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말] 시인 축구선수 모집 공고 | 김중식 |

[9월의 말] 시인 축구선수 모집 공고 | 김중식 |

kimjungsik  1994년 7월 8일 어느 출판사에서 자장면을 먹고 있는데 김일성 주석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그날 축구를 하다 갈비뼈 두 대가 부러졌다. 공식 병명은 기흉(氣胸). 흔한 말로 허파에 바람이 들었다. 갈비뼈가 함몰하면서 폐를 찌른 것이었다. 에어컨 없는 시립서부병원에서 100년만의 무더위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체위를 바꾸지 못한 채 침대와 한 몸이 된 미라의 등과 엉덩이는 욕창 덩어리가 됐다.
  2009년 5월 23일 파주에 있는 천연잔디구장에도 노무현 대통령 서거 소식이 들려왔다. 이회택, 김재한 선수 등 69학번 축구선수 출신들로 구성됐다는 일명 ‘69회’와의 경기 도중이었다. 그날엔 신체 접촉도 없이 왼쪽 발목이 삐었다. 제풀에 다친 것이다. 준비운동이 부족했거나 전날 과음으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테다. 사소한 이유로 1달 넘게 깁스를 하고 알루미늄 목발을 짚고 다닌 셈이었다. 그날 평균연령 40대 중반의 팀이 평균연령 60대 초반의 팀에게 패배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191㎝의 키로 상대 수비수를 비비고 부수던 ‘높이 떴다 김재한’ 선수도 환갑이 넘으신지라 수비수와 털 끝이라도 스치면 공포가 담긴 낮은 신음소리를 내셨다.
  내 몸이 우리 시대의 역사인물들과 감응하는 것일까. 다친 날짜를 기억하는 게 인생을 통틀어 두 번뿐이므로 그 반대다. 프로선수들에게 큰 부상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린 채 울면서 들것에 실려나가는 절망스런 사태이지만, 생활체육 선수에게 어지간한 부상은 갈비뼈가 부러져도 웃으면서 퇴장하는 병가지상사다. 단지 운이 없었을 뿐이다. 그러나 2016년부터 축구 한 번 하면 서너 달 쉬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고산을 오르듯 걸음을 떼지만, 몸이 의식의 통제를 벗어나 무아지경에서 공에 반응하는 순간에 ‘딱’ 소리가 난다. 인대나 근육 또는 가랑이가 찢어지는 소리다. 이제는 부상이 운이 아니라 노쇠 탓인 게 분명해졌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나는 다친다”(황지우)는데, 나는 축구를 할 때마다 다친다.
  안전한 운동을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래뵈어도 인천 동산 중고등학교 출신이다. 청소년기 6년을 알루미늄 배트로 공 때리는 타격음 속에서 살았다. 투수와 포수가 아니면 운동량이 적으므로 이제 와서 운동 삼아 즐길 만한 스포츠는 아니겠다. 게다가 야구공의 108땀은 하나하나가 번뇌여서 야구는 몸으로 반응하는 축구에 비해 두뇌스포츠에 가깝다는 느낌이다. 골프를 배울 기회가 두어번 있었으나 두어 주 스윙 연습만 하다 접었다. 필드에 나가봐야 숨도 차지 않고 땀도 나지 않았다. 안전하면서도 운동량이 많기로는 네트를 사이에 둔 종목이겠다. 배드민턴과 탁구는 과격한 스포츠였다. 그중에서도 테니스는 ‘진짜’였다. 축구는 잠시 쉬어가거나 숨을 수 있는 피난처를 찾아낼 수 있다. 하지만 테니스는 중립지대 없는 격투기였다. 부상의 공포 탓에 더 이상 축구를 즐기기 어려워지면 난 숨넘어가는 테니스장에 있을 것 같다.
  ‘고통의 축제’를 즐기는 이유는 취미가 아니라 중독이기 때문이다. 몸이 시가 되는 축제랄까. 그에 따른 희생이 만만치 않으니 카니발리즘 같기도 하다. 고깃덩어리에 가까워진 몸. 쫌만 더워도 온몸이 땀으로 젖는 갱년기. 찜질방이 세포 속 이물질을 쥐어짜내는 쾌감을 준다면, 축구는 몸 속 이물질을 녹여버리는 듯한 황홀을 준다. 체력이 방전되면서 잡념조차 기력을 상실하는 ‘러너스 하이’에 가깝다. 비루한 몸덩이가 가져다줄 수 있는 열반을 누리는 것이다. 단순한 즐거움, 육체의 원시적 활력, 골에 이르기까지의 필연적이고 아름다운 공의 궤적까지. “축구는 야외에서 행해지는 인간적 충실함의 완성본”(그람시)이다. 선악의 윤리, 옳고그름의 이념을 벗어나 야외에서 자발적으로 솟구치는 삶의 표현이다.
  그렇다. 아무리 동네축구여도 골은 기적이자 완벽한 힘이다. 평소실력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우연한 패스들이 이뤄진다. 일순 태백산맥을 넘어선 듯 광활한 바다가 열린다. 냅다 찼을 뿐인데 공은 수비수와 골키퍼가 어찌할 수 없는 외길을 따라 날아간다. 시 한 편이 만들어지는 순간의 비약과 천의무봉이 골 하나하나에 들어 있다. 골은 시적인 순간―시가 써지는 순간 혹은 한 줄기 섬광의 순간―의 황홀과 비슷하다. 그날밤 몸은 실신의 상태이지만, 의식은 자꾸 골 장면을 리플레이하면서 잠을 설치게 된다. 시를 쓸수록 생을 탕진하는 시인처럼, 열심히 할수록 몸을 축내는 게 나의 축구다. 그렇더라도 다치기 위해 축구를 하는 건 아니다. 축구 경기 날짜가 잡히는 날부터 몸 만들기에 들어간다. 에스컬레이터 대신 계단을 오르고, 술집 대신 헬스장으로 간다. 골을 넣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치지 않기 위해서다.
   직장을 옮길 때마다 새로운 팀에 가입하지만, 가장 오래 몸담은 팀은 1991년 창단된 시인축구단 ‘FC글발’이다. 법도 주먹도 없이 27년간 팀이 유지된 비결은 “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유일한 불문율 덕분인 듯하다. 시 이야기를 하지 않는 모임인데, 굳이 시인만 팀원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뭘까. 시 이야기가 초래할 사태를 알고 스스로 입 다무는 사람이 시인이기 때문이 아닐까. 남녀노소 불문하고 시인이라면 대환영이다. 걸을 수만 있다면 주전 멤버가 될 수 있는 기회다. 다른 팀에 비해 부상 위험이 현저히 적다. 내가 요즘 축구를 하다 다치는 것은 즐거움보다 승부가 중요한 또 다른 팀의 일원으로 뛸 때다. 다 정리하고 평균연령 55세의 느리고 약한 팀에서나 놀게 될 것 같다.

시인. 1990년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 시집 『황금빛 모서리』와 『울지도 못했다』, 산문집 『이란 ―페르시아 바람의 길을 걷다』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