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보편적 인간가치’ 논의에 대한 질의

이 글은 대산문화재단이 ‘평화를 위한 글쓰기’를 주제로 마련한 국제 포럼 행사(2005년 5월 24일~26일)의 제2분과 모임에 토론자로 선정되어, 분과 주제인 ‘문학과 보편적 인간가치’에 대해 르 클레지오, 루이스 세풀베다, 황석영, 유종호 씨가 발제할 글들을 미리 읽고 논평 및 질의를 하기 위해 준비했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솔직히, 이 자리에 토론자로 참석해달라는 청을 받았을 때, 저 역시 세풀베다 씨가 보여주신 반응처럼 몹시 놀랐고,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완곡하게 거절의 뜻을 밝혔었는데,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평화를 위한 글쓰기’라는 이 포럼의 전체 주제나 ‘문학과 보편적 인간가치’라는 우리 분과의 주제가 너무도 거창해서 ―동시에 그만큼이나 막연해서― 감당해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 솔직히 말하면, 제가 사는 꼴을 보자 하니 일상생활 속에서조차 평화보다는 불화가 더 많고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별 노력도 안 기울이는 사람이 이런 자리에 나와도 되나 하는 일종의 자격지심이 발동했던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 자리에 참석할 수밖에 없게 된 후엔, 먼저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문학‘과’ 보편적 가치는 서로 어떻게 연관되는가? 만약 문학‘의’ 보편적 가치에 관한 논의라면, 세풀베다 씨가 말씀하시듯, “모든 사물에 존재의 근거를 주고 존재이유를 설명하는” 문학이 그 자체로 전인류에게 공통된 보편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무엇보다는 모든 인간 사회에 문학이라는 것이 ―문자가 없는 곳엔 구술의 형태로라도― 존재한다는 게 그 증거겠지요. 문학은 분명, 인류의 보편적 자질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의 주제는 그런 차원에서가 아니라, 세계 사회의 구성원인 인간이 추구해야할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적’인 보편가치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며, 그것이 문학 속에 어떻게 담기느냐는 문제를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합니다.
사실, 오로지 현실의 문제로서 보편가치를 다루는 것만도 그리 단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평화니 자유니 평등이니 하는 이념적인 것들이나 사랑이니 신뢰니 희망이니 하는 정서적(감정적)인 것들이 범세계적인 현실이 요청하는 보편가치로 흔히 이야기되지만, 당장 이 자리에 계신 황석영 씨만 하더라도 그 이념들의 서구중심적 헤게모니 문제를 제기하며 ‘다원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보편주의’를 주장하고 계십니다. 자신의 뜻을 잘 전달하기 위한 불가피한 방편이겠으나, 그런 수식어를 첨가한다는 것은 특별히 강조해야 할 사항이 따로 있음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이미 어느 정도는 보편성으로부터 특수성으로 이동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경쟁에 뛰어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자리에서 그런 현실의 문제 위에 문학의 문제까지를 겹쳐 놓고 있습니다. 어찌 보자면 근본적으로 다른 두 존재차원을 연결시켜 논하자는 것이니, 얼마나 더 문제가 복잡해질 것인가는 짐작하기조차 힘이 듭니다. 문학은 ‘현실적’이 아닌 ‘허구적’ 실존체입니다. 르 클레지오 씨의 표현을 빌자면 문학은 때로 “인과논리의 부정”이기조차 한 어떤 것, “꿈으로 이루어진” 어떤 것이고 “위반이며 통과”이기 때문에, 문학과 현실의 복잡한 관계를 따지는 것부터가 그리 만만한 과제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지요. 사뮤엘 베케트는 죽을 때까지 마치 절망의 전도사라도 되는 듯이 극단적인 절망의 심연을 파고들어간 작가였습니다. 그의 작품 속에선 유모어마저도 너무나 절망적입니다. 그러면 그의 문학에는 인간의 보편가치가 없는 건가요? 아시다시피 그는 20세기가 남긴 위대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고 그의 작품은 범세계적으로 읽히고 있습니다. 그러면 현실에서와는 달리 허구 속에서는 절망도 보편적 가치로 용인되고 있는 건가요? 그것도 아니라면, 여기서는 허구적 현상을 ‘어떻게’ ‘어떤’ 현실적 가치로 해석하느냐가 문제인 것인가요?
