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칼럼] 이런 합평 |박상|

두 남자가 번화한 노천에 놓인 비치파라솔 테이블에 앉아 거리의 미녀들을 흘낏거리고 있다. 홍대 앞 술집이다. 그들은 행운처럼 비어있는 길가 자리를 발견하고 딱 엉덩이를 걸쳤고, 당연히 소주도 걸치고 있다.

“오늘은 미래의 언어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눈썹이 짙어서 웬만한 농담에는 꿈쩍도 안 할 것처럼 생긴 남자가 먼저 말을 건다.
“미래라니, 시작부터 장난 칠 생각이라면 대머리로 만들어 주겠다.”
눈매가 찢어져 신경이 예민할 것 같은 남자가 대답한다.
“들어 봐. 지금의 언어가 30년 후에 어떤 식으로 바뀔 것 같아?”
“뭐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바뀌지 않겠어? 지금 나오는 인터넷 외계어들도 몇몇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다고.”
“아니. 알아들을 필요가 없을 거야. 그땐 느끼면 돼. 자, 봐봐.”

눈썹이 짙은 남자가 스마트 폰 화면을 보여준다.
<ㅏ ㄴ르;ㅔ ㄴ러네ㅡ;■ㅣㄷㄴ;ㅣ ㄴ; ;;;;;;;;;;ㅔㅔㅔㅔㅔㅔㅔ>
“이것은 30년 후에 최고로 유행할 아포리즘이야.”
“뭐야? 고양이가 키보드를 밟아놓은 것과 비슷하잖아.”
“그것 봐. 너 벌써 느낄 줄 아네. 지금의 언어로 번역하면 진정 문학예술을 사랑한다면 고양이로 하여금 키보드를 밟게 하는 게 낫다, 라는 뜻이거든.”

“이 오타 같은 글자들이 어째서 그런 뜻이라는 거야? 사정없이 맞고 두어 대 더 맞아야 이런 농담을 그만둘래? 언어규칙이 파괴되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물론 나는 30년 후를 몰라. 하지만 내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30년 후의 이야기로 남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걸 최근에 깨달았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이야기는 어딘가에서 실시간으로 데이터화되고 있어. 물론 인간의 영역은 아니지. 그건 아마도 고양이들이 맡고 있을 거야. 고양이들이 저장한 데이터는 세월의 진화를 거쳐 30년 후에 최고의 아포리즘을 만드는 재료가 되어 버리는 거야.”
“여기 제육볶음 왜 안 나와요!”

“딴 얘기 하자. 야구에선 타자가 삼 할을 치면 잘 치는 거라고 평가받잖아.”
“그만, 이런 데서 계속 진부한 얘기 하면 곤란해. 야구 말고 다른 분야에서 삼 할이 얼마나 덜 떨어진 능력치인지에 대해 말한 다음에 야구란 얼마나 인간적인 거냐며 나를 야구장에 데려가려는 속셈이겠지만 난 미래의 언어를 연구하기도 바빠.”
“넋이라도 있고 없고 하는 사람처럼 얘기하는군. 이봐, 그렇지만 야구는 비유고 소설엔 대체 몇 할의 번뜩임이 있어야 잘 쓰는 거겠냐? 아마 3할 정도론 안 되겠지? 그게 무섭지 않아?”
“개뿔, 길에 이토록 많은 이십대 미녀들이 걸어 다니고 있는데 우리가 여기 앉아서 그런 걱정 따위를 하고 있어야 해?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아직도 똥기저귀를 빨고 있든 말든 나는 흥미가 없다는 얘기야. 솔직히 말해서 글 쓰는 거, 사실 끝났다는 생각이 들어. 시니 소설이니, 재미도 없고, 접근법도 구식이고, 이미 영상미디어에 주도권을 빼앗긴 표현법을 가진 불쌍한 루저들의 끄트머리 몸부림일 뿐인 것 같아. 텍스트의 매력과 마력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하면서 자위나 하고, 안 되면 그걸 학문과 말발로 이겨먹으려고 할 게 뻔하지. 차라리 때려치우고 저 미녀들을 보면서 여기서 딸딸이나 치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지 않냐.”
“좀… 심하군.”

