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칼럼] 아름다운 악몽들 |조용미|

내 입에서 나오는 것이 틀림없는 비명 소리를 들으며 깨어났다. 이곳은 원주의 토지문화관 귀래관 103호. 새벽 세 시, 옆방에서 분명 이 소릴 들었을 텐데 괜찮을까. 무슨 꿈을 꾸었는지 모르겠다. 다만 꿈속에서 깨어나려 애썼고 가까스로 비명을 지르며 스스로 그 소리에 놀라 깨어났다. 몸이 많이 아프지도 않고 고통과 슬픔에 오래 시달리고 있다고도 할 수 없는 상태인데도 악몽이 찾아왔다. 나를 찾아왔던 잊히지 않는 악몽들.
밤의 버스는 어딘가로 아주 오래 달려가고 있었다. 창밖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멀리 산과 들을 지나가고 있는 듯했다. 버스가 멀리 가는 그 시간이 구체적으로 느껴졌다. 이윽고 버스가 멈추었고 사람들이 천천히 말없이 내렸다. 사람들이 다 내리고 나서 나도 내리려고 (앞문이었다) 한 발을 내딛었을 때, 문 앞에 서서 사람들을 지켜보던 누군가 천천히 그러나 단호하게 문을 닫았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아직 내리지 못했다는 뜻으로 운전사를 보려고 고개를 천천히 돌렸는데 그 순간 버스의 창 앞에 놓여 있는 검은 띠를 두른 영정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의 얼굴이 분명히 보이지 않아 고개를 숙이고 가까이 다가가서 들여다보았다. 영정 사진에는 나의 얼굴이 들어 있었다.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식은땀이 나 있었다. 불을 켜고 날이 밝아올 때까지 멍하니 앉아 있었다.
가만히 처연하게 그러나 결연한 느낌으로 나는 서 있는 것 같다. 천천히 고개를 숙인다. 치마를 입고 있다. 아주 장중한 느낌이 드는 치렁치렁한 옷이다. 나는 어찌하여 이런 느낌이 드는 옷을 입고 있는가. 두 손으로 치마를 펼쳐 들어본다. 치마는 넓게 펴진다. 약간 두툼하고 까슬까슬한 촉감이다. 아, 이건 삼베옷인데…… 내가 왜 이런 옷을 입고 있을까. 치마를 넓게 펼쳐들고 고개를 숙이고 찬찬히 옷감을 바라본다. 미색의 삼베옷, 그 위로 코피가 뚝 떨어진다. 나는 그저 고개 숙이고 내가 펼쳐들고 있는 삼베옷 위로 뚝, 뚝, 떨어지는 붉은 코피를 바라보고 있다.
몇 해 동안 악몽에 자주 시달리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 꾸었던 다른 꿈이다.
꿈을 꾸는 도중에 스스로 꿈이라는 사실을 점차적으로 깨닫게 되는 ‘자각몽’도 있다. 정확하진 않지만 한 4년 단위로 반복해서 나타나던 꿈이 있었다. 참으로 기이했다. 꿈의 마지막 단계에서 나는 알게 된다. 이 꿈이 몇 년 째 반복해서 나를 찾아온다는 것을. 아마 나의 전생이라 짐작되는데, 나라고 생각되는 여인이 죽임을 당하는 꿈이다. 그렇게 슬픈 꿈은 다시없었다. 어쩌면 오랜 기다림에 관한 꿈인지도 모르겠다. 여인은 누군가 자기를 죽이러 올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달빛이 무척 밝다. 고통스러운 것은 죽음을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시간이 너무 상세하고 길다는 것. 꿈에서 흐르는 시간을 의식한다는 것은 기이한 일. 혼자서 고독하게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시간의 호흡들. 방안으로 달빛이 깊숙이 들어와 있다. 방문이 열린다. 죽음을 맞이하면서 현실의 나는 깨어난다. 그리고 아주 익숙한 꿈임을 깨닫는다. 두 번째로 그 꿈을 꾸었을 때, 깨어나면 바로 기록할 수 있도록 노트를 항상 머리맡에 두었으므로 그 꿈을 기록할 수 있었다. 잊지 않기 위해서, 또 찾아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으므로. 그리고 몇 해 지나 다시 그 꿈이 찾아왔었다.
깨어 있는 상태에서 바로 ‘자각몽’ 상태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는데 아직 그런 멋진 일은 내게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아무 의미 없는 꿈속에서 견딘다. 꿈을 기록하기 위한 노트는 더 이상 머리맡에 두지 않아도 될 것이다. 꿈을 해석하고 싶지 않다. 그 아름다운 이미지들을 의미로 훼손하고 싶지 않다. 이젠 어렴풋이 알고 있다. 붉고 푸르고 검은, 그 모든 빛을 다 장악하고 있는 어떤 세계가 분명하게 있고 나는 꿈에서 그 세계를 넘나든다는 걸.
책을 읽는다…… 한 자 한 자, 한 장 한 장, 계속 읽고 또 읽는다. 집중해서 읽다가 잠시 다른 생각도 하다가, 다시 읽는다. 꿈속에서도 난감하다. 이걸 꿈이라고 꾸다니! 어떤 초저녁의 꿈은 시를 쓴다. 기가 막히게 리듬감이 살아있는 시를 쓰고 있다. 너무나 생생해 기가 찰 지경이다. 고치고 다듬고 고민하고…… 대체 왜 이런 꿈을 꾸어야 하는가. 어떨 땐 혼자 밥을 먹고 있다, 맛없게 밥알을 한 톨 한 톨 세어가면서. 식탁 위의 정적이 몸서리치게 무서울 정도다. 밥을 한 숟가락 한 숟가락 먹는 이상한 행위를 멍하니 반복하고 있는, 온통 흰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 안의 내가 있다. 책을 읽고, 시를 쓰고, 밥을 먹고, 대체 이런 걸 꿈이라고 꾸다니 말이 되나. 꿈이 현실이고 현실이 꿈인 명백함. 현실을 꿈으로 꾸고 꿈을 현실로 살아내는 악몽. 끔찍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눈을 뜨고 꾸어온 꿈들은 내내 아름다웠으니, 꿈은 합쳐서 다 아름답다 해두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