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칼럼] 이 별의 재구성 |안현미|

E
얼마 전 15년 동안 살던 동네를 떠나 이사를 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재개발 논리에 의해 강요당해서였지만 뭔가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 이동하는 초식동물 같은 기분이 살짝 들기도 했던 게 사실이다. 낯선 공기와 낯선 출근길과 낯선 버스 노선도…… 낯선 것 투성이의 낯선 일상이 심지어는 마음에 들기까지 했다. 그건 아마도 38년을 사용해도 문득 문득 타인처럼 낯선 ‘나’라는 존재가 그냥 그저 그런 낯선 것 투성이 중 하나일 뿐이라는 어떤 극미한 안도감 때문이었던 같다. 색깔로 치자면 모과향이 풍부한 희미한 노랑 같은.

W
최초의 바다, 당신이 내게 보여 준, 설명하고 싶었지만 설명할 수 없었던 그 거대한 아름다움, 위악도 위선도 아닌 바하의 평균율 같은, 인간의 왕에게조차 공평하게 생의 비린내를 선사하는, 메멘또 모리, 메멘또 모리, 그렇게 출렁이던, 당신이 내게 보여 준, 최초의,

S
남쪽으로 튀어,라는 소설책을 읽었어. 소설 속 등장인물이 말했지.”국민연금은 낼 수 없어! 국민연금을 내야 한다면 난 국민을 관두겠어!”반했지. 쉽게 반하고 쉽게 희망하고 쉽게 취하고 뭐든지 쉽게 정드는 게 내 특기니깐. 그런 내가 마음에 들던 당신과 그런 내가 마음에 들지 않던 당신. 그렇게 극과 극인 당신들에게 반했던 최초의 순간들이 너무 닮아 있어서 그 순간 당황했던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고개를 돌려 바라봤던 남쪽 하늘. 이 별을 떠나는 누군가가 도착할 가로도 세로도 없는, 3차원도 4차원도 아닌 무차원의 위상공간 같았던.

N
매일매일 자전하고 공전하는 이 별의 낡은 테라스에 앉아 글렌굴드를 듣는다. 피아노의 검은 건반과 하얀 건반. 아무도 가보지 못한 검은 대륙과 흰 대륙. 자작나무의 영혼을 가진 당신과 함께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아무도 가보지 못한 이 별의 어떤 가능성.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