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칼럼] 우울한 자들을 위한 오후 |정용준|

최근에 좀 우울했다. 우울하다는 감정이 마음을 지배하고 있을 때 많은 것들이 번거로워지기 마련이다. 때로는 규칙적으로 숨 쉬는 것도 귀찮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널리 알려진 말에 의하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이에게 햇빛처럼 좋은 것도 없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신뢰했다. 그래서 별 일도 없는데 밖에 나가 공원 벤치에 노인들과 나란히 앉아 햇빛을 맞았다. 움직였으므로 몸이 느끼는 약간의 힘과 유익은 있었으나 효과는 거의 없었다. 흰빛이 정수리를 하얗게 벗겨내는 것이 뭔가 더 노골적이라는 생각에 되려 민망했다. 그러던 중 어떤 산문을 통해 알게 된 것이 있다. 북유럽의 어느 추운 나라에서는 하지가 가장 큰 국경일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 나라 사람들은 1년 중 하늘에 해가 가장 오랫동안 떠있는 날을 기념할만한 날로 삼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고 멋진 사람들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한국의 국경일은 지나온 시간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옛날에 누군가 지정했다. 그 후로 우리들은 내내 그 날들을 대체로 쉬며 노는 날로 지키고 있다. 그런데 해가 긴 날을 국경일로 삼은 사람들은 매년 새롭고 현재적인 의미로 그 날을 기념할 것이다. 러시아를 비롯한 북유럽의 사람들은 추운 겨울의 힘에 지배받고 있다. 춥고, 얼어있고, 황량하고, 삭막한 정서가 그들의 삶을 주장한다. 그래서 그들은 우울하다, 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우울하다는 정서는 그냥 보편적인 인간성이다. 뭔가 극복해야하거나 이겨내야 하는 음성적인 기질이 아닌 신체적 한계처럼 이미 정해져있는 어떤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커다란 초식동물들이 자신의 무뚝뚝한 기질을 의심하지 않는 것처럼 그들은 인간의 우울함을 깊이 회의하지 않는다. 그 나라 하지의 풍경을 그려본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의 하지와는 비교도 안될만큼 허약한 오후일 것이다. 희미할 것이고 시원할 것이다. 사람들은 가벼운 옷을 걸치고 집밖으로 나와 태양이 비치는 노랗고 따뜻한 자리로 움직일 것이다. 더러는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삐딱하게 서서 하늘을, 더러는 풀밭위에 누워 하늘을, 더러는 오래된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볼 것이다. 그리고 저마다 갖고 있는 어떤 표정을 지으며 침묵하거나 노래하거나 춤을 출 것이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단 하나의 표정으로만 살아왔던 사물들처럼 그렇게 동요 없이 오래도록 해바라기를 하며 태양아래 머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마음으로 대비할 것이다. 이제 점점 더 추워지는 시간들을

이제는 우울함에서 벗어나려는 별다른 시도를 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것은 대개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감정이란 물리적으로 만지고 고치거나 변화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때문에 나는 그것을 더 쉽게 물리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같은 이유로 그것은 노력의 성과를 얻기가 무척 어려운 것임을. 사실 우울하기 때문에 얻는 유익이 적지 않다. 육체적 활동에 대한 욕망을 잃음으로 더 읽게 되고 생각하게 되고 쓰게 된다. 어떤 문장에서는 푹, 웃게 되고 어떤 문장에서는 운동을 한 것처럼 심장이 뛰기도 한다. 이제는 이 우울감이 유동하지 않고 단단하고 튼튼해졌으면 한다. 극지방의 검은 하늘에 떠있는 오로라처럼 차갑고 예쁜 풍경 하나가 내 마음에서 춤추길 바란다. 물론 이 역시 우울한 풍경이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