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말] 카메라 이야기 | 허희정 |

[6월의 말] 카메라 이야기 | 허희정 |

heoheejung1.
  올해 초에 카메라를 샀다. 그건 어느 정도는 충동적인 일이기도 했고, 어느 정도는 벼르고 벼르던 일이기도 했는데, 왜냐하면 나는 여태까지 살면서 사진 찍는 일에 별로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사진에 찍히는 일도, 사진을 찍는 일에도 별로 관심이 없었다.
  찍히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기보다는 싫어한 것에 가까운데, 그건 카메라 렌즈를 마주하고 있는 게 어색해서, 아니면 카메라 렌즈가 어디에 있는지 카메라 렌즈가 정확히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몰라서,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을 얘기하자면 나는 내 물리적인 실체가 구체적으로 어떤 형상을 지니고 있는지 또 내가 그 형상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제어할 수 있는지 잘 알지 못하니까, 그래서 내가 의도하지 않은 모양이 어딘가에 남는 게 너무 싫어서, 그러니까 말하자면 흔적을 남기는 게 싫었기 때문에, 그래서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라면 사진 찍히는 일을 한사코 피해왔는데(다시 말해서, 내가 당신이 내 사진을 찍게 내버려 두었다면 그건 내가 당신을 제법 좋아한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찍는 일에 한해서는 그것을 싫어한다기보다는 그것에 정말로 관심이 없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계기가 되었던 건 작년 겨울에 호주에 가게 되면서였다. 호주는 나한테 조금 특별한 곳이었는데, 그건 내가 어렸을 때 시드니에 살았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도 훨씬 더 삐죽삐죽하고 조금 더 둔했을 뿐더러,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들이 훨씬 더 많은 사람이었어서, 조금 더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었던 것들을 일단 싫어하고 거부하고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1년을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왔더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드니에서 보냈던 1년을 가장 좋았던 시기로 기억하고 있는데, 지금의 나는 그것이 조금 짭짜름하면서도 보송보송한 시드니의 공기 때문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호주에 갈 때는 아버지가 안 쓰시는 캐논 카메라를 빌려서 갔다. 시드니에 내려 애들레이드를 들렀다가 다시 시드니로 되돌아오는 일정이었다. 과연, 시드니의 공기는 기억하던 대로 조금 짭짜름하고 조금 보송보송하고 그러면서도 조금 많이 따뜻하고 어딘지 모르게 약간 포슬포슬해서, 겨우 사흘 가량을 지내면서 내 사진도 동행의 사진도 아닌 사진을 거의 칠백 장 가까이 찍어서 돌아왔다. 그런데 사실 이건 내 하드디스크에 남아있는 사진 파일의 갯수가 칠백 장이라는 거고, 아마 보자마자 지워버린 데이터의 양도 적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되었건 달링 하버의 불꽃 놀이를 구경할 때도, 써큘러 키에서 오페라 하우스 근방을 산책하고 로열 보태니컬 가든을 조금 걷고 돌아오던 길에도, 동행이 아는 사람에게 추천받았다는 시드니 근교의 해변에 놀러갔다 오면서도, 나는 계속 카메라를 들고 있었고, 끊임없이 셔터를 누르는 것이 재미있었으며, 동행이 찍어준 사진에는 그런 내가 제법 근사하게 찍혀서 기분이 좋았다.
  시드니에서 보낸 마지막 날에는 약 10년 전에 가족들과 시드니에 살 때 살았던 동네를 찾아가 보았다. 어떤 것들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동네 초입에 본 적 없는 작은 호텔이 생긴 것이 그랬고, 도서관 옆에는 상점가로 이어지는 작은 길이 생긴 것도 그랬다. 길을 걷다보니 분명히 기억에 없는 한국 음식점이 생겨 있었고, 동생과 다니던 수영장은 훨씬 큰 건물로 바뀌어 있었다. 그렇지만 어떤 것들은 그대로였는데, 동생과 수영하러 갔다가 비치타올 한 장을 툭 걸치고 맨발로 슬렁슬렁 걸어서 돌아오던 길이 그랬고, 가끔씩 스쿨버스에서 내려서 들렀던 동네 도서관도 그대로 있었다. 가족들과 살던 집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더 신기했던 것은 그때 있던 빵집이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서 또 여전히 같은 종류의 빵을 팔고 있다는 점이었다. 스쿨버스에서 내려서 집 앞까지 걸어오는 길에 잔뜩 피어있던 자카란다 역시 그대로여서, 그리고 날씨가 더없이 맑아서 사진을 남기기에 아주 적합했기 때문에, 나는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보라색 꽃이 프레임 가득 담겨있는 사진을 잔뜩 찍어서 돌아왔다.

