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요나’의 붉은 상상 (I)

1) 이 글은 김혜순 시인의 새 시집 <<한 잔의 붉은 거울>>(문학과지성사)의 해설로 쓰여진 것이다.
2) [5-41]과 같은 표시는 이 글 끝에 제시한 김혜순 시집 목록 중의 5번 시집 41쪽을 가리킨다. 목록은 발간 역순으로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1번이 이번 시집이다.

I
뜻밖이다. 김혜순의 새 시집 <<한 잔의 붉은 거울>>은 제목부터 시작해서 붉은색이 낭자하다. 붉은 전선, 붉은 장미꽃다발, 빨간 물고기, 붉은 파도자락… 붉은 구름, 붉은 벼랑, 붉은 아기, 붉은 양수… 붉은 살 꽃, 붉은 실타래, 붉은 이슬, 붉은 나무… 그러다가 종국엔, 그 붉은 색감의 뜨거움 때문인지 ‘붉은’이란 형용사마저 증발하고 언어 그 자체의 열기만이 깔리는데, 그 열기 역시 여전히 붉은 느낌이다. 사실 냉정하게 되풀이 읽어보면, ‘낭자하다’는 표현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렇게 느껴질 만큼 효과적으로 채색된 그 색감의 강렬함을 피할 수는 없다. 이 현상이 그토록 뜻밖이며 강렬한 까닭은, 무엇보다도 그 붉은 색이 이 시인의 앞선 시집들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는, 새로운 상상을 여는 색감으로 솟아오르는 데 있으리라.
꿈의 동굴과도 같이 한없이 깊고 괴이한 내면 풍경을 ‘음화(陰畵)’로 뒤집어 보여주는 이 시인의 작품들은, 언젠가 “한편엔 흰색 또 한편엔 검은색 / 칠해진 문을 여네”[5-41]라고 말했던 것처럼, 지난 20여 년 동안 거의가 무채색으로 덮여 있었다. 때로 흑백화면 속의 어떤 특정 대상에 한정해 특수효과로 입혀진 듯한 유채색이 등장할 때도, 지금까지는 상대적으로 푸른색이 주조를 띠었었다. 물론 붉은색도 간혹 등장하지만, 언뜻 눈에 띠는 것들은 “감시의 붉은 눈”[2-116] 따위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부정적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그 피상적 인상만을 따라 말하자면, 이번 시집의 붉은색은 그 부정성을 단번에 씻어낸다. 시원(始原)의 붉은색이라고 부르고 싶은 이 색감은 도대체 어디서, 왜, 어떻게 흘러나와 번지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이런 질문으로부터 시집 읽기의 실마리를 푸는 것은, 그녀가 다른 무엇이기에 앞서 치열한 이미지의 시인이기 때문이다.

