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의 『신화의 시대』를 위한 한마디

<<신화의 시대>>가 말하는 신화는 단순히 역사를 비춰주는 원형적 거울이 아니다. 이 소설의 야심은 우리의 근대적 삶이 곧 새로운 신화의 생성 그 자체라는 것을 웅변하는 데 있다. ‘자두리’라는 신비로운 여인의 등장으로부터, 거개가 약호화된 일반명사로 호칭되며 얽히는 다양한 인물들의 가계 내력을 거쳐, 마침내 역사를 작동시키며 동시에 신화를 창조해나갈 ‘태산’(고유명사이자 신화적 상징 의미를 담고 있는 이름이다)의 탄생과 성장에 이르기까지, 그 서사의 기본 얼개부터가 작가의 역사-신화적 전망을 명확히 함축해 제시한다. 그리고 그 전망은 강물처럼 온갖 지류를 끌어안으며 담담하게 흘러가는 서술 방식을 통해, 역사 위에 기입된 실존적 인간상들을 인간성의 심연으로 가라앉힌 뒤 그 심층 구조를 표상하는 일종의 기호체로 다시 떠올림으로써 소설적 실체를 획득해나간다.
그런데 안타깝다. 신의 영역을 탐했기 때문인가, 작가의 느닷없는 죽음은 이 웅숭깊은 소설을 1부에서 멈춰 세웠다. 이제 이 소설의 미래 서사는 우리 상상의 몫으로만 남아버렸다. 하지만, 상상의 몫을 남기는 신화가 진정한 신화라면, 이 소설이야말로 우리 미래의 한 신화가 되지 않을는지…
– <<신화의 시대>>(물레, 2008) 뒷표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