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말] 멀리 | 배수아 |

[3월의 말] 멀리 | 배수아 |

baesua   얼마전 카페에서 한 평론가가 말했다. “이 인터뷰를 위해서 오늘 아침 당신의 책을 읽었는데, 아마도 가장 자주 등장한 어휘가 “멀리”인 것 같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그럴 리가 없다고 대답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요?” 하고 그가 물었다.
   나는 정말로 멀리 간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당신은 어느 인터뷰에서, 글을 위해서 가장 사랑하는 말이 ‘떠나다’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가 항의했다.
   나는 아니라고, 내가 글을 위해서 가장 사랑하는 말은 ‘홀로’ 라고 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홀로’ ‘멀리’ ‘떠난’적이 있습니까?” 그가 다시 물었다.
   나는 어린 시절에 최초로 비행기를 타던 날을 기억한다고 말했다. 한 시간 동안 남쪽에서 북쪽으로 날아왔고, 비행기 안에서 스튜어디스가 사탕이 가득 든 쟁반을 내게 건네면서 미소지었으며, 북쪽의 공항에 도착하니 그곳은 온통 얼어붙어 있었노라고.
   “그것이 당신의 가장 먼 여행이었나요?” 평론가가 다시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나는 브라질 바히아주의 산타 아마로 시외버스 터미널 한 코너에 컴퓨터 서너 대를 놓고 영업하는 간이 인터넷 카페에서 검고 키 큰 발레리노를 만났다고 대답했다.
   “그가 뭐라고 말했는데요?” 평론가는 흥미를 보였다.
   나는 버스를 타러 터미널로 갔고, 인터넷 카페의 주인인 흑인 남자는 키가 2미터 가까운 장신이었는데,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말을 듣자 자신도 서울에 간 적이 있노라고 말했다.
   “1988년이었어요.” 하고 인터넷 카페 주인이 말했다. “나는 발레리노였는데, 내가 소속된 발레단이 한국으로부터 초대를 받았죠.” 당신의 발레단은 무슨 공연을 했는지요? 어쩌면 내가 보았던 <백조의 호수> 공연에 당신이 출연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고 말하려는 찰나 내가 타야할 버스가 도착했고 순식간에 장면이 바뀌었다.
   “그래서 그것이 당신의 가장 먼 여행이었단 말인가요?” 평론가가 다시 물었다.
   나는 카페를 나왔다. 신선한 공기가 그리워졌기 때문이다.
   벌거벗은 진실은 지루할 뿐이죠, 라고 대답한 것은 그 이전이다.
   최초의 공항. 추위 때문에 파랗게 얼어버린 나는 자꾸만 흘러내리는 목도리 달린 흰 모자를 양손으로 잡고 어쩔 줄을 몰랐다. 체크무늬 흰색 코트와 흰색 장화도 전혀 따뜻하지 않았다. 비행기를 타기 전 바람을 피하기 위해 나무 벤치에 앉았는데, 그늘진 곳이라 더욱 춥기만 했다. 비행기는 희고 긴 몸통을 가진, 메마른 새 같았다. 그날 누군가가 찍은 사진 속에서, 나는 홀로였다. 얼어붙은 얼굴을 가진 에스키모 아이처럼. 그 사진은 내 어린 시절의 앨범에 꽂혔고, 이후 앨범은 세월이 흐른 뒤 집을 떠나던 날의 내 가방 속에 들어있었다. 내 최초의 공항은 기억에서 곧 사라졌지만, 사진은 앨범 속에 남아있었다.
   허공을 여행하는 일은 기이하다. 국경을 넘어야 하는 육지나 바다 여행과는 다르다. 산도 들판도 도시도 강물도 지나지 않으며 대신 구름의 초현실적인 형상들 위로 지나가는데, 마치 시간의 허물처럼 엷은 평면의 몸을 가진 그 형상들은 존재하지 않는 나라를 이룬다.

