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미국식’

초현실적인 테러 참사에 전자 오락 게임 같은 보복 공습이 이어지는 ‘탈-현대적’ TV 화면들을 보다가(그것들은 아무래도 화면 저쪽에만 있어야 할 것 같다), 어쩌다 이런 한가로운 상념에 빠져들었었는지 모르겠다. 그 와중의 어느 주말엔가 한 영화 소개 프로에 만화 영화 <슈렉>의 몇 장면이 흘렀는데, 그때 그 영화의 마지막 축제 장면을 흥겹게 하던 <I’m a believer>란 노래가 떠오르며 나를 어린 시절로 이끌어간 게 빌미였다.
그 노래는 원래 내가 중학교 2학년생이었던 1967년에, The Monkees란 밴드–밴드라고?–가 히트시켰던 Neil Diamond의 곡이다(그가 직접 부른 노래도 들을 만하다). 아주 오래동안, 나는 그 노래를 부러 듣지 않았었다. 처음으로 팝 음악을 들으면서 처음으로 매니어임을 자처하기까지 했던 그 밴드–밴드가 아니다!–가 첫사랑의 배신 같은 상처를 남겼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말 그대로의 밴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위조 밴드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그 치명적 허탈감…
전후 사정은 이렇다. 당시, 미국의 대중음악계는 이른바 ‘영국의 공습’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허둥대고 있었다. The Beatles를 필두로, The Kinks, The Yardbirds, The Animals, The Rolling Stones 등등으로 이어지며 숨 돌릴 틈 없이 미대륙을 휩쓰는 더벅머리들의 ‘브리티시 록’ 열풍 앞에서 록 음악의 종주국임을 자부하던 미국의 자존심은 단숨에 무너졌을 뿐 아니라(이 열풍은 The Who, Led Zepplin, Deep Purple, The Cream 등의 ‘하드 록’까지 거침없이 계속된다), 그것을 대체할만한 나름의 실마리도 전혀 찾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아니, 한가지를 찾긴 찾았다. 아주 한심한 실마리였지만 말이다.
그 실마리란 The Monkees라는 밴드의 급조를 이른다. 즉, The Beatles의 초기 모습에 대응하는 10대 스타 밴드가 기획된다. 영화나 텔레비젼 등의 영상 매체로까지 활동 영역을 넓히는 The Beatles 보다 한 술 더 떠, 아예 텔레비젼 연속 프로그램–주 1회 방영되는 코메디 물–을 전제로 구상된 이들은, 오디션을 거쳐 선발된, 그리고 영상 스타일에 맞게 재미있는 ‘캐릭터’로 디자인된 4인조였다. The Beatles보다 더 세련된 더벅머리로 치장하고 나타난 이들은, 그러나 결정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바로 음악 그 자체 말이다.
기타(베이스 포함) 3명과 드럼 1명으로 전형적인 록 밴드의 모양새를 갖추긴 했지만, 이들의 음악적 능력에 대한 의심은 그 당시에도 한편으로 솔솔 흘러나오고 한편으로 쉬쉬했었다는 후문이다. 알만한 사람들이 굳이 그점을 감추려 했다는 것은 그 배경에 어떤 딱한 미국식 공모가 도사리고 있었다는 반증이리라. 아무튼 30여년이 지나 다시 씨디로 복원되며 밝혀진 바에 의하면, 그 네 멤버는 ‘보칼’ 이외에는 거의 한 역할이 없다(Micky Dolenz의 목소리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작곡은 물론이고 기타조차도 제 손으로 치지 않았다(나중에 독자 활동을 하는 Mike Nesmith만이 그나마 몇 곡을 만들고 연주도 하고 했다). 요컨대 그들은 허수아비, 더 나아가 사기의 희생자 아니면 공범자였던 것이다.
The Beatles와 허깨비 The Monkees 사이의 차이는 새삼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무엇보다도, 자기정체성을 갖춘 자생적 밴드인가, 그 연장선에서 자기 세계를 전개해나갈 능력을 갖춘 밴드인가–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염두에 둘 때, 후자는 록 밴드의 이름에 전혀 걸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아이러닉한 사실은, 그런 문제를 제쳐놓고 노래만 듣는다면, 후자의 허울 아래 발표된 몇몇 노래들이 ‘팝 뮤직’으로서는 당대 최고의 수준에 이르러 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영국의 침공’에 대항하기 위해, 당대 최고의 미국 아티스트들이 동원되었으니까. 유명한 단짝 프로듀서 Tommy Boyce & Bobby Hart의 주도 아래, Carol King과 Gerry Goffin 커플, Neil Diamond 등등(Harry Nilson 이름도 보인다)이 노래를 만들고 유능한 세션맨들이 악기 연주를 나누어 맡아 최고의 소리를 창출해냈던 것이다.