2.
  가끔씩 심심할 때면 최근 몇 달간 SNS에 올렸던 사진들을 훑어보곤 한다. 마음에 안드는 건 죄다 잘라내 버리고, 원하지 않는 사물들을 지워버린 사진들. 가끔은 보기에 더 예쁜 모양으로 만들고 싶어서 색정보를 완전히 바꾸어버리기도 하는데(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요즘 보정 프로그램은 정말 대단하다!) 아름다움이 대관절 무엇인지는 잘 몰라도 예쁜 게 어떤 건지는, 내 눈에 예뻐보이는 게 무엇인지는 그래도 조금은 알고 있으니까 그냥 그 정도면 되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밝기를 대비를 암부를 명부를 이리저리 바꾸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보면 그런 일들 자체가 재미있어서 사실은 사진을 찍는 것보다도 이런 것들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시드니에 도착한 다음 날 나는 동행과 함께 써큘러 키에 갔었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주말의 써쿨러 키 근방을 걸으며 하버 브릿지를 구경하다가 동행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고 해서 가장 가까이에 있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민트초코 아이스크림을 사서 나왔는데,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물고 고개를 돌렸더니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가 눈 앞에 있어서, 처음 가보는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우와, 하고 말했고, 그렇게 약간 들뜨고 즐거운 기분으로 그 근방을 열심히 돌아다녔다.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고 물론 기분도 무척 좋았다. 세상의 모든 색이 고여있는 것 같았던 그날의 그 공기가 너무 좋아서, 하얀 도보를 따라 걸으며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은 순간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서울로 돌아온 지금, 그날에 대해서 찬찬히 생각해보면 하늘 색이 어땠는지, 바람이 어떤 느낌이었는지,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지, 하는 사소한 그러나 중요한 디테일들은 별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것보다도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찍은, 바쁘게 걸어다니는 사람들을 뒤돌아보는 갈매기의 동그란 대가리가, 하얗고 매끈매끈한 뒤통수의 곡선이 좀 더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는데,
  하지만 갈매기의 뒤통수는 생각보다 별로 하얗지 않고, 늦은 오후의 써큘러 키를 걷던 사람들은 아마도 이른 저녁을 먹으러 혹은 맥주 한 잔을 즐기러 어디론가로 가버려서 거리는 내 기억만큼 붐비지 않았으며, 자연광 아래서 모든 게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았던 시드니의 오후는 생각보다 칙칙한 색이었다는 걸 그날의 기록들을 찾아보면 금방 알아차리게 된다.
  그런 일들을 반복하다 보면, 보고 싶었던 것과 보았다고 생각한 것과 본 것을 바꾸어 생각하기란 너무나 쉬운 일이라는 생각이, 내가 정말로 본 것보다는 내가 보았다고 생각한 것만이 기억에 남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물론 사진은 기록 매체로서 어떤 순간을 잡아두기 위한 수단으로서 자주 이용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과연 그게 정말로 그 순간인지 나는 가끔씩 의심을 하게 되고,
  이를테면, 나의 키는 165cm니까 내 시야의 높이는 약 155~160cm 사이의 어딘가에 있을테고 (이걸 정확히 알려면 내 머리의 크기를 알아야 할 것 같은데, 머리 크기를 재는 건 굳이 하고싶지 않은 일이라서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인간의 시야각은 약 160도라고 하니까, 그렇지만 이건 내가 고개를 왼쪽으로 틀거나 오른쪽으로 돌리거나 아예 자리에 앉아버리거나, 아니면 완전히 일어선 것도 그렇다고 앉은 것도 아닌, 요가의 의자 자세 같은 걸 하고 있으면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부분이라서, 그런 상태에서 들고있는 카메라 렌즈가, 렌즈를 통과한 빛이 닿은 촬상면이 내 망막에 닿은 빛과 같은 것인지 의심하게 되는데, 아무렴 입자나 파동의 차원에서 빛은 그저 빛일 뿐이겠지만,
  이런 일들을 가장 열심히 생각하게 되는 건 공연을 보러 갔을 때이다. 공연장이 좁건 넓건 간에 이 자리에 앉았을 때 내가 듣는 소리와 저 자리에 앉았을 때 내가 듣는 소리가 과연 같은 소리인지 나는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고, 그렇지만 어쨌든 내 몸은 하나니까 아무렴 두 개는 될 수 없으니까 한 번에 두 가지를 시도해볼 수는 없는 노릇인데, 만약 그렇게 된다고 한들 나는 굉장히 둔감한 편인 사람이어서 차이를 잘 짚어내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고, 아니, 나의 감각의 차원을 벗어나서 물리학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무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그 진폭과 진동에 유의미한 차이가 있을지부터가 약간은 불투명하고, 그렇지만 나는 분명히 유의미하건 무의미하건 차이가 없을 수는 없으리라고 생각하는데, 1픽셀의 차이가 때로는 결과물을 무척 달라지게 만들기도 하니까, 그렇지만 내가 사랑하는 나의 물리학도 친구들이 이 글을 보면 조금 웃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기도 하는데, 불확실한 것 혹은 경험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는 눈앞의 일들에 집중하는 쪽이, 순간을 놓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쪽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왠지 모르게 나의 일부는 마치 ‘새 레이어로 복사’ 명령을 실행한 것처럼 눈앞의 것들과는 약간 동떨어진 곳에 둥둥 떠있는 것 같다.

