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칼럼] 일주일의 눈 이야기 |신해욱|

월요일의 내 눈은 원근법에 밝다. 초점은 먼 데까지 정확하고 소실점은 아주 깊었다. 자잘한 잎사귀들이 낱낱이 또렷했다. 작은 집의 벽돌들을 한 장 한 장 셀 수 있었고, 스카이라인은 칼로 그은 금처럼 위태롭게 선명했다. 그러나 멀리 있는 것들은 멀리 있는 그 자리에 붙박힌 채 나의 눈에 달라붙는 방법을 찾으려 했다. 닿을 수 없는 궁극적인 간격이 유지되었지만, 그런데도 그것들은 충분히 끈적끈적해지고 있었다. 월요일의 눈은 소실점의 파노라마에 사로잡히게 된다. 나는 손으로도 뜀박질로도 그것들을 떨쳐낼 재간이 없었다.

화요일의 내 눈은 나보다 느리다. 나는 많은 시간을 걸어야 했는데, 눈은 다리가 걷는 속도를 견딜 수 없다는 듯 마지못해 질질 끌려오곤 했다. 걸음을 늦추면 늦춰진 그 만큼, 힘껏 달리면 나에게서 간신히 떨어지지 않을 만큼, 눈은 나를 멀리했다. 내 뒤로는 잔상의 가늘고 환한 실이 먼저 어른거리며 이어졌고, 눈은 매듭처럼 그 실 끝에 달려 있었다. 급하게 길을 꺾거나 뒷걸음질을 치면, 내가 내 눈과의 간격을 좁히기 전에 잔상의 실이 먼저 엉켜 버렸다. 별 수 없이 나는 간간이 나무나 담벼락에 기대어 숨을 골라야만 했다. 눈은 천천히 나에게로 돌아왔다. 그러나 화요일의 눈이 끝나는 자리까지는 결국 걸어야 한다. 지름길이 없었다. 잔상의 실이 다시 내 뒤로 길게 늘어지고, 그 끝에서 내 눈은 한 템포 늦게 나를 따라 움직인다.

수요일의 내 눈은 나보다 무겁다. 중력에 심하게 사로잡혀 있었다. 물구나무를 설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나는 팔이 튼튼하지 않았다. 나의 몸은 눈의 하중을 감당할 수 없었고, 나는 눈을 감은 채 벽을 향해 모로 누워야 했다. 누운 자세로도 눈은 더 밑으로 내려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바닥이 딱딱하니까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나로서는 반대편으로 돌아누울 수밖에 없었다. 눈은 너무 무거웠다. 눈은 내 머리가 움직인 방향을 따라 함께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벽을 등져도, 눈꺼풀 속에서 눈은 고집스레 벽을 향한 채 내 등 뒤를 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눈꺼풀을 들어올리기가 무서웠다.

목요일의 내 눈은 눈과 눈 사이에 넓은 간격을 원했다. 눈을 떴을 때 나는 다행히 수요일이 지나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른팔을 베고 있는 나의 눈앞에는 벽지 대신 모노륨이 있었다. 두 장의 장판이 잇닿은 틈으로 개미가 기어갔다. 개미를 보는 건 왼쪽 눈이었다. 오른쪽 눈은 바닥에 너무 가까워서 좁은 틈을 기어가는 개미에 닿지 않았다. 굳이 개미를 찾으려 하지도 않았다. 두 개의 눈은 각각 다른 초점을 갖고 싶어 했다. 나는 공평하고 싶었다. 한쪽 씩 번갈아 감아 주었고, 두 눈의 간격만큼 바닥의 높이는 상승과 하강을 반복했다. 속이 울렁거리고 현기증이 일었다. 그러나 나는 결국 공평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오른쪽 눈은 왼쪽 눈이 개미를 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른쪽 눈은 그 사실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목요일의 기운은 금요일로 이어진다. 금요일의 내 눈은 공간을 잃었다. 점을 이으면 선이 되었다. 선을 이으면 면이 되었다. 그러나 면을 이어 붙여도 입체가 되지 않았다. 바람을 불어넣은 공은 폐곡선과 구분이 되지 않았다. 내 손은 멀리 있는 나무에 곧바로 겹쳐졌다. 나는 너의 옆모습을 보고 있었고, 이마에서 코끝으로, 인중으로, 입술선에서 턱으로 이어지는 선명한 실루엣에 빠져들었지만, 너는 두 눈으로 나의 정면을 보고 있었다. 한 번 이상 포갠 적이 있는, 정확한 대칭의 얼굴이었다.

토요일의 내 눈은 물처럼 맑다. 바싹 치켜뜨면 눈꺼풀이 이마 끝에 닿을 것만 같다. 다섯 번쯤 깜빡이면 하루에 다섯 밤을 쉰 것처럼 머릿속이 투명하고 어리둥절해진다. 먼 것들. 가까운 것들. 남는 것들. 사라지는 것들. 내 눈과 함께 그저 환하고 아름다운 것들. 토요일에는 너에게 인사를 건넬 수 있다. 안녕.

일요일의 내 눈은 나로부터 쉬고 있다. 나도 일요일의 내 눈으로부터 쉬고 있다. 일요일의 눈은 음(陰)의 굴절률을 지닌 외피에 둘러싸여 있다. 빛은 외피에 닿아 반대로 휘고, 내 눈은 어떤 눈에 의해서도 응시되지 않는다. 나를 향해 아무런 정보도 제공되지 않는다. 눈은 오직 눈을 위해서, 외피를 젖힌다. 가시광선과 함께 매질(媒質)의 한 순간을 통째로 흡수하고 약간 배설한다. 내 눈도 포만감과 안락함을 느낄 줄 안다. 그러니 이제 곧, 월요일이 돌아온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