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말] 외적 일기 | 한정현 |

[12월의 말] 외적 일기 | 한정현 |

hanjunghyun   최근의 나는 길을 가다 자주 아는 사람들에 의해 팔이나 옷자락, 어깨를 잡아 채이곤 했다. 그것은 내 친구들이 남달리 무례하거나 순발력이 뛰어난 자들이라서 보다는 내가 어딘가 종종걸음 치다가 그들을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아서였다. 그렇게 팔이나 옷자락 어깨를 잡혀 뒤돌아보게 되면 가던 속도는 늦춰지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기분이 썩 나쁘지 않다. 최근 몇 년 동안 나는 대체적으로 뒤를 돌아볼 수 있던 적이 별로 없었으므로, 어느 순간부터는 (되도록이면 나를 그렇게 잡아챌 만큼 좋아하는) 그런 경우를 기다리기도 했으므로 그렇게 해 준 이들이 내심 고맙기도 했던 것이다.
  그래서, 돌아본 김에 그 자리에 좀 서서
  우선은 생각을 좀 해보자고 생각했다, 요즘 이야기를 나눈 것들에 대해.

  이상, 만두공동체, 돌고래 과자점, 바닐라 산도, 잉그마르 베르히만, 뺏벌, 세코날, 수취인불명, 6.8혁명, 문화대혁명…… 몇 가지가 있지만 굳이 가장 생각나는 것으로 하자면

  최근 다시 소환된 윤이상은 사실 작년 10월부터 내가 가장 심취한 어떤 것이었다. 선데이서울을 뒤적이러 갔던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우연히 읽게 된, 그러니까 전혀 상관없는 한 신문기사가 그 발단이었다. 신문 기사 속에서 윤이상은 안기부에 끌려갔고 며칠 후 자신을 심문하던 사람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재떨이로 자신의 머리를 내려쳤다.

  그랬다.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그때부터 나는 전력으로 윤이상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하자면, 윤이상이라기보다는 온통 아름다운 음악으로만 채워졌을 것 같은 커다란 사내가 침묵 같은 암흑 속에 앉아있다 별안간 머리를 내려치는 장면, 그러니까 논리적으로는 도저히 이야기가 통하지 않을 상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재떨이로 머리를 내려치는 그 장면. 그 장면에 대해서였다. 물론 나는 음악도 모르고 암흑과 나만 어딘가에 남겨진 적도 없는 90년대 이후의 삶을 살았으므로 윤이상이 왜 그랬는지 확실히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나도 종종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나 자신이 지워지는 것 같은 경험을 한 적은 있었다. 나는 딱 이 정도까지만 생각할 수 있었다. 내가 윤이상에 대해 떠들고 다니자, 친구들은 그저, 이제 정현이가 김추자를 떠났나 봐 하는 표정만이 되었고 그래, 이윽고 윤이상의 시기로구나, 거짓말 이후엔 침묵인건가, 침묵을 부수는 건 죽음뿐인가 라는 둥 하며 왜인지 흥미로워하기만 하는 듯 했다.

  그런가. 모두 다 거짓말이면 그 이후엔 침묵. 침묵 이후엔 죽음이면 그 죽음이 만들어내는 건……?
  그렇게 맥락 없이 흘러가던 윤이상은

  최근 한 인간을 보며 다시 떠올랐다. 그로 말할 것 같으면 간단하다. 과자 인간이다. 그 인간은 늘 과자를 먹기 때문이다. 가방 속에도 호주머니에도 과자가 있는 것 같았고 나는 그가 들고 다니는 가방이 과자를 다 꺼내먹고 나면 홀쭉해지는 것을 몇 번 본 후 그의 가방은 커다란 질소가 가득 찬 과자봉지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 인간은 나의 내적 과자 인간이 되었다. 나는 그 인간을 마주치는 자리에서 나도 모르게 ‘과자 인간’이라고 부르지 않도록 필사의 연습을 해두었다. 사실 과자를 좋아하는 인간이 나쁜 인간인 것은 절대 아니고 그것은 놀림거리도 당연히 아니지만 누군가 자신을 내적 과자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걸 안다면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과자 인간을 혼자만의 인간으로 간직하기로 하고 그의 과자 생활에 대해 별 관심을 두지 않는 척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과자 인간은 내가 꽤나 많이 좋아하는 인간이었으므로 진심으로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고, 그러므로 계속된 내적 관찰이 이어졌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과자 인간은 가을 때문인지 과자로 인한 과잉 당 섭취 때문인지 자주 상념에 젖어 점차 기운을 잃어가는 듯 보였다. 그런 과자 인간을 보며 나는 어느 순간부터 과자 인간이 과자만을 저렇게 먹다가 정말 과자처럼 부스러지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나는 과자 인간의 힘없음을 그저 그가 달콤한 과자만을 먹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과자 인간은 그저 순정한 온 마음으로 과자를 진정 좋아하기에 1일 3과자 할 수도 있는 거였다. 게다가 밥을 먹어야 식사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저 보편적 식습관에 기준한, 어찌 보면 편협한 것이었으므로 나는 충돌하는 두 마음 속에서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어느 날 과자 인간과 다른 이야기를 하다 자연스레 그에 대한 말을 꺼내보았다.
  “너무 과자만 먹어서 힘이 빠져나가는 게 아닐까요. 과자를 좀만 줄여보심이”
  하지만 내 말에 그때까지 먼 산이나 바라보던 과자 인간은 얕은 졸음에서 퍼뜩 깨어난 사람처럼
  “아닌데? 아닌데? 나 괜찮은데? 괜찮은데?”
  나는 과자 인간이 과자가 아닌 말을 내 말을 씹어 먹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이야기는 끝이 나지도 않았는데!
  “아. 어쩐지 너무 지쳐보여서, 밥 같은 거 먹으면 그래도 힘이 나지 않나 싶고.”
  그러나 과자 인간은 오히려 꿀꽈배기처럼 진득하게 팔짱을 끼고서 다시 한번 ‘~데?’ 체를 사용하여 자신의 진정성을 어필하기에 급급했다.
  “음? 나 정말 괜찮은데? 아닌데?”