눈썹이 짙은 남자가 벌떡 일어나 툴툴거리던 남자에게 번개처럼 헤드락을 건다.
“놔 봐. 토론을 폭력으로 해결 하겠다는 거야?”
“아니, 해결이고 나발이고 그냥 폭력이야.”
“왜?”
“네가 먼저 문학을 폭력적으로 모독했으니까.”

남자들은 다시 정상적인 자세로 술을 마시고 있다. 신경이 날카로운 남자의 얼굴은 헤드락의 영향으로 벌겋게 상기되어 있다.
“애들도 아니고 친구끼리 이제 헤드락 같은 거 걸고 그러지 말자. 차라리 소설로 세상에 헤드락을 걸든지? 시발, 소주나 한잔 따라봐.”
“하지만 글쓰기로 사람들의 대가리를 헤드락 하면 안 된다는 걸 방금 깨달았어.”
“제기랄, 무슨 뜻이야? 이 세상엔 아직 책을 읽는 사람이 있다구.”
“그래봤자 자기 대가리를 헤드락 할 수 없잖아.”

“잠깐만, 방금 지나간 애 완전 티아라 은정인데?”
“오, 나도 봤어. 진짜 닮았다.”
“유후~ 오늘 홍대 물 작살인데?”
“야아, 쩐다 쩔어.”

둘은 다시 소주를 마신다.
“그건 그렇고 오늘 합평 네 차례지? 가져왔나?”
“당연하지.”
“읽어볼까.”
“편하게 읽어줘.”
눈썹이 짙은 남자는 가방에서 A4용지 뭉치를 꺼내 건넨다. 총을 뽑는 장면처럼 긴장감이 흐른다.
신경이 예민한 남자는 소주를 마시며 글을 읽는다. 그는 빈 소주병을 보고 주문을 하려다 읽고 있는 부분에 멈칫하며 화를 낸다.
“야야, 이 부분, 도대체 뭐야! ‘가을이 오뎅을 삼켜 스피커가 고양이를 USB에 가두는 일이 벌어졌소. 그런 일은 전화기에서 연락오지 않은 재떨이와 같소. 서류함에 프라이드 치킨이 들어있는 걸 보지 못했다면 달력에 표시된 날짜는 기타줄 플랫에 표시되지 않은 여행용 트렁크와 자동차 트렁크에 말리는 중인 트렁크 팬티들 중에서 조금도 물티슈를 닮지 않은 것이란 말이오.’ 카아! 근래 보기 드문 클라이맥스야.”
“그거 발단 부분이야. 시끄러우니까 다 읽고 얘기 해.”

글을 다 읽은 남자는 담배를 한 대 피워 문다.
“네 글의 개떡 같은 점은 말이야, 미래에 우주여행하면서 읽는다면 삼만 광년 동안 재미있는 구절이 하나도 안 나온다는 점이야.”
“그렇게 지루해?”
눈썹이 짙은 남자가 절망하려는 찰나 아이돌그룹 <티아라>의 효민을 닮은 여자와 그녀의 동행자가 그들 옆자리에 앉는다. 그녀의 동행자는 조금 전에 남자들 앞을 지나갔던 티아라의 은정을 빼닮은 여자다. 남자들의 대화는 중단되고 그들의 귀와 심장은 즉시 옆 테이블에 집중된다.

“나 요즘 재미있는 책 발견했잖어.” “누구? 어느 작간데?”
“내가 처음 발견했잖아. 박등신이란 작간데 오지 않는 재떨이, 라는 제목이고 아주 끝내 줘.”
“어떤 얘기야?”
“팬티 얘기.”
“그거 정말 재미있겠다.”

두 사람은 다시 소주를 마신다.
“어쨌거나 이건 소설도 아냐! 이런 이야기가, 이야기의 심장을 노릴 수 있다고 생각한단 얘기야?”
“심장에서 팬티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문학은 이미 마지막 숙제까지 모두 마치고 종료되었어야 했어.”
“농담이지?”
“응.”
웬만한 농담에는 꿈쩍도 안할 것처럼 눈썹이 짙게 생긴 남자는 그 말에 웃는다.

번화한 노천에 놓인 비치파라솔 테이블에 앉아있던 두 남자는 막잔을 비우고 집으로 돌아간다. 눈썹이 짙은 남자는 집에서 컴퓨터를 켜고 빨려들 것 같은 하얀 백지와 심장처럼 쿵쾅거리는 커서를 보며 자신의 대가리에 헤드락을 걸어본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