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방에서 시 읽기(13): 보이는 쉼표와 보이지 않는 쉼표 [첫번째]

눈이 내린다 거세게, 내 뺨에 부딪치지 않고 그 눈, 그 바깥에 네가 있다
눈이 내린다 지워질 듯, 도시가 화려하다 그 눈, 그 바깥에 네가 있다
바깥은 이별보다 가깝다 사랑이여, 눈은 눈보다 가깝다, 육체여
매끈하고 육중한 자동차 전시장과 숯검댕 낀 초록색 공중전화 부츠
눈이 내린다 무너질 듯, 내 몸을 파묻지 않고 그 눈, 그 바깥에 네가 있다
눈이 내린다 말살하듯, 네 육체가 화려하다 그 눈 그 바깥에, 네가 있다
— 김정환, <사랑 노래 2>
(시집 <<해가 뜨다>>, 2000)

***

위 시는 김정환 시인의 새 시집 <<해가 뜨다>>의 맨 앞자리에서 머리를 내밀며 시집-몸통 전체의 이해를 위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는데, 아주 짤막하고 쉬워 보인다는 첫 느낌을 만만히 끌고가려다보면 왠지 자꾸 껄그러움이 목젖에 걸리는 듯한 그런 작품이다. 무엇보다도 띠어 읽는 호흡을 조절하기가 쉽지 않아, 앞서 읽었던 구절을 다시 물려 거듭 뇌까리게 만드는 까닭이다. 그래서 시인이 뜻해 놓았을 어떤 분절을 찾아 되풀이 읊다 보면, 그 원인이 쉼표의 교묘한 사용에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다소 막연한 짐작에 가닿게 된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랬기에, 그 짐작에 기대, 이제, 위 시의 한 줄 한 줄을 되새김질하며 그 쉼표의 작용 방식과 의미를 찾아보려 한다.

■ 1행
쉼표란 일단 그곳에서 읽던 호흡을 멈춰 쉬라는 지시이므로, 1행은 시각적으로 ‘거세게’ 뒤와 ‘그 눈’ 뒤에서 끊어 읽어야 할 듯이 보인다. 그 지시를 시각적인 단순 행갈이로 표시하면

1-(1-1) 눈이 내린다 거세게, /
1-(1-2) 내 뺨에 부딪치지 않고 그 눈, /
1-(1-3) 그 바깥에 네가 있다 /

처럼 되겠는데, 그러나 이렇게 분절시켜 놓으면, 1-(1-2)까지는 일단 자연스럽지만, 1-(1-3)에 이르러 기분이 이상해진다. 1-(1-2)를 읽을 때까지 ‘그 눈’이 도치된 주어일 것이라고 여겨지던 예감(“그 눈은 내 뺨에 부딪치지 않고, 어떠어떠하다”는 뜻으로 이어질 거라는 예감)은 1-(1-3)에서 전혀 다른 주어 ‘너’가 나타나면서 곧 깨어지고, 호흡 구조와 통사 구조가 어긋나버리는 혼란에 빠지기 때문이다. 착각을 정리하건대, ‘그 눈’이 1-(1-3)의 ‘그 바깥’에 연결되는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통사 구조의 재구성을 통해 호흡 구조도 재조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즉,

2-(1-1) 눈이 내린다 거세게, / 내 뺨에 부딪치지 않고 //
2-(1-2) 그 눈, / 그 바깥에 네가 있다 //

이 된다. 산문적으로 풀어, “눈이 거세게, 내 뺨에 부딪치지 않고 내린다”와 “네가 그 눈, 그 바깥에 있다”라는 두 문장을 시적 도치들을 통해 펼쳐 놓은 것이 된다. 그렇게 보면, ‘않고’ 뒤에는 더 큰 쉼표로서의 마침표가 지워져 있는 셈이다(내 소설 속에서 이런 경우 이중 쉼표를 실험한 적이 있었던 것처럼, 앞으로는 여기서도 그것을 사용해 표시토록 하겠다).
그뿐이 아니다. 더 거슬러올라가 보면, 2-(1-1) 내부에서도 ‘내린다’ 뒤에 보이지 않는 쉼표가 숨어 있다고 보는 건 어떨까 하는 의문이 뒤따른다. 그 말은 ‘거세게’가 ‘눈이 내린다’에 붙는 부사일까, ‘내 뺨에 부딪치지 않고’에 붙는 부사일까라는 의문과 통한다. 뒤에 붙는 것으로 보면 ‘너’에 대비되는 ‘나’의 상황이 더 부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란 원래 하나의 의미로 고착되는 게 아니니까 확정은 못하겠으되(이중으로 걸린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그럴 가능성까지를 염두에 두고 좀더 세심하게 호흡을 분절시켜 표시해보자.