  나는 과자 인간을 마주하면서 다시 한 번 윤이상에 대해, 아니 윤이상의 그 장면이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걸 느껴야 했다. 상대와 대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 외에 같은 점이랄 건 하나도 없는 그 장면, 사실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날 나는 결국 과자 인간의 과자 의지를 꺾지 못했고, 당연히 화가 나진 않았지만 새로운 생각들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어째서 과자 인간의 괜찮음이 많아질수록 나의 괜찮지 않음이 깊어지는가. 물론 이 의문을 해소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과자 인간과의 대화를 생각하면 할수록 어떤 두 가지의 것이 지속적으로 충돌하기만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과자 인간과의 대화도 잊을 겸 며칠 후 친구들과의 만남에 참석했다. 그 자리는 다섯 명의 친구와 함께 했는데 그중 한 명이 건강검진을 하고 온 날이기도 했다.
  “만두를 먹어야 돼. 난 건강검진을 했거든.”
  다들 우르르 달려들었다, 만두가 거기 있는 것 마냥.
  “아파서? 아니면 안 아프기 위한?”
  “후자.”
  “아 그렇구나. 그럼 먹어야지, 만두.”
  (이런 대화가 시작되었고)
  “그럴 수 있지, 만두 맛있으니까. 그리고 귀엽잖아.”
  “그건 그래, 기다란 만두도 끝과 끝을 이어줘서 결국은 동글동글하게 되고.”
  “그것보라고 만두는 거의 공동체야, 근데 이런 건 외모 지적은 아닌가?”
  (어쨌거나 이런 식으로 연결되어서 결국엔)
  “그럼 우리 만두 공동체인가.”
  나머지 하나 남은 만두를 향해 손을 뻗는 사람들처럼, 그 말끝에 또 다시 모두가 한마디씩을 더 했다.
  “왠지 그게 생각나기도 하네, 양파공동체.”
  “하지만 양파는 눈물 나는 걸?”
  “하지만 만두도 맛있어서 눈물 나니까.”
  “야야 원래 눈물과 웃음은 같이 다녀.”
  눈물과 웃음의 동행에 대해 언급하는 순간, 나는 불쑥 최근 좋아했던 시인의 시가 떠올랐다.
  “어쩐지 그 시인의 시를 보면 와하하 웃는데 마지막엔 운다. 꼭.”
  그러자 지치지 않는 만두 공동체들이 다시 한 번 시작했다.
  “유머와 슬픔은 만두 같은 거 아닐까, 웃기기도 하고 눈물도 나고.”
  “하지만 유머와 슬픔은 충돌을 일으켜서 좋은 거 같은데.”
  “어째서 충돌인데 좋은 건데.”
  “유머와 슬픔이 충돌해서 만들어진 아이러니가 생각을 하게 만드니까.”
  “그런데 우리 지금 만두 아니었나, 어째서 결국 문학인 거 같지.”
  “공동체는 역시 상상의 공동체가 최고지.”
  “아. 또냐.”

  그럼 과자인간과 나도 어쩌면 공동체인가, 괜찮음과 괜찮지 않음이 만들어낸 충돌 덕분에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했으니까.
  나는 만두를 찾아 기웃거리는 만두 공동체들을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윤이상이 침묵 속에만 홀로 놓여있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라고 생각하면서.

※ “~아닌데?”만 연발하던 과자 인간이 견과류와 비타민을 먹기 시작했다.
※ 그러나 만두 공동체는 그날 한치와 치킨과 바닐라 산도를 먹었다고 한다.

소설가. 201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