II
이미지야말로 이 시인의 실존 그 자체가 아닐까 여겨질 만큼, 김혜순의 시들은 온통 이미지들로 우글거린다. 그녀는 이 세상을 지배하는 관념적이고 사변적인 “말씀” 즉 “교란의 거울”[1-105]에 맞서, 이 세상을 전혀 다르게 느끼고 구축하는 몸의 언어, 육체적 감각의 언어, 즉 이미지의 언어로 버틴다(사실 이 점은, 한국시의 일반적 풍토에 대한 강력한 문학적 저항으로 읽힌다). 차츰 이야기되겠지만 이 세상을 비추는 다른 거울들을 가지고 있는 이 시인은, 그 거울들에 반사되어 나온 자신의 시들을 지난 번 <<달력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2000)에서 “내 몸속 어딘가에서 송출하는 영화”[2-58]라고 일컬었었다. 딱히 영화가 아니더라도, 화폭, 사진, TV, 홀로그램 등등에 상응하는 영상적 언어들은 거의 김혜순 시의 시작이자 끝이라 할 수 있는데, 이때 그 영상적 언어가 투사해 보여주는 것은 이번 시집의 한 표현을 빌면 “내 몸통 속에 갇힌 / 미친 멜로디”[1-109]들이다.
김혜순 시의 발현 방식은, 요컨대, 몸이 몸속에 갇힌 미친 멜로디를 영화로 바꿔 송출하는 것, 청각적인 것의 시각화이다. 여기서 청각적인 것이란 단순히 물리적인 소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눈에는 보이지 않으면서도 귀에는 분명히 와 닿는 파동으로서의 소리처럼, 형상적 실체를 붙잡을 수 없는데도 분명히 존재하기는 하는 그 무엇인가를 뜻한다. 이를테면, 이유를 알 수 없는 몸부림처럼 몸을 휩싸는 광태 같은 것. 아마도 그런 것이 몸을 통해 형태를 드러내는 자리는 바로 꿈의 자리, 꿈 중에서도 악몽의 자리일 터이다. 실제로 김혜순의 거개의 시들은, 깊은 질곡의 밤에 꾸는 악몽이 캄캄한 영화관에서 환한 환상의 화면에 비춰지듯 전개된다. 심지어 그녀는 낮에도 끊임없이 악몽을 꾼다. ꡔ나의 우파니샤드, 서울ꡕ(1994)부터 되풀이 쓰여 온 표현에 의하면, 그녀의 몸 자체가 이미 “까만 쓰레기 봉지”[4-111] 같은 어둠덩어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처럼 “걸어 다니는 연옥”[1-62]인 몸, “아픔의 책”[1-71]인 몸의 “살들이 진저리치(며)”[1-118] 꾸던 악몽!
김혜순의 시들이 줄기차게 기록해온 그 악몽의 이미지들은, 시인 자신도 조금 퉁명스럽게 “나는 해독하지 못한다”[4-11]고 말했듯, 난감하고 난해하기 이를 데 없다. 꿈이라는 것이 애당초 초이성적 세계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다가, 동시에 “내가 너무 많아 정말, 죽을 지경”[1-125]이라 느낄 만큼 어지럽게 분열․증식하는 시적 발화의 다성적 양태가 덧대어지는 탓이다. 그러나, 꿈이 또한 그러하듯이 그 불투명한 이미지들은 끈덕지게 반복되는 어떤 강박적인 것들 둘레로 모여 회오리처럼 맴돌 뿐 아니라, 그 다성적 자아들 역시 하나의 몸 안에 자리 잡고 그 몸을 통해 떠오른다는 점에서, 김혜순 식의 시적 상상 체계 및 운동의 전체성과 연속성을 그려볼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이 전무한 것은 아니다. 그녀의 모든 시들이 일련의 시들로, 모든 시집들이 커다란 한 권의 시집으로 이해되는 의미망(들)이 심층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다.
김혜순 시인 역시, 자신의 시를 의식화하는 과정에서 그런 문제와 맞부닥친 적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녀의 한 산문은 자신의 시를 “프랙탈 도형처럼 세상 속에 몸담고 세상을 읽는 방법”으로 규정하며, “이 실존의 실체는 고정된 도형이 아니라 움직이는 도형으로서의 실체다. 늘 순환하는, 그러나 같은 도형은 절대 그리지 않는”[3-뒷표지]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려 애쓴다. 이 말이 우리를 유혹하는 이유는, 그렇다면 역으로 그 도형들의 기원에 존재하는 어떤 원형을 추리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해서다. 우리는 물론, 시적 상상력의 유일무이한 기원을 밝히고 그 상상 체계를 일목요연하게 도식화한다는 것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전제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런 가정과 시도를 통해 어렴풋이나마 윤곽을 그리면서 몇 가지 가설적 지침을 구할 수 있다면, 그것들이 한 시인의 시 세계를 파헤쳐가는 매우 유용한 전략적 교두보가 된다는 것도 체험적으로 실감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그녀의 시집들을 강박적으로(?) 반복해 읽다가 직감적으로(!) 얻은 우리 판단에 따르면, <이다지도 질긴, 쓰레기 봉투>라는 시의 다음 몇 구절은, 일단 이번 시집은 제처 놓고 볼 때, 이전의 시 세계를 해명하는 한 심층적 구도를 절묘하게 응축시켜 보여주는 듯하다.

