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말] 내년에는 메터포이세트에서! | 복도훈 |

[1월의 말] 내년에는 메터포이세트에서! | 복도훈 |

bokdohoon   1. 희미한 유산

  만일 미래에 사는 어떤 이가 당신에게 오래된 무선통신기구로 접속해온다면 어떡할까. 물론 그럴 일은 없다. 우리는 매일매일, 돌이킬 수 없는 나날을 살아가는 존재다. 시간은 필연적으로 끝을 향해 간다. 아름답거나 쓰라린 추억조차도 시간을 결코 되돌릴 수 없다는 불가역성 때문에 생겨난다. 우리는 단 한 번 산다. 현재는 절대적이다. 과거는 가능성이 현실화된 것 외의 나머지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가능성을 현실화하거나 현실화하지 못한 현재가 있을 뿐. 과거는 완료된 과거, 즉 과거완료다. 미래는 어떠한가.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시제다. 때론 순수한 가능성 그 자체처럼, 현재의 막연한 연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미래는 미리 살아보지 않았을 뿐더러 희미하고도 막연한 예감으로나마 미약하게 존재하는 시간일 뿐. 물론 미래가 매혹적인 예감이나 숨 가쁜 가능성으로 체감될 때가 간혹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사랑의 예감만큼이나 드물다. 예측불가능하기에, 불안하기에 우리는 미래를 가만 놔두지 않는 것 같다. 과거를 퍼 날라다가 미래로 채워 넣는다. 그때서야 안심해하면서도 우울해한다.
  미래에서 미래의 과거일 현재로 누군가 접속해 오거나 과거에서 과거의 미래일 현재로 누군가 접속해 오는 경우는 픽션에서나 가능할 뿐이다. 그러나 픽션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시간의 가능성을 상상하게 한다. 과거―현재―미래로 절대적이고도 기계적으로 이어지는 필연성, 엔트로피적인 필연성이라고 해도 좋을 시간경험을 넘어서는 가능성으로서의 시간. 그리고 아주 오래 전부터 몇몇 작가, 철학자, 천문학자 등이 다른 시간을 좀 더 적극적으로 상상해왔다. 과거와 현재가 그저 완료된 황혼 빛의 추억으로만 연결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상상하거나, 현재와 미래가, 과거와 미래가 속절없는 필연성의 지배만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상상한 사람들이 드물게 있었다. 이러한 희미하지만 강력한 유산을 상속받은 과학소설이 있다. 마지 피어시의『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1976) 1)가 그 소설이다.

2. 시간의 경계와 평행우주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는 현재를 사는 인물의 결단으로 다르게 분기되는 평행우주를 펼쳐 보인다. 주인공 코니가 사는 1976년의 현실에서 분기되는 2137년의 ‘메터포이세트’ 유토피아 그리고 똑같이 2137년의 ‘168가 제너럴파일’이라는 디스토피아가 소설에서 두 개의 평행우주로 설정되어 있다. 메터포이세트의 거주자이자 코니에게 접속하는 미래인 루시엔테는 코니에게 말한다. “어쩌면요. 당신이 사는 시간대가 중요해요. 또 다른 우주가 공존하거든요. 확률은 서로 충돌하고 어떤 가능성은 영원히 빛을 잃어요.”(1권, 282쪽) 코니가 현재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미래는 간섭하고 충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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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소설에서 분기하는 평행우주 가설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평행우주는 여러 개의 우주가 동시에 존재하는 우주의 집합이다. 평행우주를 가정하는 양자역학은 실험대상이 과연 ‘입자냐 파동이냐’는 결정불가능성에 직면한다. 첫째, 에너지는 양자로 불리는 불연속의 다발로 존재한다. 둘째, 모든 물질은 입자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들이 특정시간과 장소에서 발견될 확률은 파동으로 서술된다. 셋째, 실험대상을 관측하면 파동함수가 붕괴되면서 하나의 상태는 입자로 결정된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죽을 수도 죽지 않을 수도 있다. 상자 안의 고양이는 누군가가 상자의 뚜껑을 열어 확인하지 않는 한, 살아 있는 상태와 죽어 있는 상태를 동시에 취할 수 있다. 고양이의 모든 가능한 상태는 관측이 행해지지 않는 한, 파동함수에 중첩된 채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험대상에 실험주체가 이미 포함되어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해보면 좋겠다. 상자의 뚜껑을 연다는 것 자체가 실험대상에 실험주체가 영향을 끼치고 있는 행위다. 중립적인 관찰자는 없다. 현재의 어떤 결단이 미래의 다른 가능성을 열거나 닫는다. 이것은 또한 코니가 소설에서 직면한 실로 절망적인 상황이기도 하다.