   그런 나라에서 머물던 어느 날, 나는 한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내가 단 한번 만났을 뿐인 어떤 사람이 며칠 뒤 베를린을 방문할 예정인데 도착하는 날 공항에서 만나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가자는 내용이었다. 11월의 베를린은 언제나 밤이었다. 저녁의 대기는 차가운 습기와 안개, 발밑은 어두웠으며, 부엉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긴 꼬리를 늘어뜨린 붉은 여우가 불빛 없는 거리를 가로질러 갔다. 그 도시에서 내가 배운 단 하나의 문장은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Ich verstehe dich nicht)’ 였다. 나는 눈물 없이 슬프게 걸어, 도시 한가운데에 자리한 공항으로 갔다. 그 공항을 처음 보았다. 나는 그런 공항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집주인의 서랍 속에서 발견한 낡은 지도를 손가락으로 더듬어, 나는 공항이 있다는 위치를 알아냈고, 시간이 넉넉하니 그곳까지 걸어서 가리라 생각했다. 나는 눈동자처럼 검은 운하를 따라 걸었다. 화창한 주말이면 사람들로 넘치던 벼룩시장이 있던 자리. 그러나 젖은 신문지와 나뭇잎이 바람에 스산하게 날렸고 돌이 깔린 인도위에는 붉은 열매가 떨어져 검붉은 핏자국이 가득했다.
    나는 공항에 도착했다. 그렇다고 믿었다. 공항은 마치 성이나 요새처럼, 마치 감옥처럼, 드높은 돌담으로 사면이 둘러싸인 듯이 보였다. 그 어디에도 입구는 없었다. 깜깜한 밤, 나는 가도가도 끝없는 공항의 담을 따라 하염없이 걸었다.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았다. 거대한 블록을 돌아, 동쪽에서 서쪽, 남쪽에서 북쪽으로 걸었다. 나는 다른 도시에서 보았던 승전 가도, 길 양옆으로 영웅의 동상이 늘어선 죽음의 길 한가운데를 걷고 있는 느낌이었다. 부엉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둠의 탑은 점점 높이 솟아났다. 모퉁이를 돌때마다 차가운 담이 나타났다. 이미 갔던 길을 반복해서 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길바닥에서 하얀 조약돌이 흰 빵처럼 반짝였다. 공항은 스스로 초현실적인 의식을 구축했다. 이곳은 정말로 공항일까? 왜 뜨고 내리는 비행기가 한대도 보이지 않는걸까? 왜 사람들이 한명도 없고, 그 어디에도 불빛이 보이지 않는걸까? 나는 입구 없는 성 주변을 영원히 빙빙 돌게 되는 걸까? 이러다가 아침이 밝아오면, 나는 아무도 모르게, 서류도 없이, 상처받고 쇠약해지겠지… 약속 시간은 이미 지났다.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W와 함께 밤 산책을 나설 때면, 나는 그날 밤의 공항에 대해서 간혹 이야기했다. 공포는 물에 젖은 검은 우단 천이었다. 부드럽고, 은은하게 반짝이면서, 단단하게 눈과 피부를 조였다. W는 밤산책 중에 커튼이 쳐 있지 않은 환한 창들을 올려다보고, 우연히 그 집 주인의 서재가 눈에 들어오면, 그들이 어떤 책을 갖고 있는지 상상하기를 즐겼다. 그는 모르는 사람의 환한 서재를, 상상력을 자극하는 먼 불빛의 빈 방을 좋아했다. 심지어는 주인이 부재하는 그런 방들을 사진으로 찍고 싶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날 밤의 공항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 공항이 없다고 믿었어. 지도가 잘못되었거나 내가 지도를 잘못 읽었고, 내가 있는 장소는 시내의 폐쇄된 맥주 공장이나 도축장일 것이고, 공항은 결코 찾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 시간이 너무도 흘러 마침내 자포자기한 패닉 상태에 빠지고 난 다음에야, 나는 기묘한 광채를 내뿜는 공항 입구를, 입구로 통하는 작은 통로를 발견할 수 있었지. 왜 나는 공항이란 항상 유리와 콘크리트로 지어진 현대식 건축물이라고 생각했을까… 그것은 노란색 벽돌건물인데, 마치 오래된 기차역처럼, 거대한 아치형 대리석 천장 아래를 지나가고 있다는 느낌이었지. 나는 어리둥절하면서도 안도하는 마음으로 20세기 초의 아케이드를 연상시키는 낭하를 지난 입구로 향했고, 청사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여행자들의 짐이 나오는 컨베이어 벨트를 마주치고는 좀 충격을 받았어…”
