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칼럼] 거미는 거미줄에 걸리지 않는다. |최제훈|

“거미는 왜 거미줄에 걸리지 않는 줄 알아?”
누군가 이런 질문을 했을 때 난 당연히 난센스 퀴즈라고 여겼다. 답을 알고 있는 건 아니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문제라 궁금하기도 했다. 그 사람이 실실 웃으며 질문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난 본능적으로 난센스 퀴즈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거미가 제가 쳐놓은 거미줄에 걸려 바르작거리는 꼴은 너무 우습지 않은가.
나는 원래의 답변보다 훨씬 더 기발한 답변을 내놓아 질문자를 머쓱하게 만들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거미와 거미줄로 우스개를 만드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너무나 골똘히 생각에 잠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아니면 기다리다 지쳤는지, 그는 순순히 답을 알려주었다. 결론적으로 난센스 퀴즈가 아니었다. 하긴, 그는 평소 과도할 정도로 진지한 사람이었다.
답은 거미줄은 두 종류로 되어 있기 때문이란다. 중앙에서 방사상으로 퍼져가는 날줄(편의상 이렇게 표현하자)과 날줄 위로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가는 씨줄이 있는데, 끈끈이는 씨줄에만 묻어 있다는 것이다. 거미는 날줄만을 밟고 다니며 씨줄에 걸린 곤충들을 잡아먹는 것이고. 거미, 역시 대단한 녀석이다.
자연계가 보여주는 절묘한 균형 감각은 언제나 감탄을 자아낸다. 하루살이도 빠져나가지 못하는 그 촘촘한 거미줄 위에서, 거미는 자신만의 사적 영역을 확보하고 삶을 영위해나가는 것이다. 물론 거미줄에 걸린 하루살이에게는 사적이건 공적이건 삶 자체가 끝장나겠지만, 이 역시 자연계의 균형 감각일 테니 어쭙잖은 동정심은 접어두겠다.
World Wide Web이라는, 말 그대로 지구 전체를 덮는 거미줄 위에서 오늘날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도입된 지 채 20년도 되지 않아 인터넷은 우리네 삶에 끈끈하게 엉겨 붙어 생활 모습 자체를 하나하나 바꾸고 있다. 인터넷을 자리 차지하지 않는 백과사전 정도로만 활용하는 나조차도 몇 개의 이메일 계정을 가지고 있고 가입한 사이트를 일일이 기억하지 못할 정도이니, 이미 그 거미줄에 대롱대롱 걸려 있는 셈이다.
인터넷과 사생활. 얼핏 상충되어 보이는 둘의 관계를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양상이 발견된다.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사생활을 불특정 다수 앞에 적극적으로 공개한다는 것이다. 블로그나 미니홈피,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혹은 ‘나의 신혼집 꾸미기’ 같은 동호회 카페를 통해, 자신의 사적인 영역을 내보이는 걸 즐기고 있다. 즐기는 차원을 넘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보았는가가 경쟁이 되고 있다. 이미 공개(publicity)와 시민(citizen)을 합성한 퍼블리즌(Publizen)이라는 신조어가 나온 것이 몇 년 전이란다. 소설 『1984년』에서 개인의 사생활을 감시하는 ‘빅브라더’의 존재를 비장한 표정으로 경고했던 조지 오웰이 본다면, 말없이 돌아서서 헛기침을 해댈지도 모르겠다. 사생활을 공개하는 것이야 그 사람의 사생활이니 누가 뭐라 할 바는 아니겠지.
그런가 하면, 정반대의 극단에서는 개인의 사생활 공개가 치명적인 암살 무기로 이용되고 있다. 일명 ‘신상 털기’라고 하는 것. 요즘은 무언가 이슈가 되는 사건만 있으면 금세 관련자의 신상이 낱낱이 공개되어 순식간에 퍼져나간다. 도대체 어떤 도술에 의해 그게 가능한지 나로서는 상상도 안 가지만, 단 하나의 이메일 계정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게시판에 단 하나의 글이라도 올린 적이 있다면(이인성 선생님의 홈페이지에 올라갈 이 글도 포함에서), 누구도 이러한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양이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최근에 이슈가 됐던 30대 여교사와 중학생 제자의 성관계 사건이 아닐까 싶다. 둘이 사랑해서 했다는데, 왜 제3자들이 그렇게까지 흥분하고 토를 다는 것인지…… 법적인 문제나 쌍방의 관련자들로부터 받는 윤리적, 물리적 비난이야, 사랑의 원시적인 힘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몽매한 문명사회에서 살아가는 대가로 여겨야지 어쩌겠는가. 하지만 여교사와 제자는 물론 여교사 남편의 시시콜콜한 신상 정보까지도 모든 대중에게 까발려지는 건 그들이 받아야 할 사랑의 대가가 아닌 것 같다. 초등학생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흉악범의 신상 공개 문제도 사회적 공론의 대상이 되는 마당에.
슬슬 ‘신상 털기’를 사적인 보복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례도 생기는 모양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주로 대중에게 영향력을 지닌 공인이 누군가로부터 모욕당한 사례를 슬쩍 털어놓는다. 물론 ‘네티즌 수사대’가 그 누군가의 정체를 밝힐 수 있을 정도의 단서를 자연스럽게 흘리는 건 기본적인 센스다. 그러면 곧 ‘누군가’의 미니홈피에 악플의 융단폭격이 가해지고, 이내 문을 닫는다. 인터넷상에서 집단 린치를 당하는 것이다. 이런 일은 확실한 악의를 지닌 한 사람의 집요한 해코지에 의해 벌어지는 게 아니다. 일단 정보만 던져지면 별로 양심에 거리낄 것도 없는, 바늘 끝만 한 수많은 악의에 의해 일파만파로 퍼져간다. 때론 잘못된 정보가 퍼져나가기도 하지만, 린치는 이미 끝난 다음이다.
얼마 전 미국에서 자신의 나체 사진이 인터넷에 공개된 십대 소녀가 목을 매달아 자살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런가 하면 일본의 한 이십대 남성은 집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하는 장면을 인터넷에 생중계해 충격을 주었다. 누구나 사생활을 공개할 권리도 있고 보호받을 권리도 있다. World Wide Web이라는 인공의 거미줄에도 날줄과 씨줄의 절묘한 균형 감각이 가능하게 될까? 아무리 진지한 퀴즈라고 해도, 거미가 제가 쳐놓은 거미줄에 걸려 바르작거리는 꼴은 너무 우습지 않은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