3. “안녕, 괴물”, 들리지 않는 목소리들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는 이런 이야기다. 주인공 코니(콘수엘로)는 서른일곱 살의 멕시코계 이주 혼혈인으로 남편과 사별하고 아이마저 빼앗긴데다가 돈도 직장도 없는 불행한 여성이다. 그녀는 오빠와 조카딸 그리고 그녀의 기둥서방의 계략으로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되었으며, 의사와 간호사로부터 실험용 생체인간 취급을 받으면서 살아간다. 코니는 정신병동에서 온갖 약물 투여의 실험대상으로 취급당한다. 약물투여로 감각이 마비되고 혼몽한 의식 속에서 코니는 어느 날부턴가 누군가가 자신에게 보내던 정체불명의 신호를 더욱 강하게 느끼게 된다. 그리고 단순히 환각과 환청만은 아니었던 신호의 정체가 2137년이라는 먼 미래로부터 온 것임을 알게 된다.
  미래의 한 도시 ‘메터포이세트’에서 고도의 통신수단으로 코니에게 ‘접속’하며 접근한 사람은 루시엔테였다. 루시엔테의 인도로 코니는 메터포이세트를 방문해 루시엔테와 그의 동료들이 사는 곳이 거의 모든 면에서 평등하고도 풍요로운 유토피아임을 체감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코니는 환각 속에서 메터포이세트를 방문함으로써 지옥과도 같은 병원의 수감생활을 버텨나간다. 그 와중에 코니는 탈출을 감행하기도 하지만 실패한다. 그녀에게 감옥의 안과 밖 모두 감옥이었다. 코니와 그녀의 동료들이 새로 이감된 연구소 병동은 코니와 그녀의 동료들을 더욱 완벽하게 통제하기 위해 각종 뇌수술 실험을 강제하려 하며, 그 와중에 코니의 친구인 스킵은 자살하게 된다. 이즈음에 코니는 낮꿈 속에서 메터포이세트와는 전혀 다른 미래의 디스토피아 도시인 ‘168가 제너럴파일’을 방문하게 되며, 그곳이 차별과 억압이 횡횡하는 계급사회임을 알게 된다. 그때 코니는 자신이 만일 감옥과도 같은 현실에서 무기력하며 싸울 힘을 잃을 때 미래의 형상이 전혀 달라짐을 깨닫게 된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코니는 운 좋게 얻은 휴가 기간에 오빠의 집에서 독약을 훔친다. 루시엔테와 접속한 지 이미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에게 생체실험을 하던 의사와 간호사 등을 독극물로 살해한다. 현실에서는 살인을 저지른 것이지만, 그녀는 자신의 첫 싸움이 메터포이세트와 그곳의 미래의 후손들을 존재하기 위한 투쟁임을 명확히 자각한다.

  코니가 처해 있는 현실을 한마디로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구도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 그녀와 말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조카 돌리조차도 그녀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녀는 분명 말할 입을 갖고 있다. 말하는 입을 갖고 있는 그녀는 현실에 존재한다. 하지만 그 현실에 그녀를 위한 자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릴 자리는 결코 주어지지 않는다. 그녀는 조금도 들리지 않는 존재다. 록오버 주립병원에서 코니는 “시체 공시소에서 새로 들어온 시체”, “저울에 달아 등록할 고깃덩어리”(1권, 23~24쪽) 취급을 받는다. 그녀가 살아가는 시간은 이렇다. “여기서는 이제 약을 먹을 시간이었다. 여기서는 오로지 녹말가루뿐인 식사를 위해 줄을 설 시간이었다. 여기서는 약을 더 받기 위해 줄을 서야 하는 시간이었다. 여기서는 앉아 있다가 또 앉아 있다가 또 앉아 있을 시간이었다. 여기서는 지난번에 본 낯익은 흑인 환자와 인사를 나눌 시간이었다.”(1권, 33쪽)
  코니가 속해 있는 공간은 어떤가. “록오버 주립 병원이라고 불리는, 처벌과 슬픔의 공간. 느리든 빠르든 자아가 살해당하는 공간이었다.”(1권, 43쪽) 이러한 시공간에서 코니는 “인간쓰레기”(44쪽) 취급을 받는다. 그녀가 말을 나눌 수 있는 상대는 함께 병원에 수감된 여성 동료들, 스킵, 티나, 시빌 등이다. 물론 그녀들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녀들을 감싸고 있는 분노와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다. 소설의 섬뜩한 묘사에 따르면, 그녀들의 분노는 죽은 후에도 계속 자랄 것이다. “가난뱅이와 약자들은 모든 분노를 고스란히 안고 죽기 때문에 그들의 분노는 아마 머리카락과 손톱처럼 어두운 무덤 속에서도 계속 자랄 거야.”(1권, 75쪽) 코니와 그녀의 동료들은 병원에서 가공할 만한 생체실험의 대상으로 취급된다.
  소설에는 코니에게도 행해진 생체실험의 성공적인 표본인 스킵과 코니가 서로 주고받는 매우 슬픈 대사를 보자. “스킵은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조심스레 그녀를 쳐다보았다. “안녕하세요, 괴물.” 그가 나직이 말했다. “안녕, 괴물.” 코니는 똑같이 대꾸한 뒤 수술 이전부터 돌이켜보아도 처음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2권, 162쪽) 안녕, 괴물. 괴물은 바로 거기 현실에 있지만 존재하지는 않는,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도 들리지 않는 자들, 거기에 있지만 더는 존재하지 않는 듯 취급받는 자들의 이름 없는 이름이다.『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는 엄혹한 현실의 필연성 맞은편에 유토피아를 내세운다.