   그날 공항에서 만난 사람은 나를 시내의 문학 박물관으로 데리고 갔다. 아무도 없는 박물관 2층으로 올라가자 작은 전시실 스크린에는 잉게보르그 바흐만의 시 낭송 녹화 필름이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바흐만의 시를 한편도 읽어보지 못했다. “말해다오, 사랑이여…” 수많은 청중을 눈앞에 두고 긴 시를 읽어나가는 바흐만의 얼굴이 스크린에 가득 찼고, 그녀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균열되었다. “(…) 나는 모든 불길을 관통해서 가는 도룡룡을 본다. 그는 조금의 몸서리도 치치 않는다. 그 무엇도 그를 아프게 하지 못한다.” 나는 홀로 스크린 앞에 앉아 바흐만의 시 낭독을 끝까지 들었다. 공항에서 만났으며 이제 곧 함께 저녁을 먹게 될 사람은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했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내게 바흐만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좋아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바흐만의 시를 모른다는 의미였다. “바흐만은 담배불을 끄지 않고 잠이 들었다가 발생한 화제로 죽었습니다. 사고의 원인은 수면제일 거라고 다들 추측하죠. 하지만 나는 그녀가 매우 기묘한 죽음을 맞은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잠시 마주보고 서 있었다. 그리고 박물관을 나와 어느 스페인 식당으로 갔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채 당황한 나는 메뉴판의 아무것이나 가리켰고, 작은 접시에 든 고추절임 네 개를 저녁식사로 받았다.
   그날 밤 둥근 탑 꼭대기에서 부엉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몇 년 전 나는 신문에서, 내가 입구를 찾지 못하고 11월의 밤 내내 찾아 헤맸던 공항이 사라졌다는 기사를 읽었다. 공항은 정말로, 존재하지 않았을 터였다. 그날 밤 나는 무엇을 만난던 것일까? 내가 한 말은 오직 한마디뿐이었다.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Ich verstehe dich nicht).

   한 친구가 한국에 왔다. 우리는 공항에서 만났다. 무엇이 보고 싶은가요?―하고 내가 묻자, 그는 양양 공항으로 데려다 달라고 말했다. 양양국제공항. 하고 그는 또렷하게 말했다. 나는 양양은 아마도 작은 도시고, 그런 곳에 국제공항이 있다는 말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노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는 분명히 어느 책에서 한국의 양양 국제공항에 관한 신비로운 기사를 읽었다고 했다. “양양 국제공항의 2층 레스토랑에서 신비로운 맛의 생선스프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바로 그 자리에서 양양으로 떠났다. 나는 운전을 하면서도 그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믿었다. 양양국제공항은 존재하지 않았을 터이니까. 한국어를 모르는 그는 옆자리에서 지도를 펼치고, 도로 표시인 아라비아 숫자로 우리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를 가늠했다. 도중에 우리는 휴게소에 들러 커피를 마셨다. 양양 공항에 관한 글을 어떤 책에서 읽었는지 물었으나 그는 잊었다고 했다. 대신 한 여성 작가의 기이한 사고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그녀는 담배를 피우다 잠이 들었는데, 채 꺼지지 않은 담뱃불이 커튼으로 옮겨 붙어 큰 화재가 났죠. 하지만 그녀는 수면제를 먹고 잠이 든 바람에 일찍 깨어나지 못했고, 생명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는데…”
   나는 그 작가를 안다고 생각했으므로 자신있게 끼어들었다. “그녀가 누군지 알아요, 잉게보르그 바흐만이죠!”
   “아니, 아주 비슷한 사례이긴 하지만, 내가 말한 작가는 클라리스 리스펙토르 입니다.” 그가 대답했다.
   “내가 모르는 작가로군요.” 나는 의기양양하게 그의 말을 끊은것이 좀 부끄러웠다.
   “브라질 작가지요.”
   “브라질이라니, 너무 먼 곳이예요. 나는 결코 그곳에 가게되지도, 그녀를 알게되지도 않을 거예요.”
   우리는 계속해서 갔다. 마침내, <양양국제공항>이라고 적힌 표시판이 나타나자, 나는 충격을 받았고 믿을수가 없었다.
