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칼럼] 세속 부부의 가끔 |김이설|

복권방이라는 데 가본 적이 있다. 그곳에서 로또 복권을 샀다. 남편이 꿈자리가 좋았다던 날이었다. 네 장 샀는데, 로또 맞을 꿈까지는 아니었다. 대신, 다음 날 시어머님이 보내주신 자주감자 한 박스를 받았다.
복권방의 첫 인상은 무척 강렬했다. 로또 당첨 발표 두어 시간 전이었는데, 복권을 사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 지어 있었다. 나 역시 그 줄의 끝에 서서 로또를 샀다. 로또를 어떻게 접수하는지 몰라 허둥댔지만,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진지하거나 심각해 보였다. 그리고 피로해 보였다. 복권방 안의 자욱한 담배연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있던 나도 그런 얼굴이었을 것이다.
그 경험 덕분에 소설을 하나 구상하기도 했다. (아직 골격이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매주 복권을 사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했다. 이 인물은 일주일에 로또 두 장씩 산다 매번 꽝이 될 것이 뻔한데도 안 살 수가 없다. 그것이 생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대처방안이며, 가장 간절한 희망 의지로 발현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부부는 ‘로또 당첨되면’ 이라는 소재로 이야기 하는 걸 좋아한다. 몇 십 억이 공짜로 생긴다는 가정. 그 돈으로 하고 싶은 것을 열거하는 일. 상상만으로도 황홀하다.
로또가 되면 일단 아무에게도 연락 않고, 무조건 한국을 뜨는 거야. 몇 개월 해외에서 지내고 들어와 남은 돈은 모두 은행에 넣어 이자로 먹고 살자. 정말 신난다. 집도 사고, 차도 바꾼다. 작업실도 차려줄게! 남편이 선심을 쓴다. 아냐, 마감이면 집에도 안 들어올 것 같아. 그건 문제가 되지. 그럼 아예 더 큰 집을 사자. 그 집의 가장 좋은 방을 당신 작업실로 해. 눈물도 난다. 또 뭘 할까. 큰애가 노래를 부르는 발레학원과 피아노학원도 보낼 수 있다. 뿐인가, 영어나 중국어를 가르치는 원어민 선생을 부를 수도 있다. 양가에도 뭘 해드려야지. 전원주택 지어드리자. 좋다, 좋아. 그리고 우린 여행 좀 다니자. 당연하지. 근데 어디 가고 싶은데? 나는……, 제주도! 우리 좀 써도 돼. 유럽을 돌거나, 휴양지에서 몇 달씩 놀 수도 있어. 가더라도 제주도에서 한 달만 살아본 뒤에 가면 안 될까? 그럴래? 그럼 당신 하고 싶은 대로. 근데 당신 로또 되면 회사는? 다녀야지. 주변에 소문나면 안 되잖아. 하긴 그렇겠다. 그럼 나도 계속 소설 써야겠다. 걱정 마. 내가 출판사 차려서 당신 마감에 시달리지 않고 소설 쓰게 해줄게. 마음대로 쓰고, 마음대로 책 내! 이젠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말이야. 잠시 뒤, 남편이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남편을 쳐다봤다.
배송료 같은 거 계산 안 하고, 인터넷에서 사고 싶은 걸 좀 마음 편하게 사보고 싶어. 크고 좋은 게 아니라, 자잘하고 별 거 아닌 것들. 왜 이거 있으면 좋겠다 싶은 거 있잖아. 정말 필요한지 아닌지 고민하고, 배송료 따지고, 카드 결제일 따지고……. 그런 거 안 하고, 정말 마음 편히 단번에 클릭해서 물건 사보는 게, 내 꿈이네.
겨우? 겨우가 아니라, 정말로.

그러고 보니, 그렇다. 배송료를 내기 싫어서 레깅스를 세 개씩이나 사야 했고, 적립금을 받으려고 필요하지 않은 책을 끼워 샀던 적이 얼마나 많았나. 아이 옷 하나를 사기 위해 여러 쇼핑몰 사이트를 뒤적이고, 저가를 찾아 헤매고, 구매평을 꼼꼼히 다 읽고도 밤새 장바구니를 채웠다 뺐다……. 새벽 푸르스름한 기운을 느끼면, 이게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아니었잖아- 라고 단념한 뒤에 사이트를 닫았던 적이 얼마나 많았나. 그래, 나도 그런 고민 안 했으면 좋겠다.     로또가 되면 하고 싶은 일이, 정말 진심으로 바라는 것이, 더 큰 집도, 더 좋은 차도 아니라, 2500원 배송료 걱정을 하지 않고 자잘한 물건을 사는 것이라니. 괜히 웃음이 났다. 그리고 잠시 공허해졌다. 그게 꿈이 아니라, 망상이어서. 결코 그런 일이 이뤄지지 않겠으나, 그런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우리여서.

최근, 연금복권이라는 게 나왔다는 걸 알았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작은 회사에 다니는 남편, 생활비에 제대로 보탬도 못되는 원고료를 받는 나. 아이들은 쑥쑥 자라는데, 지금 당장 먹고 살기도 벅찬데, 어떻게 노후를 준비하나 가슴 속에 늘 묵직한 짐이었다. 그런데 연금으로 주어지는 복권이 나왔다는 것이다. 솔깃한다.
그래, 그 연금 복권 한 번 사보자. 그거 되면 좋겠지? 대박이지!
그리고 우리 부부는 당첨금을 연금처럼 타먹으며 쪼글쪼글 늙어가는 것이다. 사는 게 뭐 별 거 없다는 생각을 잠시 했을 지도 모르겠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