4. 낮꿈, 약탈자의 전리품과 희망

  소설에서 코니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병원에서 꾸는 낮꿈, 백일몽이다. 이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나는 낮꿈을 급진적인 정치적 기획으로 사유했던 에른스트 블로흐의『희망의 원리』(1959)를 인용하고 싶다. “낮꿈 속에는 희미하고도 신경을 둔하게 만드는 도피 혹은 약탈자의 전리품 역시 부분적으로 담겨 있다. 그러나 낮꿈의 다른 부분은 우리를 자극시킨다. 그것은 기존하는 나쁜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우리를 체념하게 하지 않는다. 바로 이 다른 부분이야말로 희망의 핵심이다. 또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는 것도 그러한 희망의 핵심이다. 낮꿈의 그러한 다른 부분이 있기 때문에, 희망은 불규칙한 낮꿈으로부터, 낮꿈이 교묘하게 남용되는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희망의 원리』1권) 낮꿈 자체가 희망은 아니다. 낮꿈에는 ‘신경을 둔하게 만드는 도피 혹은 약탈자의 전리품’이 있는가하면 ‘나쁜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우리를 체념하게 하지 않는’ 희망도 있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희망은 “우리들이 그 결과에 대하여 어느 정도 의심하는 미래나 과거의 사물의 관념에서 생기는 불확실한 기쁨”(『에티카』)이다. 희망은 우리를 주저하게 만들며 또 불안하게도 만든다.
  코니가 꾸는 낮꿈, 백일몽 또한 희망의 이러한 불확실한 기쁨의 요동을 잘 드러낸다. 코니의 낮꿈에 적용하자면 낮꿈에 있는 ‘약탈자의 전리품’은 ‘168가 제너럴파일’의 디스토피아로 형상화되며, ‘희망’의 요소는 메터포이세트의 유토피아로 구체화된다. 그리고 희망에 내재한 망설임, 불확실함은 코니가 메터포이세트 유토피아와 루시엔테와 동료들의 삶과 공동체에 대해 느끼는 의문과 저항, 위화감 등으로 표현된다. 그런데 블로흐가 세공한 낮꿈이 현실의 한면과 접촉할 때 실제로 어떻게 될까. 양자역학의 가설에 따라 입자와 파동의 결정불가능성으로 드러나지 않을까. 메터포이세트의 ‘식물 유전학자’ 루시엔테가 코니에게 접속해 코니가 사는 현실로 처음 침투해 들어왔을 때 코니는 루시엔테를 남자로 생각한다. 그런데 다른 경우에는, 여성적 특징이 현저하여 루시엔테를 남성 동성애자로 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메터포이세트에 도착했을 때 코니는 루시엔테를 또다시 여자로 본다.
  이처럼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를 응용한 이 소설은 코니의 눈에 비친 루시엔테의 성차(性差)의 불확실성에 대해 흥미로운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메터포이세트에 도착했을 때 코니는 ‘불확실한 기쁨’ 앞에서의 망설임과 불안을 생생하게 경험한다. 그래서 그녀는 여자의 배가 아닌 시험관에서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유전공학 실험에 의해 다양한 피부색과 성별의 혼종 유전자를 지니고 태어난 미래의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일순간 강렬한 혐오를 느낀다. “인종과 성별의 낙인 없이 한 배에서 태어난 강아지들처럼 다양한 피부색으로 고통 없이 냉혹한 유리병에서 태어난 미래의 괴물들이 그녀는 싫었다.”(1권, 165쪽)
  이제 2137년의 메터포이세트에서 미래인들의 삶과 공동체가 어떻게 영위되는지 살펴볼 차례인데, 그 내용은 방대하고 풍부하다(읽어보시라!). 한마디로 메터포이세트는 칼 마르크스가 상상한 공산주의 사회와 매우 흡사하다. 다음은 소설에서 인용한 것이다. “먹을거리를 기르고 유용한 물건을 만드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그 외에 우리는 발육장을 돌보고, 먹을거리 집에서 요리하고, 동물들을 살피고, 청소, 정치, 회의 같은 기본적인 일상에 임해요. 그러고 나서 남은 시간을 수다 떨고 공부하고 놀고 사랑하고 강을 즐기는 데 보내는 겁니다.”(1권, 201쪽) 그리고 이 인용문을 다음 문장들과 비교해보라. “각 개인이 배타적인 행위의 영역을 갖지 않고 각자가 원하는 어떤 분야에서나 스스로를 도야시킬 수 있는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사회가 전반적인 생산을 조절하기 때문에 사냥꾼이나 어부나 양치기나 또는 비판가가 되지 않고서도 내가 욕구하는 대로 오늘은 이것을, 내일은 저것을, 아침에는 사냥을, 오후에는 낚시를, 저녁에는 목축을, 밤에는 비판을 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독일 이데올로기』)