   우리는 무척 배가 고팠기 때문에 신비로운 생선 스프를 먹을 기대에 잔뜩 부풀었다. 하지만 공항 주차장에 들어서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차장이 완전히, 그야말로 한대의 차도 없이 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공항청사는 문이 닫혔고, 그 어디에도 인기척이 없었다. 2층에 있다는 생선레스토랑 역시 흔적도 보이지 않는건 당연했다. 정적이 흘렀다.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실제로 양양국제공항 표시판을 따라온 것이 아니라면, 이곳이 공항이 아니라 한적한 교외의 상수원관리시설쯤 된다고 믿었을 것이다. 우리는 한동안 자동차 주변을 서성였다. 물 한 방울 없는 사막 같았다. 신비하여라. 자신의 나라에서 이토록 비현실적인 느낌에 휩싸이다니.
   한참 후, 어디선가 우리를 발견한 한 남자가 다가왔다. 그는 공항직원처럼 제복을 입고 있었다. 나는 이곳이 양양국제공항이 맞느냐고 물었다. 그는 맞다고 했다.
   “하지만 양양국제공항은 스키 시즌에만 오픈하는 공항입니다. 주로 중국에서 오는 스키관광객들이 사용하죠.” 그는 난데없이 텅빈 공항을 찾아온 나와 친구를 매우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설명했다. 나는 6월의 석양을 등지고 서 있는 먼 곳에서 온 친구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 말이 맞아요. 공항은 있지만, 공항은 작동하지 않아요. 우리 떠나요.”
   우리는 바다가 나타날 때까지 계속해서 앞으로 갔다. 바닷가에 차를 세워두고 골목길 안쪽에 있는 허름한 식당에서 생선구이로 저녁을 먹었다. 나는 내가 바닷가에서 자랐노라고 친구에게 말했다. 그리고 불현듯, 지금은 사라진 공항을 찾지 못해 깊은밤을 방황하던 두려운 베를린의 11월에 대해서도. “그 공항은 마치…. 감옥처럼 보였어요.” 하고 내가 말했다. 그러자 그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혀있는 오래전 여자 친구 이야기를 했다.
   “35년 동안 나는 적어도 일년에 한번은 그녀를 면회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로 갔죠. 작년에는 당신이 말한 바로 그 베를린의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갔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어떤 생의 예감에 내 내면의 빈 방이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35년이나 그녀는 감옥에 있었군요! 도대체 그녀는 무슨 짓을 했길래!”
   “비행기를 납치했죠.”
   친구는 생선구이를 양 손으로 들고 살을 뜯어먹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식당주인이 와서 문을 닫아야 한다며 나가달라고 요구할 때까지, 말끔하게 뜯어먹은 생선의 등뼈를 접시에 가지런히 내려놓으며, 그는 자신이 젊은 시절 여행한 먼 나라에 대해 이야기했다. 바닷가의 밤이 깊었다. 어느 일순간, 삶은 섬뜩하게 아름답고 충만했다. 대화 도중 나는 당시 막 쓰기 시작했던 소설 이야기를 했다. 제목을 <북쪽 거실>이라고 붙일 생각이라고도 말했다. 어떤 내용이냐고 친구가 물었다. 하지만 나는 소설의 첫 페이지를 겨우 시작한 참이었으므로, 아니 사실은 겨우 제목 정도만 막 생각해둔 상태이므로, 구체적인 내용은 대답할 수 없었다. 그래서 즉흥적으로 떠오른 대로, 그 어디로도 가지 않았던 한 여자의 이야기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문득 생각난 것을 질문했다.
   “내가, 프랑크푸르트에 있다는 당신의 여자 친구 이야기를…. <북쪽 거실>에 써도 될까요?”
   그는 생선 기름이 묻은 손가락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이번에 독일로 돌아가면, 그녀에게 다시 가 보려고 합니다. 그녀에게 물어볼게요. 그래서 좋다고 하면, 그녀에 관해서 전부 들려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그것을 <북쪽 거실>에 쓰게 되겠죠.”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내가 어느날 멀리,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멀리, 거의 브라질과 같은 나라까지 가게될 지도 모른다고…
   나는 그럴 리가 없다고 대답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요?” 하고 그가 물었다.
   나는 정말로 멀리 간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없이 손가락으로 눈앞의 검은 바다를 가리켰다.
   아니 맞아요, 당신은 멀리 가게 될 겁니다.
   저렇게, 멀리. 왜냐하면.

소설가. 1993년 <소설과 사상>을 통해 등단.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일요일 쓰기야끼 식당』 『뱀과 물』 등의 소설집, 『부주의한 사랑』 『북쪽 거실』등의 장편소설들을 펴냈다. 독일 문학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