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칼럼] 아버지와 나 |이근화|

끔찍한 더위다. 천변에 나와 앉아 있으면 더운 바람이 불다말다 한다. 흙빛 강물은 제 갈 길을 아주 잘 아는 것처럼 흐른다. 코스모스가 어지럽게 피어 있는 길을 표정 관리도 못하고 걷고 있는데 아버지를 만난다. 한강에서 중랑천으로 빠져나와 청계천에 이르는 길은 하루에 걷기 제법 먼 길이다. 타월을 목에 하나 두르고 운동 중인 아버지를 만나는 것이 반갑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날씨 얘기로 안부를 여쭈면서, 에어컨 하나 장만하시라고 했더니 “정신없는 소리” 하신다. ‘근검절약’은 아버지 사전의 맨 앞에 새겨둘 만하다. 다음 페이지는 ‘강한 정신력’쯤이 될 것 같다. 아버지가 무섭고 싫어서 일찍 결혼해 집을 떠났지만 그건 결국 내 집에 또 다른 아버지를 만드는 셈이었다. ‘없는’ 아버지가 더 무서운 법이다. 나는 내면 깊숙이 아버지를 모방하고 있었다. 아버지보다 더 아버지스러운 나를 발견하고는 한다. ‘청결 위생 제일’이라는 세 번째 페이지에서 아버지와 나는 다소 갈라지지만 말이다.
백석의 시 중에 [오리 망아지 토끼]가 있다. 오리 망아지 토끼가 등장하는 짧은 시다. 날아가는 오리 보며 울고(1연), 망아지 내놓으라고 조르고(2연), 토끼를 잡으려다 놓친다(3연). 날아가고 놓치고 없는, 오리 망아지 토끼에 대한 기억 속에는 꼭 ‘아버지’가 있다. 올가미를 놓는 아버지, 망아지야 오너라 외는 아버지, 토끼굴 한쪽을 막는 아버지. ‘나’는 오리 망아지 토끼를 잡던 ‘나’이기도 하고, 아버지를 기억하는 ‘나’이기도 하다. 백석은 기억의 힘으로 한 시대의 간난신고를 견디었던 것 같다.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면서 미래의 영광을 기대하는 모순된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근대의 시간이라면, 백석은 그에 맞서 낡고 하찮은 것들을 낱낱이 호명하면서 ‘오래된 새로움’을 찾아냈다. 백석의 어린 화자들은 미래의 어린 화자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네고 있는 셈이다. 어린아이들은 언제라도 아버지를 따르고, 조르고, 미워하고, 그리워한다.
사람은 누구나 제 부모를 모방하고, 미워하고, 사랑하고, 기억한다. 그리고 진화의 이상한 고리에 빠져들어 그 자신 부모를 대리한다. 나는 온전히 나인 것 같고 나의 개성은 나로부터 비롯된 것 같지만 정말 그런가. 부모님을 닮은 나는 어떤 모습인가, 정말 이래도 좋은가 생각해본다.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인물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히치콕을 나는 좋아하지만 그 영화 속 인물들까지 좋아할 수는 없다. 어머니 노릇을 하는 사이코 노만 베이츠는 끔찍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새들이 머리통이나 눈알을 쪼는 것은 무섭다. 더 무서운 것은 현기증이 나도록 자신을 미워하고 억압한다는 것이다.
심정적으로 경제적으로 마구 엮여 있어서, 한국 사회에서는 부모도 자식도 다함께 독립하기를 주저한다. 뜨겁고 끈끈한 피가 정말 문제인 것 같다. 그 온기와 끈기를 거부했다가는 짐승 취급 당하기 쉽다. 평범한 가족 안에도 문제는 언제나 있어서 그 문제가 바로 가족 형성의 근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가족을 문제적으로 만든 것은 어쩌면 도시적 삶인지도 모르겠다. 시장주의인지도 모르겠다. 가족과 함께 보낼 시간과 에너지를 몽땅 빼앗긴 채 살아가고 있는데 이 사회는 거꾸로 가족 이데올로기를 강조한다.
가족 자체를 부정하고 싶은 생각이 내게는 없다. 통장과 노트북을 챙겨 가출하려 했던 내가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다. 가족은 내 안에 있지 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내가 없다는 사실이, ‘고아’라는 말의 무서움인 것 같다. 고(孤)자의 오이과(瓜)자가 나는 손톱조(爪)자처럼 보인다. 손톱이 들어 있으면 정말 그 글자가 외로워 보일 것 같다. 외로움은 내게 맨바닥을 손톱으로 긁는 이미지다. 어린 자식의 여린 손톱을 깎아주고, 다 늙은 부모의 두꺼워진 손톱을 깎아주며 사는 것이 좋다. 여린 손톱은 너무 가늘고 약해서 종이를 오리는 것과 같고 두꺼워진 손톱을 깎자면 거의 부러뜨리는 수준이다. 그러나 역시 손톱이나 깎자고 인생을 함부로 살 수는 없다. 손톱 깎으며 좀 덜 외롭자고 내 가족만을 생각하며 살 수도 없다.
누구나 자기 안에 ‘아버지’를 가지고 있다. 이 ‘아버지’는 내 안에서 ‘나’를 기르고 있는 ‘나’의 그림자이다. 아버지를 잘못 세웠다가는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끔찍한 고통을 줄 수 있다. 당신이 꿈꾸는 영웅적 아버지의 손에 망치와 칼이 들려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 사회가 어떤 모델을 설정하고 숨 가쁘게 달려가고 있는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하고, 어디서 한번은 겪은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자주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 언제까지나 어린아이처럼 부모의 옷이나 장신구를 가지고 놀 수는 없지 않은가. 창조적인 놀이에 몰두할 것. 아버지와 조금 다른 나를 만날 기회를 만들며 살고 싶다. 두렵지만 ‘아버지’와 다른 ‘나’를 내게 선물해주고 싶다. 그게 미래의 아버지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것 같다.
끔찍한 더위다. 올해는 추위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우리를 괴롭게 하는 건 계절이나 계절의 변화만은 아닌 것 같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