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칼럼] 행복한 망언 가게 |김언|

이런 가게라도 하나 차렸으면 좋겠다. 잊을 만하면 튀어나오는 망언이 잔뜩 쌓인 가게. 세상의 온갖 명언들을 비웃는 가게. 그런 가게에서 일한다면 무슨 말을 해도 후회가 없을까? 없겠지. 어차피 가려봐야 망언이니까. 이 못난 입술을 비웃지 않아도 좋고 누가 와서 내 뺨을 찰싹 때리고 가도 그건 내 탓이 아니라 망언 때문이니까. 망언 속에서 살다 가면 망언 속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 있겠지. 거짓말도 용서하고 절친한 친구의 배신도 용서하는데, 무얼 못 참겠니? 말 못하는 내가 가게 하나를 차리고 조용히 함구하고 있다. 조용히 친구들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축하해주고 있다. 할 일이 없으니 운동도 하지 않고 배달도 하지 않고 턱을 괴고 앉아 하루가 가는 것을 본다. 훌륭하다. 이 망할 놈의 입버릇은 어딜 가나 좋다고 지껄이고 괜찮다고 점잔을 떨고 돌아서서는 망언을 한다. 어디 가서 퀙 뒈져라.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찜찜하게 묻은 이 먼지를 털어내는 망언은 오늘도 조용히 물건을 진열하고 손님을 기다린다. 심심하다. 하루 종일 입이 굶었다. 하루 종일 혀에 가시가 끼는 상상을 하였다. 아니지. 가시는 박히고 혀는 부드럽고 달콤한 사탕을 속삭이는 물건이지. 아무렴.

손을 씻고 와야겠다. 내일은 행복한 기자단 투표가 있는 날. 또 엉뚱한 사람이 뽑혀서 또 엉뚱한 명언을 늘어놓는 걸 잠자코 지켜보는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그들은 옳은 말만 한다. 정말로 엉뚱한데. 시상식에 모인 사람들은 행복하다. 뽑은 사람도 행복하고 뽑힌 사람도 행복하고 사회자도 행복하다고 고백하면서 우정에 금이 간다. 그래도 행복하다고. 행복이 싫으면 가지 않으면 된다. 어디라도 혼자서 머무는 가게가 필요하다. 혼자서 술잔을 들고 이런저런 진심을 섞어가며 거짓말하는 장소가 필요하다. 광장은 너무 넓고 방 안은 너무 지저분하고 공원은 말 못하는 비둘기와 어울리는 거지들이 너무 많다. 그들의 망언은 들어주려야 들어줄 수 없는 냄새 때문에 코를 막고 돌아오게 만든다. 그래도 그들은 성실하다. 성실히 옷을 갈아입지 않고 성실히 이를 닦지 않고 세수는 누구보다 열심히 생략한다. 그들 중의 한 사람이 외삼촌이다. 외삼촌은 이제 죽은 사람이지만 그가 내게서 빌려간 돈 3만원은 영원히 잊지 못할 망언을 남겨놓았다.

저 인간은 얼른 죽지도 않는다. 저 모기는 밤새도록 나를 괴롭힌다. 저 음악은 언제 들어도 나를 차분하게 증오의 세계로 이끄는 매력이 있다. 그래서 듣는다. 너의 망발을. 너의 고통스런 충고를 이제 아무리 들어도 가게는 변함없이 잘될 것 같다. 손님이 없다 먼지는 진열대를 차곡차곡 욕으로 채워 넣고 있다. 입에 담지 못할 욕은 언제나 인간을 그리워하며 인간 곁에 머문다. 여러 마리의 짐승과 함께. 개 돼지 소 말 닭…… 이런 동물들이 가축이 되면서 사람 입에 들어오면서 인간의 욕은 풍성해졌다. 저주는 감미롭다. 망언은 외롭지 않다.

가게 문을 닫고 혼자 퇴근할 때면 이런 음악이 나온다. 너의 집이 여긴데, 어디로 가니? 너의 모든 근심이 여기 있는데, 또 어디를 맴돌다 올 거니? 노래는 밤새도록 가게 앞을 전전한다. 그리고 이른 아침 불쑥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 사람의 다급한 인상착의를 포착한다. 며칠 전에 왔던 그 사람. 그는 아직 망언의 참된 매력을 모르는 사람이다. 못된 가치에 대해서도 질문만 많고 이해하는 것이 늦고 음미하는 수준은 더더욱 멀다. 너무 멀어 보인다. 마치 토성이 내는 소리처럼 내 설명을 듣고 있는 그의 얼굴에서 슬픔이 보이는가. 그렇지 않다. 그는 느긋하게 한숨을 내뱉고 한마디를 슬쩍 끼우는 기술을 잊어버렸을 뿐이다. 그는 무엇이든 다급하게 주워 담고 돌아가려고 한다. 좀 더 빨리 잊어버리는 방법만 터득하려고 여기를 왔다. 불쌍한 인간. 그가 내 손에 쥐여주고 간 욕은 겨우 이 정도. 겨우 이 정도의 우유부단함으로 그는 남은 하루를 버틸 것이다. 아니면 며칠.

외삼촌은 얼마 못 가서 죽었다. 암이 온몸에 퍼질 때까지 내 앞에 나타나지 않은 이 인간의 부음도 그래서 며칠이 지나서야 들었다. 엄마와 이모들이 지방의 어딘가에 있는 재활병원에 장례를 치르러 갈 때도 나는 혼자서 가게를 지켰다. 그 손님이 다시 오면 무슨 얘기를 들려주고 무슨 물건을 손에 쥐여주고 어깨를 두드릴까? 그가 쥐어갈 물건은 사실 가게에는 없는 것. 아무리 뒤져봐야 먼지밖에 안 나오는 구석구석의 한숨과 탄식과 절망을 걷어내고 나면 보이는 것. 그것이 무엇이겠는가. 닳고 닳아서 튀어나온 그 말이 인생을 구원해주리라 믿는가. 위로라도 해주리라 기대하는가. 글쎄다. 혹시라도 그런 상황을 기대하고 온다면 나는 무엇보다 이 가게의 간판부터 똑똑히 짚어줄 것이다.

행복한 망언 가게. 명언이 아니라 망언 가게. 한 글자만 바뀌어도 인생이 재미없어지는 가게를 내가 왜 차렸겠는가. 그는 왜 이 간판을 다시 찾아왔는가. 우물쭈물하다가 그는 호주머니에서 돈 3만원을 꺼내었다. 그러실 필요까지 없는 돈 3만원. 진열된 욕은 많지만 그는 아무 물건도 사 가지 않았다. 어쩌면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