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 시절의 시 한 편

새로 나온 시집들을 읽다가, 문득, 나도 습작 시절에 시를 쓴 적이 있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옛 기억들을 쑤셔 넣었던 상자를 뒤져, 대학생 때 썼던 시 뭉치를 찾아냈다. 지금 다시 읽으니 유치하다는 감을 지울 수 없지만, 그래도 앳되고 싱싱한 상상이 스스로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 시절의 순수를 되새길 겸, 그 중 한 편을 천천히 다시 베껴 보았다(이 시의 한 구절은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에서 슬쩍 써먹었던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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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말없음표>

무슨 주문(呪文) 소리인가, 다문 그대의 입에서 경련하는

그 마술의 힘으로 늘 손쉽게 내가 울고

주문을 던지며 그대는 울음을 벗어난다

그대가 울지 않으므로 내가 우는가, 그러나

울음은 우리의 말없음표인가

그날이 오면……, 하고 말하다가 만(萬) 마디의 침묵을 위해 찍는 몇 개의 검은 점들

그날이 오면……, 말없음표는 스스로 검게 빛날 것인가

점과 점의 깊은 사이에서 시작도 끝도 없이 서로를 맞이하면

밤마다 우리는 밤의 실내를 나선다, 그리하여

밤 하늘 촘촘한 별들이 몸과 몸을 부비는

그 화려한 울음의 화음이 거짓말처럼 청각에 다가오는

심야(深夜)를 가로지른다

내가 울지 않을 때 어떤 울음이 밤 가득 그렇게 황홀한가

그 황홀한 울음을 위해 이제는 나도 울지 말아야 하는가

(19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