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심사평

■ 당연함과 아쉬움

― 계간 <<파라21>>의 ‘이수문학상’ 심사평

김원일 씨의 <<슬픈 시간의 기억>>은 이미 원숙의 경지를 넘어선 작가의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기존의 문학적 통념에 비추어 보면, 이 작품의 ‘이수문학상’ 수상은 너무도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꼭 이 상을 받아서가 아니라 그런 확고한 평가의 반석 위에 서 있다는 점에서, 김원일 씨의 문학적 성취에 대해 진심으로 축하의 말씀을 드린다.
그럼에도, 나는 이 상의 심사 과정에서 다른 작가들을 추천했었고 그 추천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조금은 아쉬웠던 심정을 솔직히 적어두고 싶다. 왜냐하면 그 통념적 당연함으로부터 얼마만큼 벗어나 있는 젊은 문학상이 한국어의 땅에도 하나쯤은 존재하기를 바랐으며, 그 바람이 새로 출범한 <<파라21>>의 성격과도 맞을 수 있다고 판단했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교과서적 관점에서 완벽성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실패를 무릅쓰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나가려는 시도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고 격려해 주는 그런 상을 머리 속에 그렸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심을 거쳐 넘어온 대상 중에서 내가 거론한 작가들은 배수아, 백민석, 정영문 씨 등이었다. 이 작가들의 작품에서 어떤 결점들을 지적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동시에, 그 속에는 우리 문학의 새로운 미래들이 들어 있다고, 그리고 그것들이 이미 상당히 의미 있는 수준에서 형상화되어 있다고, 나는 믿는다.
결과가 웅변하듯이, 이런 내 생각은 다른 두 분의 심사위원들께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나는 기꺼이 내 입장을 거두어 들였다. 나 혼자 심사를 하는 것이 아니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입장이 소수 의견일 수밖에 없는 게 우리의 명백한 현실인 것이다.

 

■ 깊이와 재미

- 계간 <<문학 동네>>의 ‘신인 장편 공모’ 심사평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이 세 편뿐이었다. 예심을 맡아본 세 분 심사위원들의 말씀을 들어보니, 선뜻 잡히는 작품이 없어 무척 망설였다고 한다. 다른 본심 심사위원 두 분과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당선작 없음’이라는 카드까지 잠깐 논의되었지만, 주어진 현실 속에서 상대적인 최선을 선택하자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정통 문학’(표현이 어색하지만 그냥 쓰기로 하겠다) 쪽에 가까운 편향을 그대로 보여주는 두 편과 ‘키치 문학’의 가면을 쓰고 있는 한 편 중에서 마지막까지 선택의 논란 대상이 된 것은 오히려 후자였다. 아마도 앞의 두 편은 이미 축적된 정통 문학 영역의 양적, 질적 풍요를 고려할 때 그 한계가 더 선명히 느껴진 탓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내 개별적 독후감을 적어보자…
<<어디로 가는가, 그대>>는 요즘 보기 드물게 진지한 주제의식과 단단하게 훈련된 문장력 위에 서있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아프가니스탄 여행과 바미안 불상 탐방을 소재로 삼은 이 작품은, 그것을 바탕으로 인간적 삶과 문화, 나아가 세계 전체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주목받을 만하다. 그러나 세밀한 독서 차원에서 보면, 그 성찰을 이끄는 여러 에피소드들 간의 구성이 너무 산만함을 지적치 않을 수 없다. 한 작품으로서의 총체적 응집력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각 에피소드들의 진행 과정도 다소 진부했다. 묘사가 그 진부함을 이겨낼 만큼 긴장된 힘과 상징성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이 허구의 여행기는 우리 시대나 세계에 대한 효과적인 은유체가 되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왤까? 주제를 너무 조급히 드러내려 했기 때문이 아닐까?
<<당신의 아바타>>는 단문 서술과 대화를 중심으로 훨씬 가벼운 문체를 구사하지만 주제의식은 나름대로 무겁다. 기억 상실과 인간관계의 문제를 연결시키려던 애초의 그 야심은, 그러나 너무 평면적 구도로만 짜여져 있다는 점에서부터 뭔가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수평적으로 흘러가더라도 수직적 깊이를 캐내 보여주는 장치들이 동시에 입체적으로 구축되었어야 했을 텐데, 그런 면이 너무 부족해 보인다. 가령 5장 첫머리 등에서 제시된, 자기 탐색과 규정의 기록 같은 것은 내적으로 더욱 발전할 여지가 있었음에도 지나가는 에피소드 정도로만 취급되고 만다. 그러다보니 후반부로 갈수록 소설의 갈피가 몽롱해지면서 정당한 수습 대신 미진한 봉합으로 끝맺어진다. 왤까? 애당초 주제의식과 문체 사이의 역학 관계를 잘못 설정했기 때문은 아닐까?
끝으로 남은 것이 <<지구 영웅 전설>>이다. 실제로 온갖 공상 과학 만화의 캐릭터들이 등장 하는, 그 자체가 또 하나의 공상 과학 만화 같은, 이 소설답지 않은 소설은 아무튼 재미있다. 그 재미는 우선 경쾌한 입심과 다양한 지식, 그리고 세상을 뒤집어 보는 시선으로부터 나온다. 단선적인 전개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단숨에 읽을 수 있는 것은 그 재미의 무기들을 잘 활용하는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더구나, 그 재미를 가지고 겨냥하는 문제의식도 단순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가 향유하는 문화의 배후에 어떤 음모가 도사리고 있지는 않은가, 세계문화를 조정하려는 자본주의는 어떤 속성을 지니고 있는가, 인종적 열등의식은 미국식 제국주의에 의해 어떻게 조성되는가 등등, 흥미로운 질문들이 던져지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에 대한 답이 너무나 상식적이고 도식적이라는 것은 이 작품의 치명적 약점이다. 재미있게 읽고나서 보니 우리도 짐작하고 있던 뻔한 결론이라니!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내가 보는 관점에서의) ‘진짜’ 문학과 ‘가짜’ 문학의 아슬아슬한 경계 위에 위태롭게서 있다. 또한, 형식적으로도 설득되지 않는 파격이 겉멋처럼 남용된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어떤 형식적 실험이든 필연적 이유가 있어야하는데, 그게 잘 읽히지 않는다. 만화를 흉내내면서 만화를 전복시키려는 의도일까, 자문해 봐도 석연치가 않다. 문학도 하나의 문화적 제도이다. 스스로를 고착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변화시켜나가려는 움직이는 제도이긴 하지만, 그 변화에는 필연적 정당성이 존재해야 한다. 
여러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미는 데 동의했다. 이런 의구심들 너머로, 적어도 자기 체험(이 작가에겐, 만화 체험)에 천착하여 자기 식의 어떤 허구 공간을 만들어 보겠다는 젊은 열정만은 분명히 느껴진 탓이다. 따라서 나는 이 작품을 역설적 가능성으로 읽고 있으며, 앞으로 이 작품을 뛰어 넘을 다음 작품이 나오리라는 기대에 기대어 그렇게 결정했다는 점을, 새로 세상에 나서는 이 신인 작가에서 분명히 전하고 싶다. 이 작가가, 문학의 이름에 값하기 위해서는 선명한 재미보다 불투명해도 참으로 우리 속을 온통 뒤집어엎는 깊이가 필요하다는 내 의중을 기억해주면 고맙겠다. 물론, 이런 말을 했다고 해서 당선에 대한 내 축하의 마음이 반으로 줄어드는 것은 절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