5. 메터포이세트 또는 복원의 유토피아

  코니가 처음 도착한 메터포이세트는 외관상 교외의 조용하고도 소박한 농촌을 닮았다. 그것은 메터포이세트 유토피아가 복원과 재생의 결과이자, 복원과 재생이 끊임없이 진행되는 장소임을 알려준다.

“언젠가는 총체적 복구가 이루어질 거예요. 바다는 균형을 이룰 테고, 모든 강은 깨끗하게 흐르고, 습지와 숲은 무성해지고요. 더는 적도 없겠죠. 그들과 우리의 구분도 없고. 우린 사상과 예술의 중대한 문제에 대해 서로 즐겁게 논쟁을 벌일 수 있을 거예요. 옛 방식의 흔적은 희미해질 테고요. 나는 그런 시대를 알 수 없어요. 당신이 궁극적으로 우리를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일 거예요.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우리가 진심을 다해 상상할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해요. 결국 우리가 보는 것은 우리 자신한테서 나오는 가능성이에요.”(2권, 233쪽)

  윌리엄 모리스의 유토피아 소설『에코토피아 뉴스』(1891) 역시 매연으로 가득 덮인 도시가 산업혁명 이전의 농촌으로 복구된 형태로 제시된다. 때는 22세기. 새들이 사라진 나무에는 새의 울음소리가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리며, 폐수로 가득 찼던 강에 물고기들이 다시 뛰어오르고, 낯설고도 불쾌한 시가지 지명을 표시한 표지판들이 몽땅 사라지며, 강에서는 뱃사공이 기다리고 있다가 주인공을 건너게 해주는데 다 건넌 다음 주인공이 건넨 돈을 받지 않는다. 돈이 무엇인지를 뱃사공은 더는 모르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인간과 자연의 화해, 복원이 맨 처음으로 이루어지고 그 다음에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외가 철폐된다.『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시 하나를 읽어보겠다.

언젠가 과거는 사라져,/마지막 흉터는 치유되고,/마지막 찌꺼기는 비옥한 흙으로 부서지고,/마지막 방사능 폐기물은/고요함이 부식되어/독이 넘실거리는 지상의 균열은/더는 없으리./달콤한 지구여, 나는 네 무릎에 누워,/너의 힘을 빌려,/매일 너를 떨치리라./언젠가 물은 맑게 흐르고,/연어는 번개처럼 강을 거슬러 오르고,/고래는 앞바다에서 물을 뿜으니,/암흑의 폭탄이 굴러다니는/바다의 깊은 골짜기는 더는 없으리./달콤한 지구여, 나는 네 무릎에 누워…….(2권, 67~68쪽)