여기서 정말 근본적인 물음이 제기된다. 그렇다면 애당초 그들이 할 수 있는 그런 식으로 노래를 만들어 ‘미국적인 것’을 주장할 것이지(만약 그랬다면, 그때 이미 집단 창작에 대한 새 경지가 열렸을지 모른다), 왜 굳이 영국식을 그대로 흉내내면서 거짓으로 그들을 눌러보려 한 것일까? 그런 방식이야말로 자기식이라는 자각이 아직 없었던 것일까? 그런 창조적 자존에 대한 자의식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남이 선점한 영역에서도 자기들이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뒤틀린 열등의식의 반작용일까? 그런 것들의 어떤 복합체가 결국 일종의 사기에까지 이르지 않았을까?…
당시의 정황을 잘 돌이켜보면, 그때 ‘영국의 침공’에 맞설 수 있는 진정 미국적인 음악은 흑인 ‘소울’ 음악이었다. ‘브리티시 록’의 자양분이었던 미국 ‘블루스’의 60년대판 버젼인 ‘소울’은 영국 음악이 아직 감당할 수 없는 영역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미국만의 자산일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주류 대중음악계는 이 진실을 외면했다. 이때의 주류란 백인 음악계를 이르는데, 우습게도 이들은 흑인 음악에 대해서도 똑같이 대응한다. 대표적 예로, 그 무렵 흑인 5인조 가족 밴드인 Jackson Five–Michael Jackson이 속해 있던–가 국내의 선풍을 일으키자, 그 ‘주류’는 그것에 모방-대항하는 백인 가족 밴드 Osmond Brothers를 짜냈다(미국 ‘소울’ 음악에 대한 편견 없는 평가도 영국에서 먼저 제대로 이루어졌다).
나는 앞의 앞 문단에서 던졌던 물음들에 대해 물증을 제시할 수는 없다. 다만 내 떨칠 수 없는 심증만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되, 이 모든 사태의 이면엔 일종의 미국중심주의가, 더 나아가 백인중심주의가 숨어 있었다. 그 ‘중심’은 ‘영국의 침공’이란 표현–이제와서 밝히지만 나는 이 표현이 매우 못마땅하다–에서 보듯 문화마저도 대립적인 것, 적대적인 것으로 보는 일종의 무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창조적 자존의 전통을 결하고 있어, 상대에 대한 적대적 대응마저도 상대의 모방을 통해 이루려했다. 아마도 계속 그러해서, 90년대의 ‘제2의 영국의 공습’이라는 결과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아닐까?…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지금, 테러에 대해 똑같은 테러 방식을 흉내내면서–아니, 더 증폭시키면서– 중립은 없고 동지가 아니면 적뿐이라고 단순 이분법을 외치는 막강한 미국 ‘갱스터’의 황당무계한 소리를 듣자니, 정말이지 기분이 더럽다.

■ 잠깐, 영화 <슈렉>에 대해서
글 머리에서 언급한 김에 덧붙이는 이야기로, 이 영화는 요즘 유행하는 패러디로 똘똘 뭉쳐 아주 재미있었다. 그렇지만, 그래서 그게 도대체 뭔대?–라는 질문에 이 영화는 무책이다. 다시 말해, 이 영화의 패러디는 재미를 위한 자본주의적 발상이지, 세계관의 반성·전복으로 우리를 이끄는 근본주의적 발상은 아니다(‘근본주의적’이란 말에서 회교 근본주의를 연상하지는 마시길!). 디즈니 만화의 표피적 행태들을 뒤집는지는 몰라도, 미/추의 이항대립을 뒤집는 척해도, 선/악의 적대적 근본 구도를 뒤집지는 않는다. 나쁜 놈은 여전히 나쁜 놈이고 좋은 놈은 여전히 좋은 놈인 것이다. 끔찍한 결정론!
<슈렉>도 결국 헐리우드식에 대항하여 헐리우드식을 모방하는, ‘어떤 미국식’의 한 전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