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스(밤의 여신)>라는 시 한 편

뒤숭숭한 꿈으로 범벅이된 밤을 보내고나서, 산란한 마음을 다듬으려 집어든 <<20세기 프랑스시 앤솔로지>>를 뒤적이다가, 카트린느 포지(Catherine Pozzi: 1882-1934)라는 시인의 <닉스(Nix: 밤의 여신)>라는 시에 시선이 멈췄다. 난생 처음 듣는 이름이어서 보르다스판 문학사전을 뒤져보았지만 나오지 않았다. 앤솔로지의 짧은 소개에 의하면, “음악, 미술, 시만큼 물리학, 수학에도 열정적이었던” 그녀는 사후(1935)에 출간된 한 권의 시집을 남겼다. 개인사를 모르는 그만큼, 그리고 단 한 권의 시집으로 남아 있다는 그만큼, 시를 읽으며 받은 느낌은 정결했다.
시는 죽음의 실존적 울림을 고전적인, 절제된 어조로 노래하고 있다. 노래되는 것은 엿보여진 죽음의 이미지들과 죽음 앞에 선 삶의 풀리지 않는 의혹들이되, 노래하는 것은 관조의 정신이라고나 할까. 그녀의 시대에 이런 시는 잘 ‘먹혀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짐작이 든다. 그런 사정은 지금도 다름없겠지만, 그러나 문득 정지해 있고 싶은 시간에는, 밖을 닫고 안으로 침잠하고 싶은 시간에는, 천천히 이미지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읽게되는 시였다. 되풀이 읽다가 내가 무엇을 읽고 있는지를 고정시키기 위해 우리말로 옮겨보았다(간단한 시인 것 같은데도 번역은 역시 어렵다).
…그러고보니 어젯밤의 뒤숭숭한 꿈은 죽음과 관련된 것이었나보다.

닉스(밤의 여신)

오 그대들 나의 밤들이여, 오 기다려온 검은 여인들이여
오 오만한 땅이여, 오 끈질기게 감춰져온 비밀들이여
오 오랜 시선들이여, 오 느닷없는 구름들이여
오 닫힌 하늘 너머로 허락된 비상(飛翔)이여

오 거대한 욕망, 오 퍼져나가는 경이(驚異)
오 매혹된 정신의 아름다운 질주
오 가장 고통스런 병, 오 추락하는 은총
오 아무도 통과하지 못했던 열린 문

나는 모르네 영원한 체류지로 들어가기 전에
왜 내가 죽어야하는지 잠겨야하는지를
나는 모르네 내가 누구의 포로인가를
나는 모르네 내가 누구의 사랑인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