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칼럼] 봄과 어머니 |김유진|

며칠 전 집엘 다녀왔다. 요즘은 좀처럼 여유가 나질 않아 발걸음이 뜸했다. 어머니는 날씨가 좀 더 추워지거나, 볕이 따듯하거나, 눈이 오거나 비가 내리면, 그 핑계로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곤 했다. 밥은 먹었느냐 물어오면, 나는 으레 안 먹어도 먹었다고 대답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거짓말 마라, 고 응수했다. 나는 있지도 않은 반찬을 예로 들어가며 끝까지 우겼다. 어머니는 못들은 척, 밥 먹으라, 고 종지부를 찍었다. 우리는 밥에 관한 논쟁을 5년 가까이 치르고 있었다.

3월 중순이 지났음에도 겨울 한기가 떠날 줄 몰랐다. 볕이 무척 좋았으나 바람이 차, 옷을 가볍게 입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나는 그것이 못내 억울해, 두꺼운 오리털 점퍼를 걸치고, 맨발에 색이 밝은 플랫슈즈를 신었다. 발등이 찬바람을 맞고 붉게 부풀어 올랐다. 어머니가 준 기이한 무늬의 시장바구니를 접어 점퍼 주머니에 넣었다. 집은 마을버스로 15분가량 걸렸다. 나는 집과 멀지 않은 곳에 따로 작업실을 마련해두었다.

어머니는 현관문을 열어두고 있었다. 발소리를 들은 개들이 요란하게 짖어댔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말티즈 두 마리가 달려들었다. 어머니는 오래전 충무로 애견센터에서 거금 120만원을 주고 말티즈 암컷 한 마리를 데려왔다. 홀린 듯이, 그녀석이 눈에 밟혀 골목을 떠날 수가 없었다고 했다. 병치레가 잦아, 꿀에 약을 타 먹여가며 키웠다. 복길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다음해 봄, 복길이는 새끼 세 마리를 낳았다. 두 마리는 살고 한 마리는 죽었다. 그때 나는 거제도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집으로 돌아갔을 때에는 제법 강아지 테가 났다. 어머니는 개들이 들을까 목소리를 낮추며, 사실은 자신이 태몽을 꿨었노라 말했다. 강물에 잉어 세 마리가 노닐고 있어 가까이 다가갔더니, 두 마리는 살았고 한 마리는 배를 드러낸 채 죽어있더라는 것이었다. 나는 무슨 개 태몽을 꾸냐며 비웃었지만, 어머니는 자못 신통하다 여기는 것 같았다. 우리는 암컷 두 마리 중 완두를 지인에게 보내고, 강낭이를 어미 곁에 남겨두었다. 복길이는 올해로 열 살, 강낭이는 아홉 살이 되었다.

어머니는 봄나물을 무치고 있었다. 데친 미나리에 멸치액젓을 넣으며, 개들을 데리고 옥상에 다녀오라고 말했다. 나는 발바닥이 찢어진 슬리퍼를 꿰어 신고 옥상으로 향했다. 개들이 기다렸다는 듯 뒤를 따랐다. 옥상에 도착한 개들은 바람과 햇볕을 쬐며 이리저리 부산스레 뛰어다녔다. 옥상 구석에 어머니가 어설프게 만들어 놓은 화단이 보였다. 쪽파와 가지를 심어 놓았던 화단은 비어있었다. 그때, 갑자기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귓가에 쟁쟁 울렸다. 민방위훈련이었다. 얼마 전 TV에서 보았던 무참한 광경들이 떠올랐다. 갈라진 땅과, 사라진 땅과, 밀려드는 모래바람과, 오지 않길 바라는 바람에 대해 생각했다. 바람에 모래가 섞인 탓인지 머리가 뻣뻣했다. 개들은 화단의 흙을 파거나, 햇볕이 내려앉은 옥상 바닥에 등을 비비며 뒹굴었다. 드러난 개들의 배엔 작은 수술자국이 있었다. 둘은 얼마 전 함께 중성화수술을 받았다. 자궁에 고름이 가득 찼다고 했다. 나이가 든 탓이었다. 개들은 어머니와 함께 늙어가고 있었다.

어머니와 나는 달래를 썰어 넣은 간장을 밥에 얹어 구운 김을 싸먹었다. 어머니는 본래 요리솜씨가 썩 훌륭한 편은 아니었다. 어머니의 요리에는 매뉴얼이라는 것이 전혀 없어서 그때그때 맛이 달랐다. 어느 해엔가는 김치가 놀랍도록 맛이 없어 깜짝 놀란 적도 있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맛없는 김치는 처음 먹어본다고, 나는 어머니에게 눈으로 말했다. 어머니는 김치를 반 포기씩 나누어 냉동실에 넣어두고 김치전이나 김치찌개를 끓일 때 썼다. 우리는 그 맛없는 김치를 3년에 걸쳐 먹으며, 먹을 때마다 경악스러운 맛에 번번이 놀랐다.

식탁 위에는 여러 종류의 나물들이 포진해 있었다. 참나물과 부추나물, 미나리와 시금치가 있었다. TV를 틀자, 부동산채널이 나왔다. 어머니는 동물 다큐멘터리와 부동산채널을 특히 좋아했다. 뭐 하러 부동산 채널을 그렇게 열심히 보냐고 물으면, 어머니는 무엇이든 미리 알아둬서 나쁠 게 없다고 말했다.

나는 요 근래 소란스러웠던 뉴스들에 은근히 마음을 쓰고 있었다. 혼자 지내는 어머니가, 연신 흘러나오는 뉴스 때문에 마음이 심란할까 걱정되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평소와 같았다. 나물을 무치고 밥을 했다. 뉴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사이렌이 멈춘 집은 고요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어머니의 집은 서울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모든 소란과 불안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있었다. 집은 섬처럼 평화로웠다. 베란다에서 들이치는 햇빛 사이사이로 먼지들이 둥둥 떠다녔다.

밥을 다 먹어갈 즈음, 어머니는 부엌으로 가더니 큰 압력솥을 가져왔다. 뚜껑을 열자, 백숙이 있었다. 나는 이미 배부른데 뭘 이런 걸. 이라고 말하면서도 내심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닭다리를 뜯어 대접에 넣고 식히며, ‘애들 먹일 것’이라고 했다. 백숙은 수술을 받은 개들을 위한 회복식이었다. 복길이와 강낭이가 기다렸다는 듯 어머니의 무릎 위로 뛰어들었다. 나는 풀 천지인 내 밥상과 백숙을 번갈아 보았다. 피식 웃음이 났다.

어머니가 챙겨준 나물봉지를 시장가방에 챙겨 넣고 작업실로 발길을 돌렸다. 날이 저물수록 바람이 거세졌다. 잠시 봄이 온 듯 했다가, 다시 겨울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차안에서, 백숙을 잘게 찢어 개들에게 나누어주던 어머니의 붉은 손과 연한 갈색의 단발머리가 자꾸 생각났다. 집에 머물렀던 마음을 애써 되돌려놓으며, 작업실 건물 계단을 올랐다. 나는 무척 쓸쓸해졌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