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루라도 뭘 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단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사로잡혀 있을 뿐 아니라 매일 무언가를 사고 있다. 어느 날은 가방이고 또 하루는 그것보다 조금 작은 가방이고 또다른 날은 색깔이 다른 가방, 때로는 영양제, 향수, 가죽 클리너, 그것을 산 김에 구두, 그러다 내가 속물이 된 것 같단 생각에 황급히 마음의 양식을 채우려 주문하는 (읽지 않을)책…… 얼마전 나흘을 기다린 구두가 재고 없음으로 취소를 당하고, 다른 숍에 같은 제품을 주문하고 또 취소를 당하고, 그러고도 세 번을 더 반복한 후에야 나는 그 구두에 대한 미련을 버린 적이 있다. (무채색, 특히 검정색은 좋아하지도 않는데 어째서 내게 어울리지도 않을 날렵한 블랙 앵클 부츠가 갖고 싶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그 구두에 대한 미련이 하나도 없다.) 내 투정을 들어준 쇼핑 메이트 누나가 말해왔다.
“너무 간절히 원하는 거 티내면 안 된다. 물건도 튕긴다.”
그렇다면, 나는 더 이상 그 구두를 원하지 않으니, 이제는 가질 수 있는 것인가!
2.
감기가 겨울에 더 많이 걸리는 이유는 건조하기 때문이래, 그러니까 가습기.
남편이 이거 쓰고 잡티 다 없어졌잖아, 청귤 세럼.
미세먼지 진짜 심하진대요, 귀가 찢어지게 아프다곤 하지만, 3M 마스크.
불필요할지언정 나는 주체적인 소비를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적고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렇다고 반성할 의지나 후회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이쯤 되면 내가 왜 이러는지라도 알고 싶은 열망이 생기는데,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려다보면 다시금 무언가가 사고 싶어지고, 세상엔 아름다운 것이 갖고 싶은 것이 알고 싶은 것이 어쩜 이리도 많으며, 기념일은 곧 다가오고, 티파니 밀그레인 반지는 어째서 그토록 완벽하게 아름다운지.
3.
한때는 오로지 과거에만 관심을 가지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거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온전한 채 있으니까, 미지는 과거의 것으로도 차고 넘치니까, 라고 말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 이후로는 모든 것이 미래로 (어째서, 라는 말-감각과 함께)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낀다. 느낄 뿐만 아니라 나는 매일 천천하게 빨려 들어간다. 자꾸만 이-후를 기원하게 되고, 그것을 보고 싶고, 여지없이 소유하고 싶어진다.
그건 여러모로 내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데, 하나는 간절히 원하는 미래의 풍경을 보지 못하리라는 데에서, 또 하나는 글쓰기와 사랑이 양립할 수 없으리라는 나의 오랜 불안에서 연유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채, 글을 쓰는 건 내게 불가능한 도전처럼 느껴진다. 사랑하는-사람이-있는/글을-쓰는, 의 위치를 바꾸어도 좋다. 그건 정말 불가능한 일일까? 나는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만 하는가? 나는 어쩌면 그 무엇도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란 떨림 속에서 최근 나는 나무 한 그루를 샀다.
소철, 동백, 종려. 내 유년의 나무들을 떠올리다 그중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소철을 하나 샀다. 가로수처럼 흔한 대문 앞 소철, 경찰서 앞을 지날 때면 보이던 동백, 그곳에서 다시 한 번 길을 건너면 보이는 분수대의 종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책상 옆 불투명한 미닫이 중문을 밀면 소철에 가려진 그가 보이고, 지금인지 옛날인지 미래인지 모를 단지 지금 속, 깜박이는 커서와 그를 번갈아 바라보는 겨울밤은 어쩐지 눈물이 조금 고일만큼 따듯하고 근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