  계속하자면 메터포이세트는 “태양에서도 많은 에너지를 얻지만, 바람, 분해되는 쓰레기, 파도, 강, 나무에서 추출한 알코올, 나무 가스에서도 참 많은 에너지를 얻”는다.(1권, 203쪽) 환경과 인간이 어울리며, 상호부조가 이루어진다. 육식을 하고 채식을 하더라도 메터포이세트인들은 옛 인디언들처럼 노래한다. “열매 고마워요./우린 필요한 걸 얻었어요./다른 동물들도 먹을 테죠./당신의 씨앗을 품은/열매 고마워요./당신의 선물은 달콤해요./오래 살아 널리 퍼뜨리길!”(2권, 152쪽)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 사이의 모순이 지양되는 메터포이세트에서는 삶과 죽음의 단절도 순환으로 바뀐다.

“죽은 이들은 오로지 우리 안에서 살아갑니다./물은 우리를 거쳐 언덕 아래로 흐릅니다./태양은 우리 뼈 안에서 식어 갑니다./하나로 노래하는 에너지의 그물 안에서/우리는 모든 생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우리 안에서 우리를 만들고 죽어 간 이들이 살아갑니다./우리 안에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이 살아갑니다./땅에서 자라는 나무처럼/서로의 공기를 호흡하고/서로의 물을 마시며/서로의 살을 먹고 우리는 자라납니다.”(1권, 288~89쪽)

  순환하는 삶의 고리, 존재의 연쇄를 이해하는 삶의 공동체에서는 가장 나이 많은 신령스러운 여인 사포의 죽음마저 슬픔의 의례에 머무르지 않고 정성들인 마을 축제의 일부가 된다. 소설의 후반부에서 잭 래빗의 죽음도 부활, 또 다른 삶으로 태어나는 가능성이 된다. 독자들이 코니를 따라 메터포이세트의 생태계를 학습하는 과정은 매우 즐겁고 유익할 것이다. 심지어 코니는 그녀의 옛 추억 속에 남아있는 유일한 남자 클로드를 닮은 메터포이세트 남자 비와 사랑을 나눈다. 그녀는 과거란 한낱 지나간 추억으로 완료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미래와 무언의 신호를 주고받는 가능성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몰락과 필멸로 향하는 시간의 사나운 필연성을 지배할 뿐만 아니라 다른 가능성으로 열리고 팽창하고 부풀어 오르는 충만한 시간이 존재할 수도 있음을. 비가 코니에게 말하는 것처럼 “나는 당신 시대에 제대로 피어나지 못했던 그 사람[클로드]의 잠재성”(1권, 301쪽)이다.
  그런데 이쯤에서 질문이 생긴다. 도대체, 왜, 루시엔테와 메터포이세트 동료들은, 하필이면 다른 누구도 아닌 코니를 선택한 것일까?

6. 상속, “존재하기 위해서”

  루시엔테는 말한다. 왜, 우리가 당신을 선택했는지를. “우리와 닿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여성이고, 정신병원과 감옥에 있는 이들이 많아요. 우린 순간적이나마 마음이 열리는 사람들을 찾는데, 진짜로 처음 접속하게 되면 공포에 사로잡혀 움츠러들어요.”(2권, 14쪽) 가장 많이 핍박받고 소외되었지만 무감각하게 체념하지 않는 자들. 더욱 절박한 이유가 있다. 코니는 처음에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당신들은 존재하잖아요.”(2권, 15쪽) 그러나 루시엔테는 말한다. “우린 존재하려고 애쓰고 있지요.”(같은 쪽) 존재하려고 애쓰고 있다는 게 무슨 뜻일까? 메터포이세트는 ‘가능한 하나의 미래’, “피어나지 못했던 잠재성”(1권, 301쪽)이다. 미래의 존재여부는 코니에게 달려 있었다. 그럼 코니는 구세주인가?

