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말]  기억의 간헐 작용 | 박민정 |

[10월의 말] 기억의 간헐 작용 | 박민정 |

parkminjung로시니, 모차르트
그리고 베버의 음악을 다 준다 해도
바꿀 수 없는 노래가 내게 있다.
그것은 낡았고, 느리고, 구슬프지만
내게는 내밀한 매력을 준다.
우연히 그 노래를 들으면 내 마음은
200년 젊어진다―루이 13세 통치 아래로.
보인다, 노란 석양이 비치는
굽이치는 푸른 언덕.
모서리가 벽돌로 된 성곽, 붉은 유리창들.
성곽의 넓은 정원.
성 아래를 적시며 꽃 사이로 흐르는
한 줄기의 강물.
그리고 높은 창가에 나타난 어떤 부인.
금발에 검은 눈동자, 오래된 의상.
그녀, 내가 전생에서 만난 적 있는,
지금 내가 기억하는, 그 여인!

― 제라르 드 네르발, 「환상」

Il est un air pour qui je donnerais
Tout Rossini, tout Mozart et tout Weber,
Un air très vieux, languissant et funèbre,
Qui pour moi seul a des charmes secrets.
Or, chaque fois que je viens à l’entendre,
De deux cents ans mon âme rajeunit:
C’est sous Louis treize; et je crois voir s’etendre
Un coteau vert, que le couchant jaunit,
Puis un château de brique a coins de pierre,
Aux vitraux teints de rougeâtres couleurs,
Ceint de grands parcs, avec une rivière
Baignant ses pieds, qui coule entre des fleurs;
Puis une dame, à sa haute fenêtre,
Blonde aux yeux noirs, en ses habits anciens,
Que dans une autre existence peut-être,
J’ai déjà vue… et dont je me souviens!

― Gérard de Nerval, ‘Fantaisie’

   학부 졸업 학기에 나는 불문학과 전공수업을 들었다. 제라르 드 네르발의 소설과 시를 강독하는 수업이었다. 고백하자면 그 때나 지금이나 나의 프랑스어 실력은 형편없다. 아니, 까막눈이나 다름없다. 알리앙스 프랑세즈의 샘플 수업을 몇 번 기웃거리고, 프랑스 영화를 자막 없이 보려고 노력을 기울였던 것을 빼고는 제대로 공부해본 적도 없었다. 불문과 교수님은 이미 원서 강독에 익숙한 4학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공 수업에 겁도 없이 등록한 문창과 학생을 신기해했다. 그러나 프랑스어를 할 줄 모른다고 당당하게 대답하는 학생에게 수업을 방해할 생각 말고 나가라고 꾸짖지 않았다. 대신 첫 발제를 나에게 맡겼다. 소설 일부를 번역하고 원어로 한 번, 한국어로 한 번 낭독해야 했다. 영역본과 국역본을 참고해서 겨우 번역을 하고 더듬더듬 읽었다. 프랑스어 알파벳 발음을 겨우 흉내 내는 수준으로. 그러나 그 수업의 누구도 나의 흉측한 프랑스어 발음을 듣고 웃지 않았다. 한 학기 내내 나는 수업의 유일한 타과생으로서 ‘보호종’ 취급을 받으며 수업에 참여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싶다. 졸업을 한 학기 남겨뒀는데 셀러리맨이 될 자신도 없고 작가가 되는 일은 꿈꿀 수도 없이 까마득해 보였던 당시, 대학 시절을 사로잡았던 혹독한 연애도 완전히 끝나 버린 직후였다. 그런 절망감에 빠져 어지간한 일에는 부끄러움을 느낄 여유도 없었는데 정도가 지나쳤던 것 같다. 아직도 가끔 그 교실에서 더듬더듬 프랑스어를 읽는 꿈을 꾼다.
   인용한 네르발의 시는 대학 시절의 마지막 시험 과제였다. 지금도 나는 그 때 제출했던 번역이 얼마나 맞고 틀렸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단지 여러 번역본을 참고 대조하면서 만든 문장이었고, 시험 보러 가기 전 수없이 외웠기 때문에 아직도 주문처럼 떠오를 뿐이다. 특히 이 대목.