3-(1-1) 눈이 내린다(,) / 거세게, / 내 뺨에 부딪치지 않고(,,) //
3-(1-2) 그 눈, / 그 바깥에 네가 있다 //

나로서는 이 호흡의 리듬이 가장 적절하게 여겨진다(1-2의 ‘그 바깥에’ 뒤에서도 짧은 분절이 가능하지만 여기선 생락하겠다).
그렇다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시인은 왜 이런 반복-수정의 읽기 과정을 유도하는가? 바로 위의 마지막 도식화에 의존해 이해할 때, 결과적으로 3-(1-1)과 3-(1-2)는 나/너의 뚜렷한 대립 구도로 드러난다. 요컨대, 위와 같이 보이는 쉼표와 보이지 않는 쉼표의 조작을 통해, 얼핏 ‘그 눈’을 주어처럼 보이게 했다가 되물리면서 ‘너’를 주어로 부각시킨 후, 그것을 다시 ‘나’와 분명하게 대비시키려는 것이 시인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눈이 내리고 있다. 그 눈을 사이에 두고, 나는 이쪽에 있고 너는 저쪽에 있다. 그때 눈은 너와 나의 단절을 심상화하는 그 무엇으로 작동한다. 이 최초의 정황으로 제시하면서, 시인은 하나의 의문을 수수께끼처럼 남긴다. ‘나’는 도대체 어디 있는 것인가? 눈은 내리는데 내 뺨에는 부딪치지 않는다. ‘거세게’가 뒤를 수식하는 것으로 보면, 눈이 거세게 내 뺨에 부딪춰주었으면 좋겠는데–과연 ‘좋겠는데’일까?– 그렇게 되지 않는–또는 못하는– 상황 속에 있는 것이다. 그곳은 어디인가?

■ 2행
2행의 구도를 1행으로부터 얻은 관성에 맞춰 같은 호흡으로 뒤쫓으면 이럴 것이다.

1-(2-1) 눈이 내린다(,) / 지워질 듯, / 도시가 화려하다(,,) //
1-(2-2) 그 눈, / 그 바깥에 네가 있다 //

그렇지만, 1-(2-1)에는 3-(1-1)과 다르게 두 개의 술어가 제시되어 있고, 두 번째 술어의 주어는 ‘도시’다. 또 ‘지워질 듯’은 피동형이기 때문에, ‘도시’에 걸리는 것이 분명하다(“도시가 지워질 듯, 화려하다”). 따라서 1-(2-1) 내부에도 두 개의 뚜렷이 분리되는 호흡 단위가 존재하고, 결국 전체적으로는 세 개의 큰 호흡 분절(//)이 이루어진다.

2-(2-1) 눈이 내린다(,,) //
2-(2-2) 지워질 듯, / 도시가 화려하다(,,) //
2-(2-3) 그 눈, 그 바깥에 네가 있다 //

이렇게 읽을 때, 1행과 차별화되는 분절 형태의 2행에서 조명받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도시의 모습이다. 그 도시는 눈에 지워질 듯 가려 있으면서도 화려하다. 혹은, 눈에 지워질 듯 가려짐으로써 오히려 화려해 보인다(이 역설!).
이러한 풍경 묘사는,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이번엔, 눈 밖에 있는 너와 도시의 위치 관계를 묻게 만든다. 눈발 이쪽에 있는 ‘나’의 시선에 의하면, 눈발에 지워질 듯한 도시도 너처럼 ‘그 눈, 그 바깥’에 있다. 이때 ‘너’는 ‘도시’보다 더 멀리 있는가, 더 가까이 있는가? 아니면, 혹시 ‘너’가 곧 ‘도시’인가? 이 두번째 수수께끼는 아마도 마지막 행에 가서야 어느 정도 풀리리라.