3.
  카메라를 사고 나서 한동안 수동렌즈 사들이기에 열중해 있었다. eBay를 잘 찾아보면 6~70년대는 물론이고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수동렌즈 매물을 잔뜩 찾을 수 있다. 곰팡이가 잔뜩 껴 있거나 코팅이 분리되어 버려 구매자가 별도의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거의 새 것에 가까운 매물도 왕왕 발견할 수 있다. 요즘 나오는 자동 렌즈들과는 달리 조리개 값 눈금과 심도 눈금이 오밀조밀하게 새겨져있는 게 너무 독특하고 예뻐보여서, 또 수동 렌즈가 어떤 건지 궁금한 마음에 샀던 것이 이제는 또 다른 취미처럼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산 수동 렌즈를 마운트하고 나가면 무엇을 찍든지 간에 자동 초점 렌즈를 쓸 때에 비해서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능숙한 사람들은 피사체와의 거리를 얼추 어림짐작으로 파악해서 알맞는 세팅을 바로바로 찾아낼 수 있다던데, 나는 그런 류의 어림짐작에 무척 둔해서 머리를 굴리기보다는 직접 초점 링을 돌리고 조리개 값을 맞춰봐야 원하는 상을 얻을 수 있다. 가끔은 이럴 거면 왜 굳이 그렇게 며칠씩 고민을 해가며 AF 기능이 뛰어나다는 기종을 샀는지 궁금해지기도 하지만, 또 달리 생각해보면 자동으로 초점을 맞추는 기계의 매커니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대략적으로는 이해하더라도 그 흐름을 구체적으로 따라가는 건 쉽지 않으니까, 차라리 돌아가는 초점링이나 앞뒤로 움직이는 경통을 손 안에 쥐고 있는 것이, 말하자면 일종의 제어권을 갖고 있는 쪽이 더 안심이 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말은 이렇게 해도 어디서 사진 찍는 걸 제대로 배운 것도 아니고 그냥 블로그나 유튜브에서 주워들은 것을 가지고 꼼지락대는 정도에 불과해서, 본 것과 생각한 것과 실제로 내 손 안에 남은 것 사이에는 언제나 미묘한 차이가 남아 있다. 그건 마치 먼지가 달라붙어서 접착력이 떨어진 스카치 테이프 같은 느낌이고, 약간은 갓 배운 외국어로 더듬더듬 문장을 만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그런 기분으로 있다보면 아직 내 몸에 밀착되지 않은 말들을 부리려 애쓰는 것과 결국은 내 몸이 될 수 없는 것을 부리려 애쓰는 일이 그다지 다르지 않은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나는 표면만 볼 줄 아는 사람이라서, 표면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그래도 표면의 표면을 질릴 때까지 파고들어가면, 사진을 6400% 확대해서 픽셀 단위로 뜯어보다보면, 아니면 더 깊이 들어가서 이진법으로 표상되는 좌표와 색정보를 훑어내려간다면 무엇인가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을 하고 싶은데, 정작 표면의 표면을 파고들어가면서 내가 발견하는 것은 표면을 구성하는 무엇이 아니라 표면과 표면 사이의 유격, 틈새, 좁혀지지 않는 간격, 밀착되지 않는 것들, 이런 것들 뿐이고 그 틈은 한 번 벌어지기 시작하면 끝없이 벌어져 마리아나 해구만큼 깊어지기 마련이라서,
  자주, 흔적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건 내가 매일매일 쓰는 다이어리의 형태를 띠고 있기도 하고, 점심시간에 나가서 사 먹은 편의점 도시락 영수증의 모양을 하고 있기도 하고, 내가 타이핑한 문장이나 회의록 모서리에 끄적인 낙서처럼 생기기도 했는데, 그들의 공통점으로는 맥락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것과, 존재하거나 하지않는 맥락과 흔적들 사이에는 약간의 유격이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4.
  아름다움이 대관절 무엇인지는 알지 못해도 예쁜 게 뭔지는 아는 것 같으니까, 딱 그 정도의 불확실한 마음으로 살아있는 것 같기도 하다.

* 소설가. 2016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