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칼럼] 가장 큰 정사각형이 될 때까지 |이제니|

너는 왜 매번 지우개가 없는 거냐. 책상에 두었는데요. 매번 책상에 두었다면서 왜 매번 지우개가 없는 거냐. 글쎄요. 이 책상이 네 책상이 맞긴 맞는 거냐. 그럴 걸요. 아마도. 언제부터 네 책상이었느냐. 기억나지 않는데요. 어서 지우개를 찾아오너라. 발 없는 지우개를 가져오너라. 오늘 장기자랑은 어땠느냐. 그저 그랬어요. (또 놀림을 받았구나. 놀림을 받았어. 놀림을 받아서 또 울었구나. 울었어.) (아니에요. 아니에요.) 너는 왜 최대공약수를 구해야 할 때 최소공배수를 구하고 있는 거냐. 문제를 다시 찬찬히 읽어보아라. 사탕 18개와 초콜릿 24개를 최대한 많은 접시에 남김없이 똑같이 나누어 담는다고 했잖니. 최대한 많이. 최대한 많이 나누어. 최대한 많이 나누어 담는다고 했잖니. 너는 나누어 담는 것이 싫은 거냐. 아니요. 그럼 너는 사탕이 싫은 거냐. 아니요. 초콜릿은 좋아하잖니. 네. 좋아해요. 이모도 좋아한단다. 초콜릿보다는 초콜렛. 언제나 초콜렛이 좋았단다. 언제나. 언제나. 그런데 너 언제까지 저 인공부화기의 불빛을 켜둘 셈이냐. 저 부화기의 가장자리를 따라 흐르는 전류의 소음이 극심한 두통을 일으키는구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요. 너는 저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 무언가 끓어 넘치고 있는 것 같구나. 어디선가. 무언가가. 한없이 끓어 넘치고 있는 것 같구나. 한없이. 무한히. 신음하고 있는 것 같구나. 알을 깨고 나오지 못한 저것들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거냐. 저 알 속에서. 저 어둠 속에서. (어둠 속에서 얼굴 없이 죽어가는 저 깃털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몰라요. 몰라요.) 그렇다면 이제 몇 마리 남은 거냐. 그것들이 어미 없이 알을 깨고 나온 것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미 없는 발들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냔 말이다. 어미 없는 발이라는 말이 싫다면 어미 없는 날개라는 말은 어떠냐. 어미 없는 새는 어미 없는 새로 살아가게 될 거다. 앞으로. 영원히. 어미 없는 새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데. 그들은 이제 어미 없는 새가 된 게다. 아니야. 야단치는 게 아니야. 이모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 피곤하구나. 눈이 빨개요. 그래. 충혈 됐어. 충혈. 충혈이라니. 출혈이라면 또 모를까. 이모는 좀 누워야겠구나. 이모는 누워 있을 테니 너는 계속 문제를 풀거라. 저 메추리들은 저 뜨겁고 투명한 유리관 속에서. 너는 언제까지 저들을 저 속에 가둬둘 셈이냐. 몰라요. 몰라요. 언젠가는 저 인공부화기의 불빛도 꺼지게 될 거다. 언젠가는 너도 저들을 잊게 될 거다. 사물의 이름을 잊는 방식으로 너도 저들을 잊게 될 거다. 그런 뒤 너는 너만의 새를 머릿속에 키우게 될 거다. 네 머릿속에서 너의 메추리가 날개를 펼칠 때 너는 그제야 그들 또한 너를 잊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게다. 네가 저들을 잊었듯이 저들 또한 너를 잊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거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너와 메추리는 다시 처음처럼 온전히 만나게 될 거다. 이모. 왜 자꾸 혼잣말을 하세요. 이모는 혼잣말이 무엇인지 모른단다. 이모는 그저 숨을 쉬고 있을 뿐이란다. 한 번의 들숨. 한 번의 날숨. 들숨이 멈추는 순간. 날숨이 멈추는 순간. 그 순간순간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너는 아느냐. 몰라요. 몰라요. 이모도 모른단다. 그런데 호흡법이라면 누구보다도 네가 잘 알고 있지 않느냐. 긴장하지 않기 위해,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너는 하루에도 몇 백번 심호흡을 연습하지 않느냐. 그러고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언제나 낯빛이 백지빛으로 변하며 모든 일을 다 망치지 않느냐. 아니에요. 아니에요. 이모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피곤하구나. 고모를 불러와야 할 지도 모르겠구나. 이모는 힘이 없구나. 말할 힘도, 서 있을 힘도, 앉을 힘도, 누울 힘도, 쓸 힘도 없구나. 그래서 이모는 노래를 부른단다. (이모의 노래가 들리느냐.) (아니요. 아니요.) 아니, 너 왜 또 최소공배수를 구하고 있는 거냐. 최대공약수라고 하지 않았느냐. 통분을 할 때만 최소공배수라고 하지 않았느냐. 가로 16cm, 세로 6cm인 직사각형 모양의 종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종이에서 가장 큰 정사각형을 잘라내고, 남은 종이에서 가장 큰 정사각형을 잘라내려고 합니다. 마지막에 남은 종이가 정사각형이 될 때까지 반복할 때, 마지막에 잘라내는 정사각형의 한 변은 몇 cm인지 알아보시오. 알아보시오, 라고 했잖니. 자, 알아보도록 하자. 가장 큰 정사각형이라고 했잖니. 가장 큰. 잘라내라고 했지. 잘라내는 거야. 반복해서. 반복해서. 이 직사각형을 잘라내는 거야. 가장 큰 정사각형이 될 때까지. 잘라내고 남은 직사각형을 또 잘라내는 거야. 가장 큰 정사각형이 될 때까지. 자꾸 자꾸. 언제까지 잘라내야 하느냐고. 가장 큰 정사각형이 남을 때까지다. 가장 큰 정사각형. 가장 큰 정사각형이 될 때까지. 가장 큰 정사각형이 되는 일은 어려운 일이지. 정말 어려운 일이야. 이모도 시도해봤지만 실패 했단다. 이모는 정사각형에 가까운 직사각형이 돼버렸지. 그래서 인생이 이토록 피곤하단다. 그래. 더 잘라내야지. 가장 큰 정사각형. 가장 큰 정사각형이 될 때까지. 이제 잘라낼 종이가 없어요. 아니야. 더 잘 살펴보아라. 아직도 잘라낼 정사각형이 있을 거야. 가장 큰 정사각형이. 잘라낼 종이가 없을 때조차도 잘라낼 가장 큰 정사각형이 있는 법이지. 이모, 머리가 아파요. 이모도 그렇단다. 언제나 머리가 아프지. 이모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 피곤하구나. (이모는 조금 더 마시고 그만 죽어버리고 싶구나. 이모는 조금 더 마시고 그만 죽어버려도 좋을 것 같구나.) 지우개가 떨어졌잖니. 바닥에. 여기 또 지우개가 있구나. 여기에도. 여기에도. 책상에 둔 지우개가 바닥에 있구나. 바닥에. 지우개가 여기. 지우개가 여기. 지우개가 여기. 바닥에 있구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