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칼럼] 이사 |차미령|

누군가 물어오면 잠시 고민하곤 했던 단답형 질문 하나. “고향이 어디입니까?”

D_ 출생지. 프로필에 기재된 곳. 그래서인지 “고향이 D죠?”라며 알은 척 하는 사람을 더러 만나게 됨. 기억 속에 없는 곳임에도, D출신들에게 막연한 동질감을 느끼는 것은 왜일까. 공식적으로 묻는 질문에 공식적으로 답했던 곳, 철들기까지.

P_ 모름지기 고향이라면 유년의 추억이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겐, P. 그러나 그렇게 답한 적 없고, 답할 수도 없는 곳. P를 떠난 후 다시 찾은 적 없는, 그래서 언젠가 한번쯤 둘러보고픈, 여덟 살에서 열세 살: 학교 앞 문방구들, 마당 안 무화과나무, 무엇보다 동네 어귀 빵집. 팥빵과 크림빵, 도넛 따위가 든 종이봉투를 안겨주시던, 아직은 젊었을 아버지 생각.

C_ 이즈음 애매하게 피해가려 자주 하는 답은, “본가는 C에 있습니다.” 명절이나 방학, “고향 언제 내려 가냐”는 물음에 적당한 말. 사투리 안 쓴다고 하시는 분들, 아니라니깐요. C로 전학 왔을 때 사투리를 쓰는 학생은 나 혼자인 것만 같았답니다. 그때부터 K지역 네이티브로서 ‘바이링구얼’ 연습이 시작된 셈. C는 당시 외지인이 90프로가 넘었다는, 만화가 정훈이의 회고 참조.

M_ 혹 어떤 이들은 출신고를 묻는 말로 출신지를 가늠하곤 한다지. 주로 학교에서 새로 만나는 사오십대 어른들. M여고라 답하면, 곧바로 ‘M 사람’ 됨. 하지만 M에 대해 아는 것 거의 없음. 아는 것이라곤, 단지 교실들. 여고시절 교실엔 M, C, J에서 온 친구들이 한반에 섞여 있었다. C에서 온 우리들은 새벽부터 밤까지 꾸벅꾸벅, ‘봉고’로 오갔었지. (M과 J와 C는 2010년부터 행정구역상 C로 ‘통합’됨)

T_ D, P, C, M…… 이런 내력을 읊어 가면, 누군가는 내 유년의 고단함을 넘겨짚기도 한다. 하지만 그 중 어느 곳에도 정들지 않았는걸. 그래서인가, 같은 경로를 밟을 수밖에 없는 내 혈족 자매는 저 질문에 T라 답한다 한다. T, 내 부모의 고향. 본적지를 D에서 T로 옮긴지 꽤 되었다. 할아버지가 생존해 계실 때 그곳은 굴 캐는 어촌 마을. 지금은 관광지가 된 T가 “태어나서 자란 곳”은 아니더라도 “마음속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좋겠다 싶은 곳이지, 그런 곳일 수는 없는 것이다.

S_ 그러니, 서울 S동. 많은 이들이 한번 떠나면 다시 돌아와 터를 일구지 않는 곳. 다만 인생의 한 시기에 잠시 거쳐 가는 곳일 뿐인 그곳. 하지만 지금까지 내 인생의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곳이란 생각에, 잠시 놀라다. 방도 아니고 집도 아닌 그곳에서, 베란다로 밀려나간 책들이 습기를 머금고 시들어가는 그곳에서, 오래 살았다. 어디나 다 타향이고, 어디나 다 객지인 사람이 되어, 그렇게.

K_ 새해를 앞두고, 이삿짐을 꾸리며, 이제는 역마 인생에 대해 생각한다. ‘고향’에 대해서도, 또 ‘고향 없음’에 대해서도 적잖은 글들을 읽었지만 그것들을 복기하고 싶지는 않은 밤. 자료집들을 정리하다 연구실이라는 이름의, 그간 이사해온 작은방들에까지 생각이 미치다. 엊그제 짐을 챙겨 나올 때 느닷없이 눈물 고였었다. 언제부턴가 곁에 동료가 있건 없건 많건 적건, 읽고 쓸 때의 나는 늘 혼자라고 생각했다. 이 글에서 저 글로 옮겨 다니는 삶은 자유로운 것일까, 고독한 것일까. 자유와 고독을 연결하는 접속어는 무엇일까. 근거지가 희미해진 어느 사람은, 이번에 싸는 짐은 인생의 몇 번째 짐일까 세어 보다 기어이 딴생각에 접어드는 것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