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말] 돌과 철학관과 디데이의 의미 | 민병훈 |

[12월의 말] 돌과 철학관과 디데이의 의미 | 민병훈 |

minbyubghun 1.
    올해 여행을 자주 다녔다. 기회가 생길 때마다 짐을 꾸렸고 습관처럼 공항과 터미널에 갔다. 낯선 곳에 가면 어떤 기분 좋은 활력이 생기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있었다. 어림없었다. 잠에서 깰 때마다 돌아갈 날짜를 확인했으며 새벽마다 막연했다. 나는 뭔가에 지친 상태로 국내외 도시들을 옮겨 다녔다. 그때의 기억들을 의도적으로 소진했다.
    기억. 기억과의 싸움. 인도 바라나시에서 기차를 타고 도시를 벗어나던 중이었다. 기차는 그곳에서의 시간만큼이나 천천히 움직였고, 바람이나 쐴 겸 칸과 칸 사이에 서서 밖을 바라봤다. 흙바닥에 주저앉은 무리가 내게 손을 흔들었다. 나 역시 손을 흔들었다. 그들은 웃었고, 나는 몸을 안쪽으로 옮겼다. 그때 돌이 날아왔다. 주먹만 한 돌이 날아와 벽에 부딪히곤 내 발 앞에 떨어졌다. 다시 밖을 봤을 때 무리는 보이지 않았다. 만약 몸을 옮기지 않았다면 그대로 돌에 맞았을까, 누가 던졌을까, 왜 던졌을까, 이런 생각들이 여행 일정 내내 떠나질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한동안 그 기억에 시달렸다. 돌의 기억. 돌이 된 기억. 그건 장난이었을까, 적의였을까, 혹은 내가 가늠하지 못하는 종류의 표현일까. 돌의 입장이라면 알 수 있을까. 어쩌면 그 돌과 같은 상태를 쓸 수 있지 않을까, 챙겨올 걸, 후회했다.
    너무 의미를 부여하는 게 아니냐면, 맞다. 의미를 만들고 의미를 걷어내고 의미를 모른 척하면서 의미에게 돌팔매를 하는 일의 연속이다. 모두의 의미만큼 속수무책인 것도 없다. 날아가는 돌의 상태로, 목적도 대상도 없이, 시대라는 지면을 내려다보며, 표정을 만들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면 한 줄도 쓸 수가 없다. 시대는 언제나 내게 같은 표정이며 그럴 때마다 나는 울상이다. 시대와 자율의 경계. 그 주름 안에서의 일방적인 주문과 편리한 의미 부여가 내 몸을 좁게 만든다. 자꾸 빗나간다. 지방 도시의 눅눅한 방에서 소설을 쓰는데, 내가 마치 표적지를 착각한 단거리포 같았다. 때이른 발사, 때늦은 점화,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궤적, 일그러진 탄두의 형태, 이런 것들이 떠올라 당장 택시를 타고 다른 도시로 달아나고 싶었다. 물론 이불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 고작이었지만.

2.
    어머니의 취미는 철학관에 가는 것이다. 항상 같은 말을 내게 해주는데―여름에는 물을 조심하고 결혼은 나중에 해야 한다는 등의 말― 이번엔 달랐다. 널 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그 말을 듣고 절에 더 자주 다닌다고 했다.

3.
    “지난밤에는 55년도의 디데이에 관해 얘기했다. 난 그때 신병 훈련소에서 나온 지 몇 년 되지도 않은 어린애였다. 드론 격납고에서의 총회, 여름,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고, 죽을 만큼 더웠다. (…) 이제는 모든 것이 자동화됐고, 우리는 구시대의 유물이었고, 오래된 그물처럼 버려졌다. 100년 동안 이어진 경기 침체 속에서 방출된 수많은 사람이 기본 소득에 의지하게 됐다. 자신의 직업을 빼앗은 로봇을 만드는 일을 하게 될 수도 있었다. 아니면 강화복을 다룰 줄 안다면, 아직 육체 노동력을 사용하는 곳을 찾을 수도 있었다. 우리와는 관련이 없는 대서양경제수역이나 중국 같은 곳. 내 제대 파일에는 ‘자살 위험도 낮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 『호라이즌 제로 던』(2017)의 텍스트 데이터포인트 중, 게릴라 게임즈.

4. Post Total
    누군가의 목도리를 대신 두르고, 발레복, 조립이 덜 된 원양어선과 음파, 제비다방에서 형은 취하지 않았다, 용돈으로 달러를, 북한산 입구와 경복궁의 가로수, 명동성당과 전주성당의 차이, 호흡기를 단 잉어 문신, 학, 미아리고개예술극장 무대 뒤는 박음질 같다, 천지람(天之藍)을 마시고 취한 채로 자전거를, Rhythme In Seoul, 크리스나 카페 난간에 진열된 양탄자들, 붉은 성, 석회암 가루로 문지른 코끼리 모형, 칼하트 후드, 크랩의 마지막 테이프, 기억하지 마라, 천치의 특성, 드들강에서 승마를 하는 남자에게는 안장이 없다, 태평백화점, 이야기의 재건이라니, 불통의 방어성, 우주는 뜨거운 불덩이에서 시작되었다, 게이샤 그림 앞에서 목을 젖힌 사람, 숲이 된 운동장, 장화를 신고 하염없이 걸었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연꽃 사이를 헤치며, 레이저 디스크, 이제 아무도 이 영화를 보러 오지 않습니다, 후쿠오카에서 매일 덩치 큰 까마귀를 봤다, www.wakou-fukuoka.jp, 관제탑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소설가. 1986년 대전 출생. 2105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