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시간 속으로』 ‘문지 클래식’ 신판 추천의 말 | 김애란 |

『낯선 시간 속으로』는 1974년 아버지를 여의고 의가사제대한 청년의 행보를 그린 연작소설이다. 아버지의 무덤과 자기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번복하고, 지속하며, 유예하는 이야기.
이 소설의 형식과 변주는 내게 몇몇 이미지를 연상시키는데, 그중 하나는 ‘두 사람이 네 손으로 하는 실뜨기’다. 내 앞의 상대(‘너’일 수도, ‘그’일 수도 있고, ‘아버지’일 수도, ‘그림자’일지도 모를)와 마주한 채 번갈아가며 실 모양을 잡는. 각 선(線)의 접점을 들어 올리고 또 뒤집어 허공에 새 무늬를 띄우는 일이 떠오른다. 시공을 찢고 가르는 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서지지 않는 도형의 패턴이랄까 아름다움도. 그건 아마 실뜨기 놀이와 작가가 말한 ‘돌아오며 떠나기, 떠나며 돌아오기’ 행위가 조금쯤 닮은 까닭일 거다.
더불어 연상되는 또 하나의 이미지는 ‘물로 쓴 글씨’다. 여러 문장을 덧대 달라진 표면, 울룩불룩 묘하게 부피가 생긴 평면이 생각난다. 글씨가 아닌 서판의 형질을 바꾸는 일. 어떤 진실은 이야기가 아니라 목소리로 전해져야 하는데, 작가가 그 소리를 잘 보호하기 위해 고안한 게 바로 그 서판이 아니었을까 싶다.
최근 문학잡지 『Axt』(no. 16)에 실린 작가의 인터뷰를 읽다 밑줄 그은 구절이 있다. 인터뷰어가 작가에게 ‘문장의 역동성’에 대해 얘기하자 나온 답변이다.
—그렇게 느껴주니 고맙다. 그 무렵의 깊은 고통에 공감해주는 것 같아서.
나는 고맙다는 말에 조금 동요했는데, 평소 작가가 그 ‘고통’의 근원이 되는 사회적 배경이랄까 원인을 소설에 잘 드러내지 않은 까닭이었다. 『낯선 시간 속으로』 속 화자가 그토록 많은 말을 쏟아낸 건 결국 그 ‘많은 말’을 통해 지키려 한 ‘다른 말’ 혹은 ‘하지 않은 말’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 시대가 가진 거대한 정신적 공황과 결핍이 낳은 말들. 그리고 어디에도 가닿을 수 없는 절박함. 그리하여 그 청년은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고 싶을지 상상하고 되물어보기도 하는 2018년 가을이다.

* 출처: 문학과지성사 홈페이지(www.moonji.com) — ‘내가 추천하는 문지 클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