질문은 던지지만 제게는 그에 대해 답변할 능력이 별로 없습니다. 또 질문자로서 참석한 제가 이에 대해 긴 논변을 펼칠 의도도 전혀 없습니다. 저는 다만 문학과 현실의 접선 방식에 대한 탐색을 배제하고는 어떤 심각한 주제도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해두고 싶을 뿐입니다. 유종호 씨가 상세하게 ‘판단의 어려움’을 논하신 까닭도 저는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설이 너무 길었으니, 서둘러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이 자리는 평화를 위한 대화의 자리이기 때문에 전투적인 질문은 삼가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그건 농담이고요, 마침 세 분의 저명한 소설가가 참여하셨기 때문에 공허한 추상적 논변 대신 이 분들의 구체적인 글쓰기 체험을 통해 암시를 받고 싶은 것들이 있다면 더 생산적일 것이라는 생각에서 마련한 질문들입니다. 혹시라도 너무 사적인 질문으로 여겨진다면, 너그럽게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우선, 르 클레지오 씨에게:
르 클레지오 씨의 오랜 문학적 여정을 돌아보면, 초기 작품들과 80년대 이후의 후기 작품들 사이에는, 그 소재나 글쓰기 방식 등을 놓고 볼 때 상당한 차이가 느껴집니다. 이 변화가 얼마나 의식적인 것이었는지, 그리고 그게 의식적인 것이었다면 혹시 지금 논의되고 있는 보편적 가치 문제가 개입되었었는지, 개입되었다면 어떤 방식으로 실제 창작에 작용했는지 듣고 싶습니다. 더불어 초기의 <<조서>>나 <<홍수>> 같이 혼돈을 그 자체로 형상화시키고 그 속을 가로질러 가는 듯한 소설들이 어떤 역설적인 보편가치를 드러낼 수 있다면, 그것은 그 작품들이 어떤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작용하고 어떤 효과를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다음으로, 세풀베다 씨에게:
세풀베다 씨는 자신의 문학이 뿌리박고 있는 남미적 전통과 상황의 특성을 인상적으로 들려주셨습니다. 그런 특수성으로부터 피어난 자신의 작품이 범세계적 독자들의 지지를 얻게 된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구체적 요인들이 무엇이었다고 스스로 진단하고 계시는지요? 그리고, 어떤 해설에서 세풀베다 씨가 “지칠 줄 모르는 여행가”로 묘사된 것을 읽은 적이 있는데(그 점에선 르 클레지오 씨도 마찬가지라 알고 있습니다만…), 그런 여행들이 인간적 보편가치에 대해 성찰하는 어떤 계기들을 마련해주었으리라는 점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문학적 영감을 불러일으킨 순간들이 있었다면 소개해주실 수 있을 런지요?
그리고 황석영 씨에게:
황석영 씨는 나와 같은 한국인이라 시대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공유하고 있는 점이 많기 때문에, 좀더 더 미세한 질문을 드려볼까 합니다. 황석영 씨는 이를테면 일시적 망명으로 미국 생활을 하셨던 적이 있는데, 오늘 발제하신 미국의 부정적인 모습들이 일상 속에서 직접 만나고 접해본 미국인들의 지극히 실제적인 삶의 모습 속에서 어떻게 엿보여졌었는지가 알고 싶습니다. 또, <<손님>>의 마지막 부분 한 구절을 인용하셨는데, 이 장면은 다분히 농경문화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데, 혹시 그런 장면을 보편적 인간가치 문제와 관련하여 특별히 제시한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