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칼럼] 오랜 시간 도시를 따라 걸어왔다 |백가흠|

‘롤모델(role model)’이란 단어가 언제부터 있었는지 알 길이 없으나, 내게는 아직도 생경하기만 하다. 국립 국어원에도 2003년에야 등재된 것을 보면 신어임에는 분명한 사실, 뒤집어 말하면 예전에는 이러한 말이 필요 없었거나 쓰임이 그리 사람들에게 신통치 않았던 것이리라. 그럼에도 실은 그 개념이라는 것이 모호해서 도대체 무슨 말을 어찌해야만 하는 것인지 갈팡질팡, 과연 어떤 의미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지 확연히 떠오르지는 않는다. 분명 내게는 이 단어가 전혀 필요 없었던 시절임이 분명, 지금도 그 생각이 확연하게 사라지진 않은 듯.
소설 말고는 진진하게 글 쓰지 않겠다 마음 정한지 십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펜만 잡으면 진지함, 고루함은 어디 숨어있다 튕겨져 나오는 것인지, 이 마음 이런 글 쓸 때 참으로 쓸쓸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곰곰 롤모델을 생각해보니, 자꾸 거부감이 드는 것이 헷갈리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혀에서 롤모델, 롤모델 하고 한 달 여 동안 혀를 굴려보았더니 뭔가 개운치 않고, 가끔은 꺼림직도 하며, 은근 자존심도 상하려다 만다. 여러 사람들이 머릿속을 훑고 지나가는 모습에, 영 기분이 아니올시다. 그건 또 왜 그러한가, 곰곰 생각해보았더니, 존경하는 사람과, 무시해야할 사람과, 닮고 싶은 사람과, 절대로 닮고 싶지 않은 사람과, 넘어서고 싶은 사람과, 밟아버리고 싶은 사람과, 밟히는 사람 등등이 모두 구분되어 마음 한 구석에 버려져 있는 바, 이 모든 것을 합쳐 놓은 사람 없느냐 하고 묻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인데, 이 롤모델이라는 개념은 그런 의미에서는 역시 풋내기 단어임이 분명해 보이는 것이다.
롤모델은 존경하는 사람인가, 삶을 따라가고 싶은 사람인가의 차이? 존경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의 삶을 따라가고 싶다던가 하는 데에는 이상한 자존감이 생겨난다. 내 삶이 누군가 이루어놓은 모범적인 삶의 표본을 따라가거나 소망으로 삼기에 자존심이 상한다는 말이다. 물론 천성 소설가의 삐딱하게 굴기의 일환이겠지만 이는 없는 이만 못하지 않은 일인가. 누군가를 존경한다는 것은 그 의미가 이와는 다르지 않는가 말이다. 이 단어야말로 경쟁구도의 삶에 편집증적인 증세가 완연하여 생긴 현대의 말 시래기가 분명해 보인다. 아직도 내가 이 단어의 의미파악을 잘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롤모델’이라고 하면 내가 ‘롤모델’을 넘어서고야말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함축되어 있는 듯 느껴진다. 이는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있을 수도 있다. 허나 이것이 내게 ‘롤모델’이니 어쩔 것인가.
나는 아주 최근에 문단 시인 후배에게서 이 말을 여러 번 들었다. 말인즉슨, 내가 지들의 롤모델이라고 말한 것이었는데, 그들이 하는 말이 칭찬을 과장되게, 혹은 선배에게 예쁨이라도 받고자 내가 기분 좋아라 하는 얘기인 것 같아, 나는 기분이 엄청 좋은 척을 했었드랬다. 허나 맘속에서는 이걸 글 쓰는 놈들이 칭찬이라고 하는 것인가 싶기도 한 것과, 이상하게 기분이 언짢음이 드는 것이었는데, 이유는 그들이 말하는 ‘롤모델’이란 단어 안에 이상하게 나의 정치성에 대한 부러움 같은 것이 섞여 엿보였기 때문이다. 이는 ‘형, 소설 참 좋소.’ 하는 것도 아니요. ‘형님은 사람 사이, 좋은 관계가 좋아 보입니다.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들린 것이었다. 시간이 좀 흘렀지만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정확히는 내가 가진 선배들과의 관계라든지, 혹은 데뷔한 지 십년 쯤 되었으니 문인으로써 자연스럽게 생겨난 경험이나 쓰임 같은 것이 이제 갓 등단한 신인의 자신들의 처지와는 다를 테니, 당연하게 생각되면서도 완벽하게 이해불가 한 이유는 엉뚱한 것을 롤모델로 삼으려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롤모델은 상대적인 한 사람의 부러움 내지는 질투에서 유발된 바로 그 엉뚱한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데 자연스러운 일은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물론, 나는 그 어떤 모델이 될 수 없어, 철부지 후배들의 입을 술로 막아버렸다. 고기도 한 점 곁들여주면서. 그런 의미에서 이럴 때는 술이 완벽한 ‘롤모델’이 아닌가 말이다.
