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칼럼] 숨을 곳은 없다 |안성호|

여섯 달 전, 지인으로부터 내년 한 달 동안 북극 다산기지로 출장을 갈 거라는 말을 들었다. 출장 가는 이유는 24시간 태양 없는 체험을 하기 위해서이다. 그전에도 유사한 체험을 위해 자주 남극이며 남미를 가던 그였다.
부러웠다. 태양 없는 곳은 고사하고 아내 없는 곳에서 소금에 절인 양배추를 먹으며 한 사흘 푹 쉬어봤으면, 나는 원이 없겠다 싶었다. 마을이 보이지 않는 언덕에 A자 텐트를 쳐 놓고 혼자 몇 권의 책을 뒤적이고, 몇 개의 문장을 노려보는 즐거움. 정말 그럴 수 있다면 자릿세를 준비해서라도 당장 떠나고 싶었다.
그런 생각에 골몰하다보니 로빈슨 크로소가 살았다던 페르난데스군도에 표류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대항해시대라는 게임을 자주 해서 그런가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 즈음부터 홈쇼핑에서 등산용 기구들을 하나씩 사 모으기도 했고, 아내에게 사흘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빨리 흘러가는지 몇 번 시연을 해 보이기도 했다. 밤에는 게임을 하고, 낮에는 잠을 자면 시간은 뒤죽박죽 금방 하루 반나절씩 지나갔다. 이틀 같기도 하고, 사흘 같기도 한 시간. 한번 어디론가 떠나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니 점점 치밀해져서 전국 오지를 검색해보기도 했다. 배낭에 쏙 들어가는 1.94kg의 노트북도 준비했다. 이 모든 건 부지불식간에 찾아오는 원인 미상의 우울, 하루하루 물통을 머리에 이고 뛰어다니는 듯 한 일상, 이것을 벗어나는 길은 혼자 시간을 보내는 길 밖에 도리가 없을 듯 보였다.
하지만 이런 비장함은 지난 장마 기간 텔레비전 뉴스 한 토막으로 막을 내렸다. 뉴스에서 어떤 사내의 백골이 산에서 발견되었다는 것. 그것을 하얀 천에 싸서 119대원들 들고 내려오는 장면을 보면서 한숨이 쿵 쏟아지고 말았다. 세상 어느 구석, 탐험되지 않은 곳이 없다는 생각과 어떤 누군가의 순수한 의도가 타인에게는 한낱 비관한 백골의 신원미상이라니.
그러고 보니 오지는 없었다. 도시 외곽에 서 있는 모텔을 빼고는 숨어 있을 곳도 없었다. 대부분의 산은 입산금지고, 대부분의 섬도 잦은 풍랑에 쉽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경남 함안에 있는 어머니 산소에 들렀다. 살아생전에 남강이 흐르는 강가에 묘를 짓겠다던 어머니 말씀을 들어 만든 자리였다. 앞은 강이요, 뒤는 선산이 있는 한적한 곳이었다. 처녀뱃사공이라는 노래비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넓은 모래사장이 일품이라 산소에 들리면 그 백사장에 앉아 담배 두어 대를 태우고 오곤 했는데, 모래사장이 그만 사라졌다. 흔적만 겨우 볼 수 있는 곳으로 변한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몸에 난 털이 부끄러웠고, 더 이상 숨을 곳 없이 살아야 한다는 걸 절감했다. 머리에 물통과 더불어 어머니 산소까지 이고 살아야 할 팔자인가 싶어, 우울만 깊었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