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문학상’ 심사평

■ 한국일보 문학상 심사평 (한국일보, 2005년 11월 7일자 발표)
우리들 중의 누구도 어떤 결론에 도달할지 예상하기 힘들었던, 오히려 심사위원들이 심사를 받고 난 듯한 힘겨운 심사 과정이었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후보작들이 대부분 뚜렷이 다른 개성을 보여주면서 그 나름의 의미 있는 문학적 성취에 이르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근본적으로, 그 문학적 질감의 차이들은 서열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선택의 기준을 잡는 것부터가 너무 어려웠다.
아마도 그래서였겠지만, 우리는 처음에 거의 무의식적으로 ‘안전한’ 혹은 ‘무난한’ 선택을 고려했었던 것 같다. 처음에 주로 거론했던 대상이 이미 평단과 독자들에게 어느 정도 공인된 두 작가의 작품이었다는 점을 되새겨볼 때, 그런 자기반성이 든다는 말이다.
물론 그 두 작품은 고유의 장점들을 지니고 있었다. 한 작품은 우리 사회의 구석진 곳을 찾아 소외된 삶을 따뜻하게 싸안는 그 순정한 시선이, 다른 한 작품은 흥미로운 자료들을 동원하면서 실존의 심연을 파고드는 끈덕진 탐색과 사유가 우리의 호감을 얻었다. 그러나 논의가 전개되면서, 두 작품은 각 작가가 그 동안 도달한 성과에서 그리 큰 진전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게 지적되었다.
동시에 우리는, ‘한국일보 문학상’이 그 동안 일반적인 지명도와 상관없이 우리 문학의 새로운 활로를 열어 보이는 신진 작가들에 주목해왔다는 사실, 그리고 이즈음의 문학상들이 특화된 변별력을 별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상기하게 되었고, 그 연장선에서 보다 과감한 선택의 필요성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이라는 면모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작품 외적인 배려 사항들을 최대한 배제하고, 각 작품이 스스로 어떤 인간관이나 세계관을 추구하고 있는가, 그리고 얼마나 그에 적합한 소설 문법을 확보하고 있으며 그 형상화의 완성도를 높여가고 있는가 하는 점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기로 하였다. 그 결과,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도 다소 뜻밖인 한 선택에 도달했다. 김애란 씨의 <달려라, 아비>가 맨 마지막에 남은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이 단편소설은 가난에 대한 한국문학의 상상력에 작지만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해주는 듯하다. 그 동안의 한국문학은, 가난한 자를 대상으로 등장시키든 주체로 등장시키든, 사회비판을 기조로 삼아 연민이나 연대의식을 확산시키는 모종의 도식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가난의 주체가 펼쳐 보이는 것은 자기 밖의 그 어디에도 핑계를 대지 않는 철저한 자존(自存)의 상상력이다. 요컨대 자신만의 독자적 언어 세계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가난한 자의 진정한 주체성과 자율성을 예시하고 있는 것이다. 말과 말 사이에 가난처럼 비어 있는 여백을 상상적 도약의 공간으로 탄력 있게 살려내는 이 작품의 언어 체계는 그 자체가 이미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생성해내는 발전기라 할 수 있다.
어쩌다보니 우리의 선택은 매우 모험적인 것으로 끝맺어졌다. 이 모험이 무모한 짓이 안 되도록 만드는 것은 이제 수상자의 몫이다. 아직 첫 소설책조차 펴내지 않은 수상자에게 직접 말을 건네건대, 부디, 이 격려가 앞으로 구차한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 세계를 더욱 깊고 넓게 펼쳐 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더불어, 다른 후보자들에게는 미안함과 위로의 말을 전한다. 그들은 단지 ‘어떤 선택’의 결단으로부터 한 순간 비껴나갔을 뿐이다. 우리는 그들의 문학이 모두 한국문학의 장(場)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가만 생각해보면, 상을 왜 꼭 한 사람에게만 주어야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심사위원: 이인성 ․ 박혜경 ․ 서영채 ․ 신경숙
(대표 집필: 이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