이 지금 시대에 롤모델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작가라는 직업이 저자거리 한복판에 굴러야만 하는 길이라 이는 아무리 무심하려해도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니 필히 내가 알지 못하는 그 무엇이 숨어있으리라는 믿음이 쉬 사라지지 않는다. 오래 붙잡고 있다 보니 이유가 어떻고, 의미가 보편적이지 않더라도 그런 것 하나 쯤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다 롤모델로 삼은 그 누구를 목표로 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새로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또 목표로 삼으면 어떠할까 그게 문제가 될까. 왜 나는 단어의 뜻을 정립하고 맞게 매겨진 의미를 찾으려 한 것일까 외려 내가 한심스러울 뿐이다. 이런 일상을 반복하지 않는 그 누군가가 있다면 내 롤모델이 확실하게 되어줄 터인데. 나는 짐짓 고민스럽고, 진지해진다. 여전히 롤모델, 롤모델 혀를 굴려본다. 신기하게도 혀를 굴릴 때마다 평소 내가 그들의 삶에 감동받아 마지않던 열혈지지자들이 머릿속에서 한 롤의 필름이 돌아가듯 선명하게 펼쳐진다.
한동안 롤모델이랄 수 있는 사람들을 곰곰 떠올려 보았더니 대부분이 예술가들이다.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한국 소설가들, 시인들, 외국 문호들, 그리고 화가들. 갑자기 수가 불어나더니 셀 수도 없을 지경이다. 이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은 내 자신을 학대하는 일 같아 그만둔다. 그야말로 부러움이 하늘을 찌르고 질투가 나서 싫어지기 시작한, 어떻게든 그들의 예술성에 흠집을 내고자 노력했던, 내 자의식의 우월함을 표출하기 위해 갖다 붙였던 수많은 예술 작품들. 진정한 롤모델들이다. 이렇게 보니 롤모델이라는 것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하는 직업에 있어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롤모델이 갖고 있는 여러 연유 중 역시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다. 이는 상대적인 성취감이나 자존감이 뒤섞여 발현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성취감과 삶의 목표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이미 한 생을 풍미해놓은 그 무엇을 목적으로 삼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롤모델을 삼아야하는 것이 아니라 대리적인 또 하나의 삶을 참고해야만 올바른 롤모델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도 지울 수 없는 사람이 남는다. 이야말로 진정한 롤모델인가? 확신이 서지 않지만 마음속에 그래도 지울 수 없는 한 사람은 남는다. 나는 철들고 일명 ‘노빠’로 십 수 년 이상을 살았다. 지금도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고, 닮고 싶고, 그리운 마음 한없으니 아직도 나는 ‘노빠’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 분명하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알 수 있겠지만 오래도록 시의성과 시대성을 초월한 것처럼 느껴지니, 이는 지극히 주관적인 일, 어쩔 수 없는 일. 생각이 이쯤 되니 갑자기 술이나 한 잔 하고 이 원고 파토 놓고 싶어진다. 그가 좀 더 오래 살아줬으면 좋았을 걸,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아쉽고 그립다. 밤이 늦었지만 베란다에 내놓았던 막걸리를 가지고 와, 한 잔. 나의 롤모델을 위해 건배!
한 개인은 만인의 롤모델이 될 수 없다. 우리가 공통된 롤모델로 삼을 수 있는 것은 따로 있을 것이다. 누구나 이해하고 필연적인 삶을 부려놓는 보편적인 것, 그것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 우리는 모두 도시에 있거나 그 밖에 있다. 도시는 하나의 인격체이자 삶이다. 도시는 롤모델을 삼아야하는 상황을 만들기도 하고, 개인들의 고독과 실패와 좌절로 얼룩진 개인의 암울한 상황에 맞선 단독자의 형상을 가진 인간의 삶을 만들어내기도 하며, 이 모든 것을 주관하는 주체자이기도 하다. 이 거대한 괴물이야말로 진정한 모든 이들의 롤모델이 아닐까. 도시의 생리와 혈류를 알지 못하는 자, 기생하지 못하는 자에게 위대한 삶은 허락되지 않는다. 부패와 소멸, 생성과 생명이 뒤섞여 발현되는 역동적인 삶의 표본이 이므로, 우리는 도시를 이해해야만 한다. 도시는 곧 현실이기 때문이다.
정치와 경제와 예술이 뒤범벅되어 하나의 생명체를 이루고 있는 도시를 우리는 배워야만 한다. 현실 안에 병폐가 있고 대안이 있음으로 우리는 도시를 배워야한다. 좋은 예든, 나쁜 모델이든 우리가 따라잡아야만 하는 ‘롤모델’은 이 도시가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생존을 알려주는 것 또한 도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도시는 때로 사람들로 하여금 전쟁을 낳기도 하고, 인류애를 건사하기도 하며, 바깥의 종교를 고집하게도 하지만, 이 모두는 도시가 존재함으로써 인간이 가진 모든 갈등을 조장한다. 이는 곧 태고적 신의 역할임이 분명. 신이 사라진 자리를 도시가 대신하고 있음이다. 아주 오래 전 롤모델이라는 단어가 생기기 이전부터 우리가 찾고 있었던 답은 있었다. 인간은 오로지 신만을 동경하고 동조하며 롤모델로 여겨왔다. 결국 이 시대의 롤모델이라는 것은 새로운 신을 찾는 미물들의 찬가인 셈.
여기 롤모델로 삼을 만한, 언제나 우리의 롤모델이었던 현대 유일신 ‘도시’가 있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