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말]  꿈의 기록들 | 백수린 |

[7월의 말] 꿈의 기록들 | 백수린 |

baeksurin   1.

   눈먼 사내 둘이 전동드릴을 든 채 나의 집에 무단으로 들어왔다. 나는 너무 놀라 무슨 일이냐고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미안하다며, 사람이 사는 집인 줄 몰랐다며, 무엇인가를 수리해야 한다고 시(市)에서 말했기 때문에 왔을 뿐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들의 전동드릴이 계속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윙윙댔고, 집에 나 혼자라는 사실을 짐작한 탓인지 낯선 사내들의 얼굴에 능글맞은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으므로 나는 두려워졌다. 고장 난 것 따위 신경 쓰지 않으니, 망가지고 훼손된 나의 초라한 집에서 사라져 주기를 나는 애써 의연한 얼굴로 그들에게 요구했다. 하지만 그들은 나가지 않았겠지. 저벅저벅 들어와 나의 손바닥만 한 영토에 더러운 신발자국을 남기고 갔겠지. 나는 망가진 편이 차라리 나은데.

 

2.

   이른 주말 새벽이었다. 나는 홀로 서울의 번화가를 걷고 있었다. 언제나 시끄럽고 붐비는 지역인데 이른 시간의 주말인 탓일까? 지난밤의 요란한 파티가 끝난 거리는 한산했다. 초겨울처럼 서늘하고 건조한 공기가 뺨에 닿았다. 골목을 돌자 오래된 벽돌식 건물들이 나왔다. 서울에 언제부터 이런 곳이 있었지? 폐가처럼 남아 있었으나 붉은 벽돌로 지어져 제법 운치 있는 교회와 옛 대학의 건물들, 그리고 그 앞에 우뚝 선 커다란 겨울나무에 매혹되어 나는 사진기를 꺼냈다. 여러 차례 셔터를 누르던 중 프레임 안으로 모자를 쓴 어떤 여자가 들어왔다. 머리를 짧게 자른 여자의 뒷모습이 어쩐지 A를 닮아 나는 꿈에서 A니? 하고 물었다. 천천히 나를 돌아보던 그녀는 나의 오랜 친구 A였다. 한 번도 결혼을 원하지 않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타협해 결혼을 했고 그 후 계속 불행한 결혼 생활을 끝내고 싶어 하는 A. 꿈속에서 나를 발견한 그녀는 퉁퉁 부은 눈으로 나무 사진이 찍고 싶어서, 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가 왜 부은 눈으로 주말 새벽부터 거리를 헤매고 있는지 알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너도? 내가 묻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뿌리가 깊어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것은 얼마나 고귀한 일일까? 그렇게 말한 것은 나였을까, 그녀였을까. 창으로 들이치는 햇살에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추방당하자마자 커다란 나무와 초겨울 새벽의 창백한 풍경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지만 모든 것이 사라졌는데도 A는 퉁퉁 부은 얼굴을 한 채 아직 여기에 남아 나를 물끄러미 본다. 여기, 그러나 내 손이 닿지 않는 거리에.

 

3.

   여름의 저녁. 우리는 섬머하우스의 창가에 테이블을 꺼내어 놓고 끝도 없이 펼쳐진 정원을 내다보며 식사를 했다. 바람이 불고 빗방울이 떨어졌다. 누군가 내게 숲으로 이어진 정원에는 여우가 나타난다고 했다. 나는 여우가 보고 싶었고, 정말 너무 보고 싶었지만, 끝내 보지 못했다.

 

1982년 인천에서 태어나 201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소설집 『폴링 인 폴』과 『참담한 빛』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