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방에서 시 읽기(7): 성(性) 또는 ‘꽉 찬 환화(幻化)’

1
너의 눈길은 가슴을 스쳐지나가고
너의 손은 갈색 이불 위에 스며 있다
너의 무릎은 낭떠러지처럼 떨어지고
너의 살 속엔 천 개의 눈이 있다
심장의 파닥거림도 창자의 꿈틀거림도
다 가린 한 장의 이불 같은 살,
심장의 파닥거림과 창자의 꿈틀거림이
일으키는 천 개의 눈망울…

2
무거운 가슴이 휘어지면서
너의 허리는 둥근 방을 만든다
완만한 낭떠러지 아래 너의 팔은
다섯 손가락의 고요로 퍼진다
검은 잎새 사이 파묻힌 얼굴은
밤바다에 밀려온 새하얀 경이,
팽창하는 내부의 힘에 밀려
느닷없이 새어나온 눈길은 갑자기
떨어지는 공처럼 받을 수가 없다

3
눈썹과 속눈썹, 두 겹의 비밀 아래
너의 눈은 솟구쳐도 넘치지 않는 샘이다
귓불 아래 너의 목이 휘어지는 것은
무거운 잠으로 흘러내리는 두 개의 가슴을
안간힘으로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두 쪽으로 갈라지면서 둥글게 너를 감싸는
허리는 뱃속에서 얽힌 힘의 소용돌이로
긴 무릎을 일으켜세우고, 또 남는 힘으로
자신의 둥근 선을 더욱 둥글게 한다

4
다만 하나의
숨결로부터
제 논리와 이유에서
부풀어오르는 힘
팽창이 끝난 자리에
그윽한 눈이 생겨났지
살덩이를 매달고
홀로 도는 둥근 뼈
오직 몸 부빔에서만
꺼지는 불, 살아 붐비는 불

— 이성복, <소묘>
(<<호랑가시나무의 추억>>, 1993)

***
꽤 긴 시를 전문 옮긴 까닭은, 이 시가 그 자체로 성적 결합 행위를 정밀하면서도–그 정밀함이 거의 초현실적 그림을 그린다– 아름답게 묘사한 드문 시이며, 더구나 이성복 시의 문맥 속에서 읽을 때 어떤 충일의 순간을 노래하는 특이한 시이기도 하다는 데 있다.
알다시피 이성복 시인의 시들은 ‘나’마저도 지우고 “고통의 형체만 남”기는듯한 끝간 절망으로 꿈틀거린다(<숲 2>, <<그 여름의 끝>>, 1990). <<남해 금산>>(1986) 이후 조금 가라앉는 듯이 보였던 그 절망은 다시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예컨대 <<그 여름의 끝>>에서의 <바다>는 “흰 거품을 입에 물고 / 서러움이, 서러움이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정도로 묘사되고 있지만, 1998년에 발표한 <바다 3>은 “헐어빠진 바다에 흰 고름 같은 물결”(파도가 고름이라니!)과 거기에 “수의를 입히는” 밤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 죽음과도 같은 밤은 <<호랑가시나무의 추억>>(1993)의 도처에서 이미 출몰하고 있는데, 그 어둠-검정색은 인간의 실존 그 자체와 동일시되고 있다.

세상 끝까지 울음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듯이 울며 갔다 비교도, 비유도 허락되지 않는 울음, 꽃핀 벚나무의 검은 가지처럼 검은 길을 그 울음으로 적시며
(<높은 나무 흰 꽃들은 등을 세우고 27>)

그러나, 위 연작시들의 제목에 걸려 있는 것처럼, 그 밤 속에는 작은 등불 하나가 떠 있다. <<호랑가시나무의 기억>>에서 가장 끈덕지게 반복되는 이미지의 하나인 그 등불은 작지만 관능을 부르는 불이다(“등불이 색을 쓴다”: <밤>). 그리고 그 관능은 이 참담한 고통 속에서의 유일한 ‘기쁨’으로 나타난다.

바깥의 밤은 하염없는 등불 하나
애인으로 삼아서
우리는 밤 깊어가도록 사랑한다
우리 몸 속에 하염없는 등불 하나씩 빛나서
(<봄밤>)

나뭇잎 하나 살며시 뒤집혀지면서 웬 여자의 고운 목선을 보여준다–기쁨 어디 있니, 기쁨 어디 있어 나무야, 너와 나 굶어본 지 얼마 얼마 만이냐?
(<밤>)

그렇게, 이제, <소묘>에 이른다. “살 속”에 숨은 “천 개의 눈망울”을 “일으키는” 섹스. 그때 사랑하는 이의 얼굴은 밤바다의 파도처럼 다가오는데, 그 파도는 “흰 고름”이 아니라 “새하얀 경이”다. 사랑하는 이는 온몸으로 “둥근 방”을 만들고, 서로를 얽는 모든 행위는 원을 그린다. 그 원 안에 가득 “소용돌이” 치는, “부풀어 오른 힘”.
그 경이로운 힘은 바깥에서 오지 않는다. 바깥은, 삶이 온갖 관계에 “깊이 묶여 떨어질 수 없(는)”(<높은 나무… 22>) 고통의 자리, “개밥 같은 나날”(<천사의 눈>)의 자리이다. 반면, 그에 대비되는 이 힘은 “다만 하나의 / 숨결로부터 / 제 논리와 이유에서” 오는 자족성으로 충만되어 있다.
하지만 물론, 그 기쁨은 길지 않다. “팽창이 끝난 자리에” 남는 “그윽한 눈”
은 “꺼지는 불”을 본다. 섹스는 “살아 붐비는 불”이나, 그 “몸 부빔”은 거꾸로 불을 끈다. 여기서 섹스는 살아 있음의 생생함인 동시에 꺼짐-죽음으로 다가가는 이중의 행위로 그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다.

등불을 떠받치는 무쇠 지주에 차가운 이슬이
맺힐 때 나는 너의 머리를 쓰다듬어
저승으로 넘겨준다 이제 안심하고 꺼지거라
천도 복숭아 같은 밤의 등불이여
(<봄밤>)

그렇게 보자면 섹스는 ‘죽음의 무도(dance macabre)’라는 속성을 지닌다. 그것은 모든 것이 “환상”인 이 불모의 삶 속에서 죽음을 “희망”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또 하나의 환상(<천사의 눈>), 그러나 삶의 마지막 위안인 작은 교감을 그나마 느끼고 그리게 해주는 “꽉 찬 환화”가 아닌가.

그대 집은 플라스 디탈리, 내 사랑은 바람부는 강을 건너 그대 집에 닿았는가 꽉 찬 환화(幻化)여, 나는 이제 제정신이 들 것만 같다 육십 년 후 이맘때 플라스 디탈리 근처를 떠돌 환화여, 지금 내가 울면 그대도 따라 울 것인가
(<높은 나무…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