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체험과 예술적 삶에의 꿈

학생들의 연극 공연 팜플렛에 붙일 다분히 형식적인 격려사를 쓰다가, 생각이 좀 번져서 이 메모를 시작한다. 생각의 출발점은 지난 6월…
이게 도대체 무엇인가―하며, 지난 6월에 우리 스스로도 너무나 놀라면서 참여하고 목격했던 것은, 축구를 매개로 한 대규모 ‘스펙터클’의 ‘이벤트’가 우리 모두 속에 내재해 있던 ‘집단적 영혼’을 떠올려 만들어낸 거대한 공동체적 자장이었다. 이 체험은 특히나, 밀폐된 자기만의 공간 속에서 얼굴을 숨기고 익명에 가까운 ID로 인터넷을 떠도는 게 유일한 낙이었을 젊은 세대에게 특이하고 소중한 몸의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아마도 80년대 말의 ‘시민 항쟁’을 겪은 세대까지는, 지나간 젊음을 토해내는 듯한 오랜만의 흥분과 진한 추억에 휩싸여 괜히 눈시울을 붉히고 술을 찾아 헤맸기 십상이다.
이 체험을 비판적으로 보는 관점에 의하면, 그 ‘스펙터클’ 속에는 전체주의와 민족주의―혹은 국수주의―의 냄새가 스며 있다. 원래 집단적 ‘이벤트’에는 그런 성격이 끼어들기가 아주 용이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사실 나도,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허공을 향해 두 손을 내뻗는 똑같은 동작이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모습을 처음 볼 때는 그 느낌을 떨치기 힘들었다. 그러나 되풀이 보면서, 거기 참여하는 사람들―주로 청소년과 젊은이―들의 너무도 단순하고 순진한 표정에 무슨 이데올로기를 착색시키기가 힘들었다. 그들에게 그것은 아직(!) 이때까지 체험해보지 못한 순수한 축제, 경이로운 집단적 놀이였던 것이다.
사실 ‘집단적 영혼’의 체험은 그 자체로 긍정적인 것도 부정적인 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저 인간적으로 가능한 체험일 뿐이다. 가령 문학이 상대적으로 개인적 체험의 영역에 속한다면 연극은 상대적으로 집단적 체험의 영역에 속한다. 집단적 체험이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 아니라 그 집단적 체험을 어디로 몰고 가느냐에 따라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것인데, 그것은 개인적 체험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일종의 균형 감각이 필요한데, 요즘의 젊은 혹은 어린 세대에겐 집단적 체험이 오히려 결핍이어서 그에 대한 무의식적 갈망이 그렇게 폭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문제는 그 체험의 미래이다. 어떻게 그 체험을 의미 있게 승화시킬 수 있을까? 나는 이 물음에 “바로 이거다”라며 대답할 능력이 없다. 혹시 있더라도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곧 추상적 이념,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될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 ‘집단적 영혼’에 부여될 내용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그것을 보고 다루는 의식의 차원에서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나는 하나의 답을 향해 경쟁하는 건조한 분석적 지성 대신 자유롭고 다양하게 대상을 부릴 수 있는 축축한 예술 의식이 여기에 개입되기를 바란다.
운동 경기를 보면서 감탄스런 장면이 그려질 때, 우리는 곧잘 “예술적이다”라는 표현을 쓴다. 운동 경기에는 워낙 우발적 요소들이 많이 개입하기 때문에 그 전체가 하나의 미적 형태로 구성되기 힘들다. 그러나 위와 같은 표현은 거기서 그 가능성을 보고 있으며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는 뜻이리라. 그것이 궁극적 예술이 되는 건 불가능하더라도 적어도 어떤 예술적 느낌을 자아내려면, 어떤 미적 지향성에 근거한 내적 구도가 발현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월드컵 제전에서는 그것이 ‘붉은 악마’들에 의해 어느 정도 연출되었다. 특히 그들이 카드 섹션으로 보여준 함축적 언어와 그에 걸맞은 경기 내용의 조화는 가히 매 경기를 드라마의 차원으로 옮겨 놓기에 충분했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꿈★은 이루어진다”는 구호는 압권이었다. 그 명제 자체가 바로 예술의 한 명제이자 존재 이유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조금 과장하자면, 지난 6월에 우리는 축구를 통해 집단 예술의 한 경지를 즐겼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정작 내가 강조하고픈 것은, 그런 체험이 보다 높은 질적 수준으로 끌어올려져야 하며 일상화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사실, 규모 면에서는 훨씬 작지만,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연극이나 음악 공연장들은 그런 예술적 삶을 위한 놀이터이자 학습장일 수 있다. 그런데 무엇이 그곳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일까? 그런 것을 즐기는 법에 대해 가르치지 못한 잘못된 교육, 사람들의 의식을 눈멀게 하는 현란한 상업주의적 대중매체의 유혹 등등, 이유는 많겠지만, 그걸 여기다 일일이 열거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여기서는 다만 꿈꿔본다. 이번 6월의 체험이 단순한 축구 사랑에 머물지 말고, 예술적인 사회와 예술적 삶에의 지향으로 물꼬를 터줬으면 좋겠다고. 너무 엉뚱한 발상, 너무 엉뚱한 꿈일까? 솔직히 이 꿈의 현실화는 벅차고 아득해 보인다. 그래도 나는 중얼거려본다. “꿈은 이루어진다, 언젠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