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의 한국화

– 대산문화재단의 ‘외국문학 번역지원’ 회고

1999년 초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연찮게 대산문화재단의 신창재 이사장을 만난 자리에서, 나는 대산문화재단이 지향하는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동시에 ‘세계문학의 한국화’가 절실히 필요하며, 이를 위해 당시의 IMF 사태 때문에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던 어문학 전공의 젊은 고급 인력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설명하려 애썼던 것 같다. 그러면서 대산문화재단에서 외국문학 번역지원 사업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었다.
신이사장은 내 말에 큰 관심을 갖고 경청해 주었지만, 솔직히 나는 그 사업이 곧 이루어지리라고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뜻밖의 신속한 반응이 이어졌다. 얼마 후 재단에 근무하는 곽효환 씨를 통해, 사업 시안을 만들어 봐 달라는 전갈이 왔던 것이다. 정말이지, 나는 그때 신이사장에게서 큰 감명을 받았다. 큰 재단을 책임지고 움직이는 사람이 아무런 지명도도 없는 나 같은 평범한 글쟁이의 말을 그토록 진지하게 검토하여 구체화시켜 주었으니 그런 즐거움과 뿌듯함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외국문학 번역 지원’ 사업이 시작되었고, 제안자라는 이유로 나는 기획위원 일을 맡게 되었다. 어느 쪽이냐 하면, 나는 ‘한국문학의 세계화’가 ‘한국적인 것’만을 강조해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한국적인 것’만을 강조할 때, 그것은 외국 독자들의 이국 취향을 일시적이고 표피적으로 만족시키는 수준에서 끝난다. 세계의 눈으로 볼 때, 한국문학은 아무리 한국적이 아니려고 해도 한국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진정한 문제는 그 ‘한국적인 것’이 이 세계의 특이하고 예외적인 존재로서가 아니라 세계의 일부로서, 세계 시민으로서, 세계문학을 구성해나가는 데 어떻게 정당한 역할과 발언권을 확보하느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변화하는 세계문학의 지도를 조감하고 그 관계망 속에서 우리의 위도· 경도를 끝없이 재규정해 나갈 줄 아는 눈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그러한 작업은 바로 세계문학의 올바른 수용과 이해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의 세계문학 수용은 그리 활성화되지 못했었다. 몇몇 의미 있었던 작업들을 부인할 수 없지만(그나마 불행하게도 오래 가지 못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정음사판과 을유문화사판 세계문학전집의 답습이 반복되고 있다. 책방에 나가보면 예전의 그 작품들을 적당히 윤문한, 그러다 보니 번역마저도 신뢰할 수 없는, 도대체 역자가 누군지조차 알 수 없는 책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게 여전히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니 어찌 문학을 보는 눈이 반세기 전에 머물러 있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말은 단순히 새로운 20세기의 성과들이 충분히 수용되지 못했다는 뜻에 머무르지 않는다. 고전 작품들도 거의 식민지 시대의 유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현대문학의 뿌리라는 로렌스 스턴의 <<트리스트럼 샌디>>는 몇몇 전공자들만의 것이었고,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와 더불어 러시아 문학의 한 봉우리라는 곤차로프도 그저 이름만 전해질 뿐이었다. 게다가 상당수 일본어 중역본인 작품들을 새로운 한국어 감각에 밑받침된 정확한 번역과 주석으로 읽고 싶다는 욕구도 채워지지 않았었다. 가령 라블레의 <<가르강튀아 / 팡타그뤼엘>>은 그에 대한 유명한 비평서는 번역되어 나왔는데, 정작 작품은 절판되어 있고, 찾을 수 있는 것도 일본어 중역본 뿐이다.
마침내 작년부터 ‘외국문학 번역 지원’의 가시적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제 막 출발점을 떠난 것에 불과하지만, ‘대산세계문학총서’는 세계문학에 대한 우리의 갈증을 해소해 줄 중요한 계기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금년으로 4회를 맞는 이 사업에 응모하여 채택된 작품들의 목록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그간 얼마나 큰 문학적 결핍 속에서 살았는지를 느낄 수 있다. 특히 일반 출판사들이 상업적 이유로 출간을 기피하는, 그러나 꼭 읽고 싶은, 읽어야만 하는 작품들이 지금 풍요롭게 번역의 완성을 기다리고 있다. 중세 고전에서부터 바로 우리 시대의 전위적 문학에 이르기까지, 또 세계의 지형과 인종을 가로질러 막라된 그 작품들이 우리문학의 찰진 토양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이 원고는 <<대산문화재단 10년사>>에 실릴 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