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글

문학은 무엇으로부터 오는가?
뚜렷이 불행하게도, 그것은, 인간에게 숙명처럼 주어진 저 넓고 깊은 무정형의 삶, 그 삶을 살아야 하는 실존의 고통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닌가?
(나는 ‘구체적’ 실존과 ‘구체적’ 고통을 전제하지 않는 문학을 상상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느끼는 문학의 즐거움은?
그나마 행복하게도, 그것은, 고통의 모습을 끈질기게 형태화하며, 그럼으로써 고통의 실체를 서서히 알아가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닌가?
(고통으로 즐거움을 빚는 연금술!)
그러니까 가령, 적어도 문학적으로는, 울음 없이 웃음은 없고 웃음 없이 울음은 없다?
울음에서 솟구치며 울음을 뒤엎는 웃음, 혹은 그 반대, 그 양태 자체가 문학?
(겹쳐져 있으면서 끝없이 뒤집힌다는 마지막 희망…)

–고통 없는 문학들이, 그러므로 이미 문학이 아닌 문학들이 이 세상을 덮어가는 게 역겹다. 고통이 깔려 있지 않은 단순한 즐김의 언어들이 커다란 거짓 환상을 퍼트리고 있는 게 두렵다. 그것이 오락의 정치학, 자본주의 문화학이겠지만.
–그 커다란 거짓 환상이나 희망이 위험한 것은 권력을 탐하는 정치적 구호들과 이형동질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거꾸로, 긴 고통을 끝내 끌고가며 견디고, 그 속에서 느리고 작지만 절절한 즐거움을 싹티우고 펼치는 것. 그것이 삶의 진실로 다가가기 위해 버텨야 할 문학의 최소한의 ‘윤리’처럼 여겨진다. 자꾸 그런 느낌이 온다, 요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