검은 봉투 속에 밀봉된 채 악몽의 풍경 속을
기차를 타고 갔었지요 달아났었지요
잘려진 손톱처럼 날카로운 산의 나무들
핏빛 파도를 닦은 생리대와
사각의 푸른 종이 상자에서 툭툭 튿어지던 희디흰 크리넥스
처럼 내려앉은 저녁의 날개 없는 새들
머나먼 레일처럼 도르르 말린 필름
내 몸속 어딘가에서 송출하는 영화
그 어디에 목숨이 숨어 있는 걸까요
몸부림치고 있었어요 검은 쓰레기 봉투 속에서
다시 태어나려고요 나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던 거예요 [2-58~59]

이 시의 ‘나’는 예의 그 “검은 쓰레기 봉투”에 갇힌 채 “악몽의 풍경 속을” 달리고 있다. 셋째 줄에서 일곱째 줄까지, 그 풍경이 보여주는 것은 어떤 공격적인 존재와 그 공격에 희생된 존재의 대비이다: 날카로운 칼로서의 나무들과 그 칼에 날개가 잘린 채 내려앉은 새들. 이때 그 해괴하고 초현실적인 풍경 속을 기차를 타고 간다는 것은 그 풍경으로부터 달아난다는 것과 동의어로 제시되고 있다. 기차는 ‘나’의 수동적 정황과 초조함을 동시에 환기하는 듯하다. 요컨대, ‘나’로서는 그 풍경을 그저 내다보는 것 이외의 다른 도리가 없고, 오로지 그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뿐이다. 그러나 그렇게 달리고 달린 “머나먼 기차 레일”은 어느 순간 “도르르 말(려)” 원점으로 돌아온다. 그러면서 ‘나’는 그 악몽의 풍경이 내 밖의 풍경이 아니라 “내 몸속 어딘가에서 송출하는” 풍경이라는 뼈아픈 진실과 대면한다. 내 몸에서 악몽이 나오니 도저히 이 악몽에서 헤어날 길이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머지 세 줄의 안타까운 물음과 가녀린 외침이 터져 나온다. 그리고 그 물음과 외침은 악몽과 ‘나’의 관계를 다른 층위로 이동시킨다. 그렇게 묻고 외치는 ‘나’는 악몽을 관찰하며 사유하고 상상하는 또 다른 ‘나’, 시인으로서의 ‘나’인 것이다. 그냥 도망치는 것만으로는 악몽을 벗어날 수 없다면, 악몽 속에서 악몽을 이겨낼 단서를 찾아야 한다. 이해를 분명히 하기 위해 위의 인용 바로 앞에 놓인 세 줄을 더 보충해 읽자면:

드넓은 초원에서 양을 먹고 사는 사람들은
양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보면서 심지어
내일의 날씨도 점칠 수 있다지요 [2-58]

