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말] 쓰지 마라. 써야 한다. | 한유주 |

[9월의 말] 쓰지 마라. 써야 한다. | 한유주 |

hanyouzoo    나는 오랫동안 쓰지 마라라는 환청에 시달렸다. 그래서 쓰지 마라라는 말을 괄호로 묶어버렸다.
   (쓰지 마라.)
   그리고 한동안 아무 것도 쓰지 않았다.

   언젠가 서울의 서부간선도로를 타고 안산 방향으로 가던 중 심한 정체를 겪은 적이 있다. 서부간선도로는 양방향 모두 막히지 않을 때가 거의 없는 구간이지만, 그래도 점심시간 전후라면 상대적으로 서울을 벗어나기가 수월했으므로 나는 접촉사고라도 났거나 도로를 보수하는 중일 거라고 생각했다. 좀처럼 정체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아 초조했다. 그 구간만 통과하면 서해안고속도로는 사정이 나을 것이겠지만 약속 시간이 촉박했다. 그렇게 굼뜨게 앞으로 나아가던 중, 전방으로 멀리 트럭 한 대가 서 있는 것이 흐릿하게 눈에 들어왔다. 차가 고장을 일으킨 것 같았다. 서 있는 트럭이 가까워 올수록 차량들의 흐름도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간신히 시간에 댈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가속 페달을 밟았다. 마침내 차량 정체를 일으킨 주범인 트럭이 한눈에 들어왔다. 무심코 속력을 높이려던 순간, 트럭 옆에 망연히 서 있는 운전수가 보였다. 트럭 주변에 500ml들이 생수병들이 흩어져 있었다. 물건을 부주의하게 적재했던 모양이었다. 운전수의 손에 생수병 두 개가 들려 있었다. 그는 더는 뭘 어찌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도 뭘 어찌할 수 없어 그를 그대로 지나쳤다. 트럭을 지나치자마자 정체가 완전히 풀렸다. 수백 번 다닌 경로였다. 해서 눈 감고도 운전할 수 있는 길이었는데, 자꾸만 누가 뒤에서 잡아당기는 듯한 껄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왜였을까. 나는 돌아오는 길에, 그러니까 퇴근시간 무렵의 정체와 혼잡으로 악명 높은 서부간선도로 서울 방면에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는 차에서 내렸어야 했다. 또 다른 정체의 주범이 되더라도 차에서 내려 생수병을 몇 개라도 주웠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고, 후에 비슷한 일과 또 마주치게 되더라도 쉬이 그럴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그날 트럭 옆에 서 있던 운전수의 표정을 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쓰지 마라.)
   나는 짧다면 짧게, 길다면 길게 살았다.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방관하며 살았다. 죽음은 도로 위에만 있지 않았다. 죽음은 모든 곳에 있었다. 내가 보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는 쓸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써서는 안 될 거라고 생각했다. 무엇을 쓰더라도 실패할 것 같았고, 어떻게 쓰더라도 부족할 것 같았다.

   그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어렸을 적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내가 떠올린 것이 아니다. 그 일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내가 아홉 살, 혹은 열 살에 있었던 일이다. 나와 가족이 외갓집에 다녀오던 길이었으리라 짐작된다. 이차선 도로였다. 차만 타면 심하게 멀미를 했던 나는 뒷좌석에 눕다시피 한 채 메슥거리는 속을 달래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낮은 목소리로 다투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아버지가 담배를 한 대 피우겠다고 차를 세우고 내렸던 기억이 난다. 나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려고 차에서 내렸을 것이다. 맑은 날이었고 추석 연휴 중 하루였을 것이다. 명절이 아니라면 딱히 외갓집에 갈 이유가 없었거니와 밤송이에 손끝을 찔려 아팠던 기억이 있으므로 나는 그날이 추석 연휴 중 하루였다고 기억한다. 하늘은 맑고 공기는 신선했다. 어머니와 동생은 차 안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아버지가 담배를 밟아 끄는 걸 보고 나는 다시 차에 타려고 했다. 문을 열려는 순간, 아버지가 외쳤다. 조심해!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고, 그 순간, 내쪽으로 다가오는 불 붙은 트럭을 보았다. 한낮이었으므로 불길보다도 겁에 질린 운전수의 표정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어찌할 수 없다는 것처럼, 하지만 최선을 다해 트럭을 멈춰야만 한다는 것처럼, 그 전에 최선을 다해 나를 치지 않겠다는 것처럼, 그러나 이제는 자신도 도무지 어찌할 수 없다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나의 이 모든 생각들이 미처 완료되기도 전에 불 붙은 트럭은 나와 아버지를 빠른 속도로,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스치듯 지나갔다. 브레이크도 말을 듣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트럭을 쫓아 달려갔던 아버지는 몇 분 되지 않아 터덜터덜 돌아왔다. 아버지도 어찌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적한 국도였다. 지나가는 차도 없었다. 비상전화도 보이지 않았다. 그 운전수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날은 추석 연휴였다. 나는 운전을 배우기 전부터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 꿈을 꾼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다들 그런 꿈을 꾼다고 하기에 나는 그러려니 했다. 그리고 이십 년도 넘게 지난 후에야 나는 꿈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어쩌면 그날, 나와 아버지는 끝까지 트럭을 따라 달려갔어야, 최소한 달려가기라도 했어야 했던 건 아닐까.

   나는 짧다면 짧게, 길다면 길게 살았다. 그간 내가 방관한 죽음들, 혹은 죽음에 가까운 무엇들을 생각한다. 일단 이에 대해 써야겠다, 쓰기라도 해야겠다. 그러나 나는 써야 한다. 쓰지 마라. 아니다. 써야 한다. 쓰지 마라. 아니다. 써야 한다. 써야 한다.

— 영국의 노리치에서

1982년 서울 출생. 2003년 『문학과사회』를 통해 소설가로 등단. 소설집 『달로』,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와 장편소설 『불가능한 동화』를 펴냈다.