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말] 나와 나무와 그와 글 | 김봉곤 |

[2월의 말] 나와 나무와 그와 글 | 김봉곤 |

kimbonggon 1.
   하루라도 뭘 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단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사로잡혀 있을 뿐 아니라 매일 무언가를 사고 있다. 어느 날은 가방이고 또 하루는 그것보다 조금 작은 가방이고 또다른 날은 색깔이 다른 가방, 때로는 영양제, 향수, 가죽 클리너, 그것을 산 김에 구두, 그러다 내가 속물이 된 것 같단 생각에 황급히 마음의 양식을 채우려 주문하는 (읽지 않을)책…… 얼마전 나흘을 기다린 구두가 재고 없음으로 취소를 당하고, 다른 숍에 같은 제품을 주문하고 또 취소를 당하고, 그러고도 세 번을 더 반복한 후에야 나는 그 구두에 대한 미련을 버린 적이 있다. (무채색, 특히 검정색은 좋아하지도 않는데 어째서 내게 어울리지도 않을 날렵한 블랙 앵클 부츠가 갖고 싶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그 구두에 대한 미련이 하나도 없다.) 내 투정을 들어준 쇼핑 메이트 누나가 말해왔다.
   “너무 간절히 원하는 거 티내면 안 된다. 물건도 튕긴다.”
   그렇다면, 나는 더 이상 그 구두를 원하지 않으니, 이제는 가질 수 있는 것인가!

2.
  감기가 겨울에 더 많이 걸리는 이유는 건조하기 때문이래, 그러니까 가습기.
  남편이 이거 쓰고 잡티 다 없어졌잖아, 청귤 세럼.
  미세먼지 진짜 심하진대요, 귀가 찢어지게 아프다곤 하지만, 3M 마스크.
  불필요할지언정 나는 주체적인 소비를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적고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렇다고 반성할 의지나 후회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이쯤 되면 내가 왜 이러는지라도 알고 싶은 열망이 생기는데,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려다보면 다시금 무언가가 사고 싶어지고, 세상엔 아름다운 것이 갖고 싶은 것이 알고 싶은 것이 어쩜 이리도 많으며, 기념일은 곧 다가오고, 티파니 밀그레인 반지는 어째서 그토록 완벽하게 아름다운지.

3.
  한때는 오로지 과거에만 관심을 가지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거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온전한 채 있으니까, 미지는 과거의 것으로도 차고 넘치니까, 라고 말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 이후로는 모든 것이 미래로 (어째서, 라는 말-감각과 함께)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낀다. 느낄 뿐만 아니라 나는 매일 천천하게 빨려 들어간다. 자꾸만 이-후를 기원하게 되고, 그것을 보고 싶고, 여지없이 소유하고 싶어진다.
  그건 여러모로 내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데, 하나는 간절히 원하는 미래의 풍경을 보지 못하리라는 데에서, 또 하나는 글쓰기와 사랑이 양립할 수 없으리라는 나의 오랜 불안에서 연유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채, 글을 쓰는 건 내게 불가능한 도전처럼 느껴진다. 사랑하는-사람이-있는/글을-쓰는, 의 위치를 바꾸어도 좋다. 그건 정말 불가능한 일일까? 나는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만 하는가? 나는 어쩌면 그 무엇도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란 떨림 속에서 최근 나는 나무 한 그루를 샀다.
  소철, 동백, 종려. 내 유년의 나무들을 떠올리다 그중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소철을 하나 샀다. 가로수처럼 흔한 대문 앞 소철, 경찰서 앞을 지날 때면 보이던 동백, 그곳에서 다시 한 번 길을 건너면 보이는 분수대의 종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책상 옆 불투명한 미닫이 중문을 밀면 소철에 가려진 그가 보이고, 지금인지 옛날인지 미래인지 모를 단지 지금 속, 깜박이는 커서와 그를 번갈아 바라보는 겨울밤은 어쩐지 눈물이 조금 고일만큼 따듯하고 근사하다.

소설가. 1985년 진해에서 태어났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와 동 대학원 서사창작과를 졸업했다. 201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고, 소설집 『여름, 스피드』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