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 신작시] 시청과 광화문 사이에서 우연히… |최규승|

- 시청과 광화문 사이에서 우연히 일어날 장면, 또는 사건 몇 가지

하늘을 가르고 광장의 꽃들이 핀다 거기 풀빛으로 머리카락을 염색한 사람들 꽃잎은 분분하고 시선은 난반사 구름을 만든 사람들 광장 귀퉁이에 서 있다 그들 모두 손으로 하늘을 가린다 스피커의 울림이 손을 흔든다

환풍기가 고장 난 지하보도 곰팡이가 벽을 들뜨게 한다 그곳을 통과하는 사람들은 흥분한다 마음을 잡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바닥에 떨어진 가방이 입을 벌려 소리친다 조명이 흔들린다 발걸음 뒤집힌다

점멸하는 신호등 사이로 총알택시가 내달린다 점멸의 간격은 일정하다 택시요금은 불규칙하다 둘 사이의 관련성을 연구하는 정부산하 연구소의 요원들이 대거 투입된다 바람이 불면 계산은 복잡해진다 예산이 증액된다

오래된 시인들이 어머니와 누이를 모두 데려간다 그들의 시는 낡은 벽에 인쇄되어 있다 해변으로 가는 길이 마침표대신 찍혀 있다 누이는 바닷물에 몸을 적시고 어머니는 모래찜질을 한다

천막을 찢고 지난 세기의 인물들이 나타난다 달이 뜨고 그 위를 줄지어 걷는다 그들은 모두 모자를 쓰고 있다 걸음은 가볍다 달을 빙 둘러선 인물들이 회고록으로 끝말잇기를 하고 있다 끝말을 잇지 못한 인물들이 한 명씩 빠져나가자 달이 조금씩 찌그러진다

성스러운 가족의 인터뷰를 준비한다 노트북 컴퓨터의 자판이 미온적이든 적극적이든 상관없다 주어진 질문에 답변은 맹목적이어야 한다 길목을 돌면 꺼진 촛불을 들고 인터뷰할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렇게 약속되어 있다

녹슨 철망을 흔들자 분수가 솟는다 분수가 꺼지자 철망이 벗겨진다 철망을 다시 흔들자 분수가 다시 솟는다 반복되는 시간이 지겨워 작곡가는 음악을 만든다 아이들이 그 곡에 맞춰 철망을 넘는다 분수 끝을 타고 오른다

시인은 이곳에서도 무정부주의자 주민세 고지서에 정부전복계획이 기록되어 있다는 소문이 떠도는 거리 지령은 확인불가 암호해독은 필수사항 지난 시절의 난수표는 무용지물 이 모든 상황을 기록한 것이 시집이다 그렇게들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