“당신들은 정말로 위험에 처해 있나요?”
“그래요.” 그는 진심을 담은 듯 큰 머리를 끄덕거렸다. “당신이 우릴 저버릴지도 몰라요.”
“내가요? 어떻게요?”
“당신 시대의 당신 말이에요. 한 개인으로서 당신이 우릴 이해하는 데 실패할 수도 있고, 당신 자신의 인생과 시간 속에서 투쟁하는 데 실패할 수도 있겠죠. 당신 시대의 당신이 우리와 함께 투쟁하는 데 실패할지도 몰라요.” 다정한 그의 목소리는 거의 장난처럼 들렸지만 그의 눈빛은 그 말이 진심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존재하기 위해서, 존재 속에 계속 남기 위해서 우리는 싸워야 하고 장차 다가올 미래를 얻어야 합니다. 우리가 당신과 접속한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2권, 16쪽)

  코니는 저항한다. 자신은 힘도 없으며, 환자에다가, “성냥 한 갑”도 지닐 수 없고 돈도 없는 “엉뚱한 구세주”(2권, 17쪽)라고. 물론 코니는 아직까지 이해하지 못했다. 메터포이세트인들은 구세주를 찾는 게 아님을. 그들이 미래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코니처럼 과거에서 온 자가 자신이 처한 현재에서 싸워야만 했던 것이다. 코니의 현재, 그러니까 메터포이세트인들의 “과거는 분쟁 지역”(2권, 133~34쪽)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다시 희망과 약탈자의 전리품을 함께 지닌 낮꿈의 특성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메터포이세트의 유토피아는 코니의 낮꿈이 무의식적으로 만들어낸 환각의 미래다. 마찬가지로 코니의 낮꿈에 포함된 악몽과도 같은 현실의 잔재는 미래의 디스토피아로 투사된다. 코니가 뉴욕 신경정신 연구소로 이감되어 생체실험 대상이 될 때, 코니는 루시엔테에게 경고를 듣는다. 달과 남극, 우주 정거장에 분포한 “안드로이드, 로봇, 가상현실 체험자, 기계로 부분 개조된 인간”(2권, 133쪽)이 메터포이세트에 대해 행하는 위협에 대해서. 코니가 생체실험을 당한 직후에 방문하는 미래는 메터포이세트가 아니었다. 코니의 조카 돌리의 이미지가 미래로 연장된 여인일 계약녀 ‘길디나 547-921-45-KBJ’와 코니의 만남은 그녀가 생체실험으로 당한 악몽의 생생한 투사일 것이다.
  ‘168가 제너럴파일’은 인간이 대다수의 ‘실패작’과 공기가 탁해 우주정거장에 사는 불안정한 중간계층과 부유한 소수의 사람들로 계급 분할되고, ‘자객’이라고 명명되는 경찰과도 같은 감시인들이 항상 사람들을 감시하며, ‘멀티’라는 존재가 살아있는 모든 것을 지배하는 디스토피아, 블로흐 식으로 말해 ‘약탈자의 전리품’으로 만들어진 세계다. 코니가 메터포이세트의 비행기 조종사가 되어 적군의 비행선을 추격하는 그때 코니는 결심한다. “전쟁, 나는 전쟁 중이야.” “더 이상의 환상도, 더 이상의 희망도 없었다. 전쟁.”(2권, 249쪽)
  코니는 결국 광기의 결단, 결단의 광기로 병원에서 여섯 명의 의료인을 독극물로 살해한다. “이젠 나도 죽은 여자야.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나는 그들과 싸웠어. 나는 부끄럽지 않아. 나는 노력했어.”(2권, 310쪽) 그리고 그것이 “내 최고의 희망”(2권, 311쪽)이라고. 희망은 의심되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기쁨’만은 아닌 듯하다. 희망은 광기다. 그러나 그것이 없으면 후손이, 미래가, 메터포이세트와 그 거주민들이 존재할 수가 없는 광기. 발터 벤야민의 표현을 빌리면, 과거 세대의 사람인 코니는 미래의 메터포이스트인들에게 ‘은밀한 약속으로’ ‘기다려졌던’ 사람이다.
  우리는 후손들에게 뭔가를 물려주는 자가 아니다. 우리 존재 자체가 상속된다. “내 최고의 희망으로부터 태어날 당신들을 위해서, 나는 내가 벌인 전쟁을 당신들에게 바칠게요. 나는 최소한 한 번은 싸웠고 승리를 거두었어요.”(2권, 310쪽) 코니의 유언은 태어나지 않은 미래의 타자에게 우리 존재 자체가 상속임을 간절히 증언한다. 다가올 새해를 맞이해 나는 이 소설과 함께 이렇게 말해보고 싶다. “내년에는 메타포이세트에서!”

1) 마지 피어시,『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1‧2, 변용란 옮김, 민음사, 2010. 본문에 권수와 쪽수를 표시해 인용.

문학평론가. 2005년 『문학동네』를 통해 등단. 평론집 『눈먼 자의 초상』, 『묵시록의 네 기사』를 펴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교양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