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칼럼] 사랑의 인사 |김이듬|

―’안녕’은 안녕이고
‘다음에 봐요!’라고 내가 말할 땐
다음에 꼭 다시 만나고 싶다는 뜻이에요.

 

주정뱅이 미치광이 엄마들처럼 거리를 배회하고, 그 사이 버려진 가련한 갓난아기들은 울음을 그치고 굶어죽으리…… 많은 이들이 출간을 출산에 비유하던데요…… 그러면 난 얼추 쌍둥이를 내버리고 떠난 미혼모입니다. 멀리 더 멀리 날아와서 어두운 거리, 비 내리는 구시기지에서 조용히 온 밤을 떨고 있어요. 이러지 않았다면 잠옷을 너울거리며 지붕 위를 뛰어다니거나 식칼로 가슴팍을 찔렀을까요?
도피니 휴식, 문학의 전환점이니 이런 황당한 어휘들과 엉망진창 메모들로 빼곡한 수첩을 펼쳐보지만…… 내가 왜 여기 이러고 있는지, 나도 잘 몰라요. 불빛은 어둡고 시 문젠지 줄곧 열나고 혀가 마릅니다. 입을 다물라는 계시인지…… 이메일이라도 쓰려면 15분에 2유로를 지급해야 합니다. 휴식은 내 방에 처박혔으면 됐을 테고 전환은 무슨 개뿔, 낯선 세계의 어리둥절한 나를 만나려면 독서와 몽상, 창작보다 나은 게 없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지요. 그러면 왜 넌 여기까지 왔니? 비슷한 시기에 시집을 출산한 한 남자선배 산모가 자기보다 먼저 지방신문기자와 인터뷰한 나에게 싸기지, 버릇없는 년이라고 몰아붙였기 때문일까요? 그들 패거리가 나를 구석에 몰아놓고 세차게 밟아대는 꿈을 꿨어요. 하지만 나는 그들과 다르고 갓난애를 통해 뭘 어찌하려는 자가 아닙니다. 여기로 오라고 누군가가 날 불렀어요. 내가 오래 사랑했던 작가의 유령일까요?
나는 여기 있어요. 대학시절부터 오고 싶어 안달했던 장소에요. 단지 그가 여기 살았고 여기 잠들었으니까. 그런데 막상 오니까 무덤덤하네요. 너무 오래 상상하고 너무 자주 책자랑 지도를 펼쳐 들여다봤기 때문인지…… 스메타나 제방 길을 걸을 때도, 술집과 카페, 마리오네트 가게가 있는 골목에서도 난 여러 번 여길 들락거린 것 같았어요. 과자를 씹고 있는데 도미토리 주인아주머니가 나를 한심스레 쳐다봅니다. 도대체 넌 어제도 오늘도 누워있기나 하고 먹을 거나 찾고 놀러나가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상관마세요. 어두운 안개를 헤치고 구시가시 식료품가게에 다녀오다가 넘어져 무릎과 광대뼈에 피가 납니다. 여기서나 거기서나 별 수 없네요.
오후에는 천문 시계탑 앞에서 사진을 찍고 미누트하우스에 오래 머물렀어요. 내가 사랑하는 작가의 검고 날카로운 부조가 걸려있었죠. 미할 아이바스 (Michal Ajvaz) 씨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어요. 그는 죽었을까요? 여행 도중, 심장마비로 쓰러진 게 아닐까요? 갑자기 비가 쏟아졌어요. 트램을 탈까 하다가 카를다리까지 걸어갔습니다. 별안간 비가 멎었어요. 맞은편에서 천천히 걸어오던 여자가 예상대로 말을 걸어왔어요. 우리는 다리 난간에 기대 이야기를 나누다가 앉아서 무릎을 안았습니다. 그녀는 폴란드에 살고 있는 한국인 유학생이었어요. 자기는 중요한 볼일이 있어 이곳까지 왔다고 했죠. 수많은 전쟁 중에  다른 도시 사람들이 결사 항전할 때에도 이곳 사람들은 타협하거나 협상하거나 항복했기 때문에 이 도시가 백 개의 첨탑과 함께 생존한 거랬어요. 우리의 생존도 이와 다를 게 없다나요. 그녀의 눈은 내가 본 눈동자 중에서 가장 크고 검었어요. 그리고 무지무지 우울했지요. 돈을 벌려고 가이드일도 한다는 그녀는 크라코프 근교 오슈비엥침에 들른 여행객들에게 그 참혹한 현장을 재현해놓은 수십 개의 방을 세세히 안내하며 설명하는 일을 100회도 넘게 했대요. 그녀가 뱉은 언어가 스스로를 그렇게 우울하고 냉연하게 만들었을 거예요. 그녀는 웃으며 말했죠. 내가 당시에 살았다면, 나처럼 이유 없이 떠돌며 음악이나 듣는 사람은 유대인들과 함께 가스실로 보내졌을 거라고.
나는 미할 아이바스 씨의 명함을 꺼내 그녀의 눈앞에서 흔들었어요. ‘노바이친……’이라고 읽나? 그녀 또한 처음 보는 지명이라 여기서 얼마 먼 곳인지 모른다고 했어요. 이 사람은 누구예요? 왜 찾아가려는 거죠? 몇 달 전 한국에서 우연히 만난 체코 작가인데 놀러오라고 했거든요. 일흔은 족히 넘은 인자한 할아버지셨죠. 우리는 함께 차를 마셨고 문학과 일상 이야기를 나눴어요. 헤어질 때 가볍게 포옹했죠. 꼭 한번 놀러오라는 말에 내가 여기까지 온 거나 다름없는데…… 그런데 몇 번이나 보낸 이메일에 답장이 없고 전화 연락도 안 되는 이유가 뭘까요?
그녀와 나는 다리 중간쯤에서 인사를 나눴어요. 나는 ‘강을 건넌 자’가 되지 않으려고 되돌아서서 걸었어요. 해가 지는 그 흔한 순간이 왜 그렇게 슬펐을까요. 왜 신은 나에게 실수로라도 멋진 로맨스의 순간을 허용하지 않을까요? 왜 비행기 안 옆 좌석은 꼭 할머니 아니면 꼬만지…… 가버린 줄 알았던 그녀가 다시 내 앞으로 뛰어왔어요. “다음에 폴란드에 놀러 와요.”라고 자신이 했던 말은 ‘인사’라는 겁니다. 인사는 인사일 뿐이지, 약속은 아니라는 게지요.
난 지금 혼란스러워요. 또 길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낯선 방 작은 침상에 웅크리고 뭔가 골똘히 생각하지만, 7일 만에 뭘 쓰려니 어지럽고 토할 것 같아요. 가능한 오래 글을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다 부질없죠. 내일은 검은 레깅스에 까만 운동화, 검정색 긴 티셔츠를 입을 거예요. 공포와 함께 기차를 타고 가다보면 환하고 아름다운 묘지가 보일 거예요. 내 옆자리에 당신이 있어준다면.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