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칼럼] 푸르공 씨의 풍장 |김선재|

그를 보게 된 것은 이 지구에서 가장 넓은 하늘이 이 지구에서 가장 시뻘겋게 타오르던 어느 늦은 저녁이었다. 종일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 속을 걸어오느라 나는 더러웠고 지쳐 있었으므로 ‘생각’ 같은 것을 할 기분이 아니었다. 아무리 외워도 금방 잊어버리고 마는 이국의 지명 따위도 버린 지 오래였다. 그래서 그곳이 정확히 어디였는지,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 길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나와 마주친 그는 푸르공 씨였고 그 앞에 멈춰선 나는 모든 감각을 상실한 먼지투성이 여행자였을 뿐이다.

푸르공*이라고 했다. 그 이름은 문명이 지나간 흔적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야생화와 짐승의 배설물과 바람과 구름만 난무한 들판에서 만난 이름치곤 지나치게 우아했다. 게다가 ‘공’이라니. 공이라면 동서를 통틀어 귀족에게 내리는 작위 중 첫째가 아닌가. 물론 그의 ‘공’이 내가 아는 그 ‘공’일리는 없지만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을 깊이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이성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더구나 쥐불을 놓은 것처럼 온 들판을 빨갛게 물들인 하늘을 지나가던 비행기가, 그 석양의 맹렬한 기세에 놀란 조종사가, 실수로 떨어뜨린 짐짝 같은 그의 몰골에 충분히 놀라는 중이었다. 사실, 이름 따윈 아무 것도 아니었다. 분명한 건 푸르공이라 불리는 그가,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하나의 죽음을 목도한 기분이었다. 죽음이 모든 문명과 이성과 상황과 예상을 요리조리 피해 다니다가 어느 날 불쑥 눈앞에 나타난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나는 당황했다. 죽음은, 죽을 때까지 절대로 익숙해질 수 없는 감정이기 때문이었고 나는 익숙하지 않은 것과 맞닥뜨릴 때마다 도망치는 습관이 뿌리 깊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못본 척 지나치고 싶었다. 그러나 무한이라는 표현마저 무색할 정도로 한이 없는 지평선으로 둘러싸인 들판 위, 그곳에는 완벽하게 나와 푸르공씨 둘 뿐이었다. 모른 척 지나칠 수 없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마주하고 싶지 않은 그에게로, 죽음의 어떤 형상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뼈대만 남은 골격 사이에서 이따금 흙색 메뚜기들이 튀어 올랐다. 붉은 날개를 파닥거리며. 그 소리에도 방향을 바꾸는 예민한 바람이 앙상한 몸을 흔들었다. 몸 사이를 통과해 먼 곳으로 사라지는 그 8월의 바람을 따라 허브향이 파문처럼 퍼져 나갔다. 사방을 돌아보았다. 내내 돌아갈 길만 찾던 여행이었다. 그러나 길이 없는 곳을 찾아 간 여행이었으므로 돌아갈 길이 있을 리 없었다. 어리석게도, 내가 그곳으로 간 이유는 하나의 어떤 죽음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였다. 죽음과 대면한다는 말보다 어리석은 말이 있다면 그건 바로 죽음을 피한다는 말일 거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침묵하는 그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름으로 그곳에 멈춰 선 그는, 평생 길이 없는 길을 달리던 그는, 내 복잡한 심경과는 달리 평화로워 보였다. 군데군데 붉은 녹이 슬고 바퀴는 사라졌으며 이미 넝쿨 식물들에게 몸의 대부분을 내줬지만, 그래서 언뜻 보기에는 버려진 것처럼 보였지만, 그 풍경이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아니,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편안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 앞에서 뭔가 거창한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다만 사라지는 것과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는 일에 대해 생각했고 떠나온 곳과 가야할 길에 대해 생각했고 내가 속한 시 공간에 익숙해지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어디론가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돌아가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으니까.
나는 나도 모르게 돌멩이 하나를 주워 그의 몸 위에 올려놓았다. 그건 내가 기억하지 못하지만 내게 내재된 무의식이 한 행동이었다. 내 부모가 그랬듯, 부모의 부모가 그랬듯, 내가 사는 땅의 모든 시간들이 그랬듯. 기원의 탑이 되어 남은 하나하나의 돌들 위에 나 또한 돌멩이 한 개를 더한 건 어쩌면 내 망각 너머에 살고 있는 떠난 사람들의 그림자가 아닐까.

언젠가는 푸르공 씨에 대한 풍경을 잊을 것이다. 그러나 슬픔 너머 슬픔이 있는 것이 아니라 슬픔 너머 망각이 있어서 비로소 남은 내가, 우리가 여기에 있음을 잊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망각이, 떠난 자들과 남은 자들을 잇는 통로라는 것을, 그 망각을 통해 다시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것을. 그러니 사라지는 것도 그리 슬픈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그러니 다시 만날 그날을 위해 모두들 안녕히.

[시인/소설가]

* “아버지의 넓은 품”이라는 러시아에서 유래된 이름. 소련군이 도로가 없는 시베리아로 병력을 수송하기 위해 만든 승합차로 주로 초원이나 사막 등을 여행할 때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