   우연히 그 노래를 들으면 내 마음은
   200년 젊어진다―루이 13세 통치 아래로.

   이 대목을 장난처럼 농담에 이용하곤 했다.
   가령, 처음 집회에 참여하던 때를 떠올리면 내 마음은 ‘노무현 참여정부 때로 10년 젊어진다’ 같은 말. 네르발 식으로 말했던 것이었다. 어느 해의 4월 30일에는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종로까지 뛰다가 잠시 멈춰 숨을 몰아쉬었다. 그 무렵 이미 인생의 쓴 맛과 단 맛을 다 봤다고 여겼던 합평 시간이 어제처럼 기억난다. 낮에는 커피를 팔고 밤에는 술을 파는 청담동 고급 카페에서 며칠간 일하다 앞치마를 벗어던지고 쌍욕을 하던 스물 두 살의 내가. 깊은 밤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오던 한 길가의 친구들. 네 마음 따위는 네가 알아서 하라며 냅다 전화를 끊어버리던 무정한 나도. 조금 더 젊어지면, 내일 세상이 종말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잠이 들던 1999년 마지막 날의 내가. 아마도 1995년 이후 몇 년간 큰 건물에만 들어가면 “여기도 무너지면 엄청 죽겠다”란 말을 뇌까리던 내가. “결국 김영삼이가 됐네” 하던 말을 뒷좌석에 앉아 잠결에 듣던 겨울밤의 내가.
   C’est sous Louis treize…. 나는 프랑스의 작가가 왜 이런 표현을 썼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그 대목을 생각하면 끝도 없이 기억을 소환해낼 수 있다. 지금보다 더 젊고 더 젊은 시절, ‘루이 13세 통치 아래로’.
   한편 이런 기억도 있다.
   언젠가 한국문학사 수업 시간에 나는 1980년대 문학을 분석하는 발제를 맡았는데, 1987년의 ‘내 기억’을 덧붙여 썼다. 1987년에 나는 세 살이었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시내버스를 타고 종로를 지나다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최루탄 냄새를 맡았다고 썼다. 확실하다면 인생 최초의 기억이다. 그러나 그 때 나는 누군가에게 비웃음을 당했다. 다른 수강생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이야기를 꾸며낸다는 것이었다. “누가 봐도 소설이다.”
   그럴 수도 있다. 어머니는 그런 일을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고 그런 건 사진으로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이렇게 변명해볼 수도 있다.
   1959년을 배경으로 알랭 레네가 에둘러 말했다. “자신이 겪은 일과 실제로 일어난 일 사이에는 불가분 관계가 있다.” 그의 서사에서 히로시마의 남자가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 당신은 히로시마를 보지 못했어.” 말한다. 그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당신은 히로시마를 기억하지 못해”일 것이다. 개인적 진실과 상관없는 역사적 사실은 실제로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며, 그것은 다만 일어난 일일 뿐이라는 것이다. 끔찍한 상처로 존재하는 ‘히로시마 원폭투하’는 1945년 8월 6일에 실제로 일어난 일이지만 같은 날을 프랑스의 시골마을에서 살아가고 있던 소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소녀에게 그 날은 전쟁이 끝난 날일 뿐 고통이 시작된 날이 아니다. 그러나 1959년의 히로시마로부터, 그녀에게 그 날은 히로시마가 된다. 내게 1987년 역시 그러했고, 1991년, 1994년, 1997년, 1999년…… 무수한 해가 실제로 겪은 일을 넘어 분명한 단어들로 기록된다.

   우연히 그 노래를 들으면 내 마음은
   200년 젊어진다―루이 13세 통치 아래로.

   살아보지 않은 시간들을 그렇게 가져간다.

1985년 서울 출생, 2009년 『작가세계』등단. 소설집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 ,『아내들의 학교』 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