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방에서 시 읽기(5): 불취불귀(不醉不歸)

어느 해 봄그늘 술자리였던가
그때 햇살이 쏟아졌던가
와르르 무너지며 햇살 아래 헝클어져 있었던가 아닌가
다만 마음을 놓아보낸 기억은 없다

마음들끼리는 서로 마주보았던가 아니었는가
팔 없이 안을 수 있는 것이 있어
너를 안았던가
너는 경계 없는 봄그늘이었던가

마음은 길을 잃고
저 혼자
몽생취사하길 바랐으나
가는 것이 문제였던가, 그래서
갔던 길마저 헝클어뜨리며 왔는가 마음아

나 마음을 보내지 않았다
더는 취하지 않아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길이
날 묶어
더 이상 안녕하기를 원하지도 않았으나
더 이상 안녕하지도 않았다

봄그늘 아래 얼굴을 묻고
나 울었던가
울기를 그만두고 다시 걸었던가
나 마음을 놓아보낸 기억만 없다

— 허수경, <不醉不歸>
(시집 <<혼자 가는 먼 집>>, 1992)

* * *
벗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어김없이 이 시가 생각난다. 아마도 언젠가 환한 벗꽃 그늘 아래서 낮술에 취해 퍼졌던 기억 때문일 것이다. 그때, 사내들끼리 마신 술자리였는데도, 몸에서 떠오른 마음은 어찌하여 실연의 뒤끝처럼 헝클어져 그리도 너울거렸었는지… 허수경 시인의 다른 시 구절처럼 “한때 연분홍의 시절 / 시절을 기억하는 고약함”(<꽃핀 나무 아래>) 때문이었을까.
위의 시는, 그녀의 또 다른 시(<마치 꿈꾸는 것처럼>)가 제시하는,

햇살은 술이었는가
대마잎을 말아 피우던 기억이 왠지 봄햇살 속엔 있어

와 같은, 봄햇살 속의 아뜩한 취기와 그 속에 번지는 삶에의 회한을 기막히게 보여주는바, 그 효과는 언어를 술로 빚어내는 듯한 시인의 교묘한 솜씨에서 비롯된다.
우선, “∼던가”로 거듭 반복되는 반문형. 그것들은 명백한 사실을 부정하고픈 마음의 고조와 함께 아득히 떠오르는데, 그러나 그 마음의 다른 한쪽에 자리잡은 자기학대적 청승은 “∼던가 아닌가”로 두 마음을 섞으며 ‘나’를 “와르르 무너”뜨린다. 이때 그 두 마음 사이를 매개하는 것은 반접형 “∼으나”의 두 번에 걸친 사용이다. 첫번째 “몽생취사하길 바랐으나”는 말 그대로 반접이지만, “안녕하기를 원하지도 않았으나”는 “∼으나”의 어감을 배신하며 “더이상 안녕하지도 않았다”에서 동어반복형으로 겹쳐진다. 두번째 그것은 “않았고” 혹은 “않았듯이”처럼 읽힌다. 그걸 그렇게 느끼도록 만드는 ‘마음’의 움직임은
1) 다만 마음을 놓아보낸 기억’은’ 없다;
2) 나 마음을 보내지 않았다;
3) 나 마음을 놓아보낸 기억’만’ 없다
로 이어지고 있다. 1)의 “기억은 없다”를 읽을 때, 우리는 마음을 끝내 놓아보내지 않았었다는 뜻을 읽는다. 그런 판단은 2)에서 명확히 확인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3)의 “기억만 없다”는 그 모든 흐름을 완전히 뒤엎는다. 여기서 갑자기, 그때 이미 마음을 놓아버렸었기 때문에 마음을 놓아보냈던 순간의 그 기억’만’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극적 반전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요컨대, “봄그늘 아래 얼굴을 묻고 / 나 울었던가”(물론 울었다!)라는 반문을 스스로 부정하기 위해 마음을 놓아보낸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고(마음을 놓아보내지 않았으니까 울지 않았었다고) 말하려 하는데, 저도 모르게, 기어이 울어버렸을만큼 마음을 놓아버리고야 말았던 바로 그 기억만이 떠오르지 않는다는(그럴만큼 기억에서 지우고 싶다는) 뜻이 된 것이다.
아, 그토록 “아프고 대책없”(<정든 병>)는 상처랄까 설움은 과연 어떤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