■ 3행
3행에서 쉼표는 다시 한번 아련한 신기루를 뿌린다. 1행의 첫 독해 때처럼 단순 도해하면(그래도 이때까지 해온 세심한 짧은 분절, 긴 분절을 적용하여)

1-(3-1) 바깥은 이별보다 가깝다(,) / 사랑이여, //
1-(3-2) 눈은 눈보다 가깝다, //
1-(3-3) 육체여 //

이겠지만, 그렇게 읽고난 뒤 곧이어 파악되는 두 문장의 통사적 상응 관계가 호흡 단위 역시 변경시키는 탓에
2-(3-1) 바깥은 이별보다 가깝다(,) / 사랑이여, //
2-(3-2) 눈은 눈보다 가깝다, / 육체여 //

라고 재조정되는 듯이 보인다. 그런데, 또 그렇다면, 왜 2-(3-1)에서는 2-(3-2)처럼 ‘가깝다’ 뒤에 쉼표가 없고 ‘사랑이여’ 뒤에 있는 것일까? 그것은 가령 다음과 같은 분절을 유도하려는 의도에 밑받쳐진 것은 아닐까?

3-(3-1) 바깥은 이별보다 가깝다(,,) //
3-(3-2) 사랑이여, / 눈은 눈보다 가깝다, / 육체여 //

2의 분절과 3의 분절은 의미상으론 큰 차이가 없어도, 3의 분절은 두 개의 호격을 분명하게 동격으로 놓아주는 작용을 한다. 다시 말해 ‘사랑’과 ‘육체’가 하나임을 명시하는 방식으로, 2행에서 ‘너’와 ‘도시’가 어쩌면 동격일지 모른다던 막연한 느낌과도 긴밀히 연결되는 듯하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한번 더 결정을 미루고, 여기서는 일단 내용에 대한 물음으로 건너가도록 하자.
첫째, 바깥은 이별보다 가깝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둘째, 눈은 눈보다 가깝다는 말은 또 무슨 뜻인가?
이 두 물음은 시적 화자의 정황을 새삼 떠올려야 접근이 가능할 듯싶다. 앞에서 우리는 화자인 ‘나’가 눈에 맞지 않는 이쪽에서 저쪽의 ‘너’를 보고 있다고 했었다. 곧, 시선이 중요한 주제의 하나라는 말인데, 그렇다면 위의 난해한 두 번의 눈은 동음이의어가 아닐까? 앞의 눈은 보는 눈(眼)이고 뒤의 눈은 내리는 눈(雪)이 아닐까?
이 시와 매우 긴밀한 내적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 듯이 보이는, 시집 <<희망의 나이>>(1992)에 수록되어 있는 <사랑 노래 3>의 “흐린 눈이 올 듯 말 듯한 눈에 삼삼함이듯”이란 구절로 유추하면 꼭 그렇다(물론 이 8년 전의 시가 지금 읽는 시와 직접 연결되는 것은 아니나, 그 시집 속에 실린 12편의 <사랑 노래>들은 이번 시집의 <사랑 노래>들과 흡사한 정황 속에서 그려져 있어, 비교의 가치가 충분하다). 고맙게도, 이번 시집의 해설을 쓴 정과리도 그렇다고 보고 있다(그럼에도 그와 나의 해석 방향은 약간 다르다).
그러니까, 보는 눈은 내리는 눈 너머의 ‘너’를 시각 속에서 의식 속으로 끌어당겨 더욱 또렷한 존재로 떠올리고 있음을 숨은 뜻으로 이해하면, ‘눈은 눈보다 가깝다’는 진술의 상상적 접수가 용인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는 눈은 곧 의식이다. 그리고 그 의식이, ‘바깥은 이별보다 가깝다’고 웅얼댔던 것이다. 단순히 공간적인 바깥은 의식 속으로 얼마든지 내면화되어 편입될 수 있다. 정말 두려운 것은 공간적 거리가 아니라 의식-마음의 거리이다. 의식-마음으로 이별하면, 이별이 바깥보다 훨씬 멀다. 시적으로는 얼마든지 그렇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