시적 자아가 현실적 자아의 악몽을 들여다보는 것은 “양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 “양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보(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 현실적 자아를 먹고 사는 시적 자아는 현실적 자아의 배를 갈라 그 속의 내장을, 곧 현실적 자아의 몸속에서 송출되는 초현실적 영화를 본다. 왜? 어쩌면, 양의 내장을 뒤져 “내일의 날씨를 점칠 수” 있듯이, 그 악몽의 “어디에 목숨이 숨어” 있는지를 찾아냄으로써 악몽을 벗어나 “다시 태어(날)” 수 있는―날개 잃은 새들이 다시 날아오를 수 있는― 기적의 근거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므로. 여기서, 하나의 역설이 탄생한다. 시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가 통합된 그 전체로서의 ‘나’의 입장에서 다시 넓게 생각하자면, 악몽은 결국 신생을 위한 “몸부림”이구나 하는 역설 말이다. 그렇게 보니까, 자연친화적으로 “드넓은 초원에서 양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 묘사된, 그러면서도 양의 배를 가르는 사람들이 일종의 예지자들처럼 다가온다. 시인인 ‘나’도 그렇게 되고 싶은 게 아니겠는가.
이제, 우리가 그런 시야에서 파악한, 김혜순의 시 세계를 지배적으로 구축해온 상상의 사슬 몇 고리를 보다 개념적인 언어로 정리해 보자. 1) ‘나’라는 전존재가 악몽의 몸, 절망 덩어리이다―아마도 이는 이 세상과 삶 자체가 악몽이자 절망이라는 뜻일 것이다; 2) 그 악몽의 내용은 어떤 대립적 관계, 적대적 관계의 다양한 양상들로 구성된다―그 애초의 출발점은 차라리 일방적인 가해/피해(희생)의 관계에 가까운데, 악몽의 길고긴 진행 과정에서 천차만별의 변주를 보여준다; 3) 그러나 그 악몽은 역설적이게도 지극히 시적인 희망의 발전기이다―거꾸로 말해서, 악몽을 악몽으로 보게 만드는 것은 시인만이 가질 수 있는 어떤 “지독한 희망”[2-125]의 눈이다; 4) ‘나’의 시적이면서 궁극적인 꿈은 다시 새롭게 태어나고 싶다는 것이다―“아무래도” 다시 날개 달린 “새가 되려는가”[1-57] 보다.
이 네 국면 중에서 이때까지의 무게 중심은 1)과 2) 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우리들의 음화>>(1990)까지는 “다시 태어나기 싫은”[5-100] 욕망이 더 강했던 것을 봐도, 3)과 4)의 단계는 그 다음에 더디게 자라난 국면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시집의 새로움은 그 무게 중심의 이동과 무관치 않다. 어쩌면 단순히 무게 중심만 이동하는 게 아니라, 무게 중심이 이동하면서 위와 같은 도식의 근간이 흔들리고 재편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새로움일지 모른다. 새롭게 태어나고 싶다는 욕망을 시 쓰기로 실천해나가면서 ‘나’와 관계에 대한 기존의 인식마저 바뀌어가는 게 엿보인다는 말이다.
그러니 더욱, 이런 환원적 어법을 뒤집어 구체적인 프랙탈 도형들로 “말하는 형식”[3-자서], 실재하는 언어의 몸으로 살아내는 방법, 시적 실존의 양태가 중요해진다. 그리고 이미지야말로 그 실존의 핵심이다. 그런 의식으로 다시 읽어보면, 위의 시는 우리가 관심을 두고 있는 색체 이미지들의 관계 또한 흥미롭게 제시한다. 희한하게도, 위의 시는 우리가 중점적으로 다룰 네 개의 색체, 검정색․흰색․푸른색․붉은색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 ‘나’는 검정에 밀봉되어 있고, 저녁이라는 시간적 배경으로 유추하자면 ‘나’를 둘러싼 세상도 어둠-검정이다. 그 검정 속에서 하양(생리대와 크리넥스)은 “날개 없는 새들”로 가라앉는데, 그 하양의 어떤 것은 빨강(핏빛 파도)을 묻히고 있고, 다른 어떤 것은 파랑(푸른 상자)으로부터 나왔다. 뭔가, 색깔들이 부딪치고 얽히며 빚어내는 역동적 드라마가 있을 법하다.
((계속))

■ 김혜순 시인의 시집들을 발간 역순으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한 잔의 붉은 거울>>, 문학과지성사, 2004.
2. <<달력공장 공장장님 보세요>>, 문학과지성사, 2000.
3. <<불쌍한 사랑 기계>>, 문학과지성사, 1997.
4.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문학과지성사, 1994.
5. <<우리들의 음화>>, 문학과지성사, 1990.
6. <<어느 별의 지옥>>, 청하, 1988.
7. <<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 문학과지성사, 1985.
8. <<또 다른 별에서>>, 문학과지성사, 1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