된 시기를 ‘장식’했다는 표현은 타당치 않다. 오래된 작품을 새롭게 되살린다는 것은 그가 그 작품에서 제기했던 문제들이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다는 뜻이며, 나아가 연극화했다는 것은 그 문제를 보다 집단적인 관중에게 다시금 직접적으로 호소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보는 게 더 올바른 이해라는 이유에서다. 오랜 역사와 더불어 굳어진 반진보적 ‘보수’의 뿌리가 그토록 깊었다는 말이다. 언제나 비판적이었고 논쟁적이었던 지드에게 그것은 참기 힘든 현실이었을 것이다. 하기야 그 뿌리가 지금인들 다 뽑혔겠는가.
그런 한탄은 허울뿐인 ‘새로운 세기’의 발걸음을 내딛는 지금-여기에서의 우리도 감추기 힘들다. 이 엄청난 혼돈과 전환의 시대에 우리에겐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문제에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새로운 가치란 무엇인가라는 궁극적 물음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라는 족쇠가 언제나 강하게 작용해온 우리 사회의 저 깊은 골짜기를 되새기면 더욱 그렇다. 문호근 예술감독에 의해 우리 현실에 맞게 각색되고 연출되는 이 작품이, 지드에 대한 단순한 향수를 넘어, 예술을 통해 미학적으로 그런 질문들과 진지하게 맞부닥치게 하는 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문호근 선배님의 강권을 뿌리치지 못해 쓰고 말았지만(‘예술의 전당’ 저널용 원고다), 깊이 공부하지 못한 지드에 대해 이런 얄팍한 글을 내놓는 게 못내 창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