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칼럼] 빛의 통로 |이영주|

누군가는 인도를 다녀왔고 누군가는 이태리를 거쳐 튀니지로, 누군가는 남아공 케이프타운으로 사라졌다. 나는 매일 매일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방, 옥탑방으로 갔다가 하늘에서 가장 먼 방, 내 안으로 들어온다.
전기가 깜박거리다 꺼진다. 오랜 시간을 항해하던 아버지가 들어와 내 안의 전기선을 통째로 갈아엎는다. 나는 아버지가 어디쯤을 항해하는지 모른다. 떨어져 살게 된 지 15년째. 이따금 아버지가 만든 배 안으로 나는 초대되지만, 그 배는 내가 없는 사이 어느 바다와 어느 숲속, 어느 도시를 돌아다니는지 짐작할 수 없다. 다만, 우리는 매일 전화를 통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그러나 그것은 목소리이다. 아버지가 아닌, 아버지라는 목소리인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아닌, 나라는 목소리인 것이다. 우리의 목소리는 해후한다.
나는 아버지가 부럽다. 아버지에게는 아름다운 항해사, 어머니가 있기 때문이다. 이 세계 밖으로 걸어가기 전에는, 이 세계 안에서 항해하는 동안은, 어머니가 낡은 키를 잡고서 어떤 공간이든 함께 헤엄쳐 나갈 것이다. 비록 가끔은 서로를 세계 밖으로 밀어내고 싶은, 극도의 증오감 속에서 각자 고통 받고 있더라도.
나는 홀로 앉아 항해하는 자이기보다는 고여 있는 자로서 있다. 내가 머무는 방은 내 육체로 기능한지 오래다. 우리는 모두 스스로를 만질 때 안쪽의 장기들은 만질 수가 없는 운명. 나, 라는 이름으로 일생을 살다 가지만 나, 라는 이름 안쪽에 어떤 물질들이 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나는 그저 내 피부만을 만지다 사라질 뿐이다. 내 안의 물질, 그 질감을 상상하다 죽는 것. 내가 나를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죽고 나면 누군가가 내 장기들을 만지면서 나를 상상해줄 가능성. 그렇게 피부만을 만지며 웅크리다가 떠돌지도 못하고 고여 있는 자. 어느 순간부터 방문을 열고 드러나는 사물의 그림자들이 몸속의 장기처럼 나와 밀착되기 시작했다.
전기선을 바꾸는 아버지. 실체로서의 아버지. 혼자서 해결하고 싶었는데, 원인을 알 수 없어 어둠 속에 있었어요. 조용히 나사를 끼우는 아버지. 네가 어떻게 이것을 해결한단 말이냐? 내 눈을 마주보고 아버지는 거대한 나사못이 되어 내 심장에 빛을 불어넣는다. 백발의 사내 밑에서 나는 전선줄을 펀치로 뜯어내며 숨을 멈춘다. 언제까지 아버지가 전선줄을 갈아주겠어요. 촛불 속에서 얼굴을 버리고 나는 뒷모습으로 있다.
10분 만에 아버지는 내 어둠을 가지고 내 세계 밖으로 떠난다. 전기선을 통째로 갈아엎자 거짓말처럼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나는 갑자기 부패한 내장을 들킨 동물. 콜록거리며 어깨를 움츠리고 허리를 굽힌다. 이제야 네 표정이 보이는 구나. 백발의 아버지는 벌에 쏘여 퉁퉁 부은 눈가를 문지른다. 썩어가는 내부를 들켰을 때, 나는 어떤 표정이었을까.
조금씩 떨어지던 빗줄기가 갑자기 장대비가 되어 내 방을 부실 듯이 두드린다. 몸속이 축축하고, 뒤틀리는 기분. 나는 더듬거리며 방 안의 사물들을 만진다. 딱딱하고 차갑다. 피부 안쪽은 이렇구나……. 내가 내부의 나를 느끼는 최초의 감각도 이렇지 않을까. 얼굴을 찾지 못하고 나는 ‘뒤’가 되어 휘청거린다.
자신이 아닌 타인의 죽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아버지는 내 안을 들여다본다. 친구의 부고를 듣고 마지막 인사를 하러 가기 전, 잠깐 들른 딸의 방은 온통 어둠속에 잠겨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장대비를 뚫고 천천히 장례식장으로 흘러간다. 죽음으로 가는 통로에 불을 켜두신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그 통로가 된다는 사실이 너무 아파서 나는 조금씩 사라진다. 아버지의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마지막 남은 손을 흔들고 또 흔든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